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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국 저서소개

다시 한번 강가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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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국
댓글 0건 조회 6,490회 작성일 06-07-0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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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그 동안 쓴 글을 모아 몇몇 출판사에 보내 보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돌아온 원고 뭉치를 어루만지면서 혼자 부끄러워해야 했고 섭섭한 마음을 달래야만 했었다. 보낸 원고가 한 번도 읽어본 흔적조차 없이 되돌아 왔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
        모두가 제 나름대로 아름답고,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나 사건들을 정성들여 적은 글이 수필이다. 수필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시나 소설, 희곡, 모두가 같은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수필이 어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음악이나 미술에서 같이 각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도 되고, 시나 소설, 또는 희곡에서와 같이 어떤 형식상의 기교나 기술을 습득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용이함 또는 수월함 때문이다. 수필이 범람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며, 같은 이유로 수필이 푸대접을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바로 이 용이함 속에 깊은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면서 즐거운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이 땅의 수필가들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함정 속에 뛰어든 또 하나의 허영심 많은 어리석은 사람이 여기에 있다.

        몇 차례의 수정과 교정을 거친 후 나의 글은 오늘로서 드디어 나의 손을 완전히 떠났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고, 홀가분하면서도 허전한 마음이다. 마음 뿌듯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과년한 딸을 어렵사리 시집보내고 난 부모의 심정이다. 시집간 딸이 남편과 시집식구들의 사랑을 받고, 총명하고 예쁜 아기를 낳아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라듯이, 나의 글도 한 권의 책으로 예쁘게 탄생하여 이왕이면 두고두고 독자들을 기쁘게 해주고 동시에 그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게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인기 없는 수필이라는 글을, 그것도 이 분야에는 얼굴도 내민 적이 없어 그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사람의 글을 거두어 출판하기로 결정한 임용호 사장님을 비롯한 종문화사 여러분들의 안목과 용기, 그리고 너그러움에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1997년 7월3일      이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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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강가에 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마음속으로 나도 모르게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강가의 마을로 자주 돌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도달하게 되는 양평이란 곳은 그 때도 이미 군청소재지로서 후미진 산골은 물론 아니었다. 서울을 오가는 기차들이 꼭 한 차례 정거하는 교통의 요지였을 뿐만 아니라, 전기도 들어왔고 꽤 큰 기와집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수돗물이 무엇인지 몰랐고, 너나 할 것 없이 초가집에서 살아야만 하였던 그때 그곳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두메산골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분명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임에 틀림없었다. 남한강이 그 한가운데를 뚫고 유유히 흘러가는 평화로운 이곳은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의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나, 그래도 찾아가보면 아직도 구석구석 나의 어린 시절의 손과 발, 그리고 눈이 닿았던 곳을 발견할 수 있고, 그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고 회고에 잠겨보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기억되는 것들 가운데는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일들도 적지 않지만 그 동안 생겨난 지리적, 시간적 거리는 모든 것을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 하나로 만들어 버린다.

         강가의 언덕 위에 집이 있어 사시사철 강과 더불어 살아야만 했던 나에게 있어서 추억이란 거의 모두가 이 강과 연관된 것이고, 강과 분리시키면 별로 의미도 흥미도 없어지는 것들이다. 강이란 것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부드럽고 조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린 나이의 나에겐 결코 그렇지만은 않았다. 바다를 보지 못하였던 나에게 강은 우선 너무나 크고 광대한 것이었다. 신비스럽기 한량없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였다. 가까운 듯 하면서도 멀리 있고, 멀리 있는 듯 하면서도 언제나 가까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항상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 같으나 순간 순간 그 모양이 변하는 변덕을 부리기도 하였다. 물에 빠져 죽을까 봐 염려하는 부모님들이 성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강은 나를 불러냈다. 불러내서는 나의 용기와 담력을 시험해보기도 하였다. 내가 마음속으로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아직도 그곳에 변치 않고 흐르는 강의 부름 때문이다. 강이 없는 곳에 가서는 내가 남보다 유난하게 답답해하는 이유도 필시 나의 몸속에 배어 있을 강에 대한 무한한 동경 때문이라라.

