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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관광을 다녀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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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수님 !

학생이 선생님 앞에 숙제 검사를 받는것처럼 미숙한 글을 내놓는것이 마냥 부끄럽습니다.
지루하실지 모르시겠지만 도움의 말씀을 주세요.
산들산들 옷자락을 스치는 꽃향기 실은 봄바람에 눈꽃이  휘날리게 뿌려치는 십리 벚꽃길을 바라보면서 어린아이모양 환성을 지르고 마냥 즐거워하며 웃음을 토해낸다.
우리교회에 년 중 행사인 효도관광을 한달 앞당겨 봄의 유흥을 즐기며 더한층 의미 있게 노년의
삶을 따듯하게 하여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여러모로 애쓰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신 장로님들과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안전운전으로 수고하신 목사님, 전도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개나리, 진달래 , 목련이 활짝 핀 마을!
벚꽃으로 만들어진 긴 터널의 남쪽의 봄!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갖가지 봄에 기력을 받으면서 다시 한번 "주님 사랑해요" 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본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길이라고 불리우는 하동과 구례 간 19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서 영화와 드라마 단골 촬영지로 찾아갔다. "식객"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조그마한 산골마을에 자리잡은 장터. 영남과 호남을 잇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에 헤일수 없이 많은 먹거리들이 진열된 정겨운 풍물시장 화개장터이다. 어린시절동네 5일장을 연상하며 잠시 옛날로 되돌아 가본다. 어느새 권사님들 집사님들 손에 이것저것 흥정하여 사들인 까만 봉투속에 봄나물이 무거운줄 모르고 입가에는 행복한
웃음꽃이 서린다.
화개장터와 쌍계사 입구까지 십리나 되는 벚꽃길 특히 연인들이 두손을 꼭 잡고 걸으면 결혼에
성공한다고 해서"혼례길"이라고 예부터 불려지는 이 아름다운 길!
우리 일행은 다시 장터구경과 벚꽃놀이를 마치고 십리길을 올라 영화 "토지"의 최참판댁으로 향했다. 소설 "토지"의 배경인 하동군 악 양면 평사리 마을 드넓은 평야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우리가 오르기엔 좀 가파른 길이었다.
최옥선 권사님이 걱정이 됐지만 생각했던 그 걱정이 사라지고 최권사님은 끝까지 낙오되지 않으시고 소설의 주인공 서희가 살던 한옥 14동으로 구성된 목적지까지 오르셨다.
여기 저기 셔터 누르는 카메라맨들. 우리나이에 무슨 사진? 그러나 우리 일행중 귀염둥이 막내인
신경숙 집사님의 집요한 권유에 갖가지 포즈를 취하여 눈길을 끄는 배경을 뒤로하고 사진을 찍었다. 여러곳을 기웃거리며 시야를 넓히는데 내앞에 우뚝선 소설의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이의 모습 사람보다 더 큰 장승이 눈에 들어왔다. 영화보다 소설을 더 감명깊게 읽었던 토지!
일제시대에 무서운 억압속에서도 우리 민족에 자존감을 세우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며 항거했던 소설의 주인공들 한 양반가문에 닥쳐온 불행을 막아보려고 끈질긴 투쟁속에서 버티어 나가는 두 주인공 조선인의 용기와 긍지를 보여주며 끝내는 시대의 변화의 흐름속에 적응하는 베스트셀러1위였던 장편소설이다 박경리씨의 섬세함, 또한 잘차려진 밥상처럼 학문적이면서 흥미롭게 이끄는 문학의 재주꾼인 그 작가를 나는 좋아한다.
최참판댁 노비들이 살았다는 아주 작은 초가삼각 집들을 남겨놓고 발길을 옮겼다 어디론가 다음 행선지를 말씀하시는 안장로님의 안내로 차는 움직였다.
차에서 내린 곳은 매화마을이다 광양군에 있는 이 마을은 매화길에 취하고 술에 취한다는 이곳은 조선시대 화가"장승업"의 일생을 그린 영화 "취화선"이 이곳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막상 이곳에 와보니 그 드라마 사연을 한눈에 보는 것 같았다 .
장승업은 유달리 매화를 사랑했으며 사랑하는 여인"매향"이 벗어놓은 속치마에 매화꽃을 그려 정표로 주었다는 로맨틱한 전설이 숨겨진 곳이기도 하다 마음에 담은 감정을 한폭에 그림으로 옮겨 나타내는 화가들의 진솔한 모습이 좋아 미술관을 찾아다녔던 지난시절이 생각난다.
네덜란드 출생인 빈센트 반고흐 그 나라 수도 암스테르담 미술전시관에 화가 고흐의 수많은 작품들이 그의 걸적품들이다. 그의 불행했던 어린시절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으며 가슴 져미는 외롭고 불행한 아픈 생애를 지냈던 그의 젊은 시절 (그의 많은 작품 중 팔린 것은 단 한점 뿐이었다고 한다.) 결국은 37세란 젊은나이에 권총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화가로서 아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그의 작품이 100년이 지난 뒤에야 그의 그림을 온세상이 인정해 주는 작품들로 유명해 졌다고 한다. 결국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는 격언이 반고흐나 조선의 화가였던 장승업이도 끼여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마을을 내려오면서 이번 여행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와 무한하신 사랑에 감사를 드릴뿐이다.

영원히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은 봄나들이가 되기를 바라며 주님의 은혜가운데 제1여전도회 모든
회원들 각자 주어진 사명과 헌신의 뜨거운 마음을 우리 에덴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충성된 여종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에덴 가족들을 사랑합니다.

                                                  2008년 4월4~5일 효도관광 하동쌍계사를 다녀와서
                                                                                      최부일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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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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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국님의 댓글

이창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부일 권사님, 좋은 곳들을 다녀오셨군요.

다녀온 후 이런 좋은 기행문을 쓰신데 대하여 크게 축하드립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최부일 씨에게는 분명 문학적 재능과 정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화가 오원 장승업과 네델런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반 고호를 비교하신 부분이 아주 잘 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아주 흡사한 기질과 행동을 한 불행한 천재들이었습니다. 죽은 후 명성은 얻었지만.

최부일 권사님, 글 쓰신 것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여기에 이처럼 올려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이 글에 대하여 더 길게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지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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