        나는 강가를 따라 걷기를 좋아하였다. 특히 여름철에 그랬다. 이럴 때면 나는 신발을 벗어 손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 발 밑에서 부서지는 부드럽고 고운 모래의 촉감이 좋아서였다. 돌들이 펼쳐져 있는 돌밭을 지나가야 할 때는 다시 신발을 신어야만 했다. 맨발로 돌을 디뎠다가는 발을 델 만큼 돌들이 불볕에 달구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강가를 따라 걷게 만드는 것은 물결에 쓸려 바싹 마른 사람의 갈비뼈처럼 보이는 고운 모래 위에 나있는 조개 지나간 흔적 때문이었다. 조개가 지나가면서 낸 길의 굵기만 보면 조개의 크기를 즉시 알 수 있었다. 굵은 자국을 볼 때마다 나의 가슴은 뛰었다. 그 길의 끝에는 어김없이 주먹만한 크기의 시커먼 강조개가 모래 속에 몸을 반쯤 파묻고는 숨어 있었다. 나는 또 다리가 기다란 징거미라는 대짜 강새우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물 속에 버려진 녹슨 빈 깡통 속이나 나뭇가지 밑, 또는 넓적한 돌 밑이 그들의 은신처였다. 나는 이것들을 하나하나 뒤집어보거나 두 손을 넣어 뒤졌다. 나에게 붙잡힌 징거미들은 내 손을 벗어나려고 맹렬한 저항을 시도하였다. 별로 잘 진화되지도 않은 집게로 효과 없는 공격도 해본다. 징거미들은 불에 굽거나 물에 넣고 끓이면 빨갛게 변하였다.

       이런 재미에 정신이 팔려 어느 날 나는 너무 멀리 갔다. “아차, 내가 너무 멀리 왔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긴긴 여름의 하루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는 쪽의 하늘과 강물은 새빨간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겁이 더럭 났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점심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집에 돌아갈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해는 곧 질 것이며, 집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날이 저물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강변을 따라 내려온 길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되는 노릇이었지만 그 길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유명한 고목 느티나무를 지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가 무서워졌다.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강가에 서 있는 이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여름철이 되면 무성한 잎사귀들을 가지고 짙은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었다. 이 나무는 봄이 되어 나뭇가지에 잎이 돋아 나오기 전까지는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른의 두 팔로 세 아름이 훨씬 넘는 이 느티나무의 둥치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고 속은 텅 비어 내 또래의 어린애들은 서너 명 함께 들어가 서 있을 수도 있었다. 이 나무에는 귀신이 있어 밤늦게 혼자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강물에 빠져죽은 원통한 사람들의 혼령들이 모여 사는 나무라고 해서 나는 물론 내 또래의 어린 아이들은 모두 대낮에도 그 나무 근처에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나도 집에서 꽤 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느티나무를 혼자서 지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많이 잡히는 조개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그 유령이 나온다는 고목 느티나무를 어떻게 어두운 밤에 혼자서 지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강에 나가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나선 아버지를 만나 그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강변을 따라 내려오시다가 나를 만나자마자 화부터 내시면서 내가 그날 잡은 귀중한 조개와 징거미가 들어 있는 바구니를 낚아채시더니 통째로 강물 한가운데로 멀리 던져 버렸다. 그날 집에 도착하여 목침 위에 올라선 채로 종아리에 싸리나무 회초리로 매운 매를 맞고 나서 나는 서럽게 오래오래 울었다. 매가 아파서라기보다는 강물에 던져져 사라져 버린 그 바구니가 너무나 아까워서였다.

        내가 그곳을 떠나 삼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언제나 변함없이 흐르는 그 강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이미 내가 그곳을 떠나기 전부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흘러오고 어느 곳으론가 흘러가던 그 크고 아름다운 수많은 돛단배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강의 수심이 얕아졌기 때문이다. 황포 돛대에 석양을 맞으면서 강 위를 둥실 둥실 떠가는 돛단배들의 모습은 어린 나이의 나의 눈에도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이어서 강원도 산골 어느 곳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간다는 거대한 뗏목들도 사라져 버렸다. 뗏목이 없어지니 그 위에서 먹고 자며 함께 흘러가는 사람들의 구성진 뱃노래 소리도 동시에 그쳐 버렸다.

      이 큰 강 위를 가로질러 거대하고 튼튼한 현대식 다리가 놓아지자 오랜 세월 동안 이곳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의 교통수단이었던 정든 나룻배가 하루아침에 필요없게 되었으며, 내가 잘 아는 힘세고 성격이 쾌활한 뱃사공은 그만 그 자랑스런 직업을 잃고 말았다. 나이가 채 삼십이 넘지 않은 이 사공은 아버지도 사공이었고 할아버지도 사공이었다. 잘 생긴 얼굴과 건장한 체격, 그리고 친절한 마음씨와 걸쭉한 농담으로 이 사공은 읍내에 장보러 나오는 시골 아낙네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았다. 한 여름이 되면 우리는 떼를 지어 이 사공이 젓는 나룻배의 뒤를 따라 강 한가운데까지 헤엄쳐 나가서는 기운이 달리게 되면 모두들 뱃전에 매달려 쉬었다. 사공은 힘이 더 드니 야단이었다. 우리는 자주 벌거벗은 채로 배 위로 기어 올라가 숨을 돌리고는 다시 물속으로 텀벙텀벙 뛰어 내리기도 하였다. 다리가 완공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준공식을 하던 날 이 사공은 표창장을 받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제 그 유서 깊은 나루터는 사라져 보이지 않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옛날 이곳이 나루터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조그만 팻말이 하나 서 있을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강에서 얻을 수 있었던 즐거움과 모험은 이제는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여름철이 되어도 강에서 헤엄을 치거나 고기를 잡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겨울이 되어 강물이 꽁꽁 얼어붙어도 그 위에서 썰매를 타거나 스케이트를 지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모두들 돈을 내고 수영장에 가거나 안전한 곳에 특별히 마련된 스케이트장에 간다. 쑥 빠져나온 바위에서 강물 속으로 거꾸로 뛰어드는 다이빙 놀이도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물이 더러워진 때문이다. 강 하류에 수력발전을 위한 댐이 건설되자 빠르게 흐르던 물살이 느려지면서 강은 어느덧 호수 비슷하게 돼 버렸다. 그 맑은 물속에서 반짝거리던 피라미들도 물이 더러워지고 흐름이 느려지면서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피라미 대신 붕어가 잡힌다고 들었다.

        지난 겨울, 일월의 아주 추운 어느 날 오후,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옛날처럼 강가에 섰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날씨는 음산했다. 나는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강에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일곱 살 먹은 나의 아이와 함께 있었다. 아이는 춥다고 계속 불평을 하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댔다. 나는 그의 불평을 무시한 채 이제는 진흙으로 뒤덮혀 버린 강변을 따라 옛날처럼 걷기 시작했다. 내가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아직도 서 있는 그 고목 느티나무를 지나면서 지은 미소의 뜻을 나의 아이는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무는 그때 그 나무임에 틀림없었으나 너무나 작아 보여서 믿어지지 않았고 특별히 별다른 점도 없었다. 강가에 핥는 물소리만은 옛날에 듣던 그대로였다. 바싹 마른 키 큰 갈대들도 바람에 흔들리면서 귀에 익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 멀리 강 위에는 새까만 점들이 수없이 찍혀 있었다. 겨울을 나기 위하여 날아온 청둥오리 한 떼가 분명했다. 지는 해에 서쪽 하늘은 핏빛으로 장엄하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는 내 팔을 잡아끌면서 빨리 돌아가자고 칭얼댔다. 날씨도 추웠고 다가오는 어둠도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돌아서서 무심히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그에게서 변하지 않고 살아 있는 어린 모습의 나를 발견하고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의 얼굴 속에서 나는 나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았다. 그 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정지한 채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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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광(買書狂)

 

        서점에 들리기만 하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책을 사는 친구가 있다. 돈이 없을 때는 외상으로도 산다. 이 친구는 이미 수백 권이 넘는 책을 - 그것도 모두 영어로 된 전공에 관련된 서적을 - 개인적으로 소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책을 사고 있다. 이 정도의 분량이라면 이 친구가 지금부터 다른 일은 다 그만두고 죽는 날까지 책읽기에만 몰두한다 하여도 다 읽을 수 없는 충분한 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는 새로 나온 책만 보면 기어이 사고야만다. 이미 사 모은 책이 서가를 넘쳐 서재로 사용하는 방의 구석구석은 물론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집안의 빈 공간은 온통 책이 다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볼 때 이 친구가 정작 사야할 물건은 책이 아니고 새 구두 한 켤레나 양복바지 한 벌이다. 구두는 뒤축이 다 달아 있고 입고 있는 바지는 너무나 오래되어 옆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이런 데는 조금도 개의 하지 않고 오직 책 사는 일에만 열중한다. 책은 읽지 않으면서 자꾸만 사서 무얼 하겠느냐고 충고 반 핀잔 반 주어도 막무가내다. 화도 내지 않고 그저 빙긋이 웃고 만다. 이 친구에게 있어서 책을 사는 행위는 이제 하나의 굳은 습관이요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매서광"(買書狂)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면서 좋아한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이 사도 비난받지 않는 것이 책이다. 비난은커녕 오히려 칭찬이나 존경을 받는다. 당신이 만일 값비싼 옷이나 모자, 또는 구두를 사는 데 돈을 많이 쓰면 당장 주변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게 된다. 돈이 많은 사람은 사치스럽다고 비난을 받고, 없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 ‘미친 놈’이란 낙인이 찍힐 것이다. 그러나 책이란 것은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어서 아무도 책을 사는 행위를 놓고 왈가왈부하지 못한다. 내가 만약 퇴근하여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들고 집에 간다면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물건의 품질이나 가격 또는 용도에 대하여 아내와 가족들로부터 심문과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나는 쓸데없는 물건을 비싼 값에 사들고 들어온 바보가 되고 마는 경우가 십중팔구이다. 그러나 내가 책을 한 꾸러미 - 그것도 영어로 된 책을 - 집에 사들고 가 마루 위에 놓으면 아무도 감히 나와 나의 이 고귀한 매입행위에 대해서 입을 열지 못한다. 나의 아내를 위시하여 모든 가족들은 그 물건이 다른 것이 아니고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존경과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그 책의 가격이 얼마냐 느니, 어디서 그런 돈이 생겼느냐는 등의 질문도 아예 없다.

        책을 훔치고도 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얼마 전 신문에 난 이야기지만 어느 가난한 대학원 학생이 서점에서 자기 분야의 전공서적을 두 권인가 세 권 훔치다가  현장에서 점원에게 발각되었다. 그런데 서점 주인은 이 학생의 향학열을 높이 사 경찰에 넘기는 대신 훔친 책을 모두 그 학생에게 거저 주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라는 격려까지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학생이 배가 고파 빵을 훔쳤다던가 입을 것이 없어 옷을 훔쳤다면 그 결과는 아주 달랐을 것이다. 책은 이래저래 퍽 이상스런 물건이다.

        부자는 책을 사도 가난한 사람이 책을 살 때 보여주는 그런 자부심과 즐거움이 없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 앞에서 기가 죽는 경우가 바로 이 책이라는 물건 앞에서이다. 가난한 사람은 없는 돈을 털어 부자 앞에서 여봐란 듯이 의기양양하게 책을 산다. 반면에 부자는 책을 살 때만은 주위를 살펴야만 한다. 조금만 잘못하면 그냥 실내 장식용으로 책을 산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책을 사다가 읽지 않고 내버려두거나 쌓아두어도 말이 없으니 부자가 그랬다가는 야단난다. 그렇다고 해서 차곡차곡 쌓아놓거나 서가에 예쁘게 잘 정리해 놓아도 비난은 마찬가지이다. 부자에게는 어차피 책이란 것이 실내 장식용이란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책은 자고로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물이요, 휴식처요, 위안물이다.

        책이 실내 장식에 쓰이는 것은 인류문명 발달의 역사에서 볼 때 아주 오래된 일이요 또한 아주 타당한 일이다. 책은 내용은 물론 외모에 있어서 다양함이 어느 물건에 비할 수 없는 물건이다. 크기, 색깔, 디자인, 두께 등이 서로 다른 이 물건은 책장이나 서가에 일렬로 잘 늘어놓을 때 실내의 어떤 고급 가구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우아하며, 그 방을 아늑하고 품위 있고 세련되어 보이게 만드는 데는 책을 당할 것은 다시없다. 부자가 된 사람이 주변의 눈총을 받아가면서까지 고급 이태리가구와 함께 대영백과사전 한 질을 구태여 주문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책을 실내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나처럼 이것을 가지고 남을 위협하는데 쓰는 사람들보다는 아주 양심적인 사람이다. 나는 비록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그 동안 모아온 책을 - 주로 영어로 쓰여진 - 나의 학교 사무실에 모두 진열해 놓고 있다. 학기말 시험 성적에 불만이 있는 학생이 따지기 위하여 나의 사무실 안에 들어오는 순간 이 학생은 책으로 장식된 나의 사무실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되고 만다. 그는 그 많은 낯선 외국서적에 당장 경외감을 느끼게 되고, 그 경외감은 그 책을 소유하고 있는 나에 대한 존경심으로 바뀌어 들어 올 때의 성난 산돼지 같았던 표정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나의 방을 나설 때는 털 깎인 양처럼 변하여 부당한 성적에 대한 항의 같은 것을 까맣게 잊어 버려 공손히 인사만 하고는 뺑소니를 쳐 버리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책은 나를 보호해주는 수호신인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책은 사람을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방패의 역할도 한다. 사람은 책 뒤에 언제나 안전하게 숨을 수가 있다. 당신은 산처럼 쌓인 책 뒤에 당신의 게으름, 약점, 무식함, 그리고 어리석음 같은 것을 숨길 수가 있다. 당신이 어떤 바보 같은, 동시에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하더라도 그런 행위가 만권 서적이 등 뒤에 늘어서 버티고 있는 서재에서 이루어지기만한다면 아무도 감히 당신의 지능은 물론 당신의 상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분야의 저명인사가 텔레비전 인터뷰를 한다거나 하면 으레 그 장소를 서재로 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처럼 ‘매서광’까지는 못되지만 그래도 그런 대로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사 모으고 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나 동기를 따져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책들이 그 동안 나에게는 실내 장식용으로서, 우표수집이나 성냥갑 수집처럼 하나의 취미로서, 순진한 학생들을 겁주어 쫓아 버리는 일종의 ‘보디가드’로서, 그리고 심리적 안정제로서 보다 많이 나를 위하여 일해 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산 책들 가운데서 이제 와서 따지고보니 끝까지 읽은 것은 몇 권 없고 대부분이 처음 몇 페이지 읽다가 말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읽을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책을 사는 나의 행위에는 적든 크든 어떤 형태나 종류의 허영과 위선이 동반하였음을 부인할 길은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일만도 아닌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이 크든 작든 간에 처음부터 그렇게 그 동기가 순수하거나 분명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 일이 지적인 탐구이거나 예술적인 욕구일 때 처음부터 그 동기가 그렇게 고상하고 순수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읽어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현명해지기 위하여서만 책을 샀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 몇 십 권, 아니 불가 몇 권의 책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또 남에게 자랑하기 위하여 나는 더 많은 책을 샀으며 그러는 동안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이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한 권이라도 더 읽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이와 같은 허영심이나 고상한 체 하거나 아는 체 하는 속물근성이 없었던들 나는 아마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 전람회나 전시회에 가보지 않았을 것이며, 서울에 온 런던 로얄발레나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관람권을 끔찍하게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이들의 아름답고 화려한 세계는 나와는 관계가 없는 영역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내가 항상 이젠 책이랑 그만 사라고 충고도 하고 핀잔을 주면서도 나의 ‘매서광’ 친구를 좋아하여 꾸준히 만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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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의 미학

 

         남이 베푸는 친절을 거절한다는 것은 별로 좋아보이는 일도 아니며 또한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친구가 권하는 담배 한 대, 커피 한 잔, 점심 초대, 술자리등 어느 것 하나 거절하기도 어렵고 또 거절할 이유도 없다.

        나의 친한 동료교수 가운데 항상 바빠서 죽겠다면서 허둥대며 불만을 터뜨리는 친구가 있다. 담당하는 강의 시간도 많은데다가 주위의 사람들이 자기를 좀 편안히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연을 해달라, 원고를 써달라, 시험문제 출제를 해달라, 주례를 서달라, 눈 코 뜰 사이를 주지 않는다는 푸념이다. 거절을 하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남이 정성스럽게 부탁하는 것을 어찌 야박하게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정색을 하며 대답하면서 자기는 천성이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항상 예외가 있는 법이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것을 태연하게 거절해 버리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 권위와 영광이 많이 약회되었다고 하겠으나 지금부터 약200년 전 영국에서 계관시인(桂冠詩人)으로 추대된다는 것은 시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예였다. 1757년 영국 왕실은 토마스 그레이(Thomas Gray, 1716-1771)라는 시인을 계관시인으로 선정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국왕이 하사하는 이 명예로운 칭호와 그것에 따라오는 혜택을 받기를 거절함으로써 왕실과 귀족, 그리고 온 영국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당시 영국 땅에 국왕이 주는 것을,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탐내는 이런 명예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토마스 그레이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도 싫다고 거절해 버린 사람도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스웨덴 한림원에 의하여 196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으나 수상을 거절해 버렸다. 그가 어째서 세계적인 명성과 엄청난 액수의 상금이 따라오는 이 상을 굳이 받지 않겠다고 했는지에 대하여서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추측 가운데 하나는 자기보다 여덟 살이나 아래였던 카뮤(Albert Camus,1913-1960)가 7년 전 자기보다 먼저 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몹시 상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실로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에게는 노벨상 주는 데도 퍽 조심해야 하나보다.

        대학교수를 해주십사는 간청을 거절해 버린 사람도 있다. 네덜란드 태생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는 1673년 당시 독일 군주로부터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철학교수로 취임하여 달라는 정중한 요청을 받았으나, 그 자리가 자기 사상과 사고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할 리 없고, 자기가 필요로 하는 마음의 평정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스피노자는 암스텔담에 살면서 유리를 갈아 렌즈를 만드는 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지극히 곤궁한 처지에 있었음을 감안하여 볼 때, 현재 이 교수 자리가 날아갈까 봐 별의별 수모를 겪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친구의 점심이나 저녁초대 정도는 당신도 때로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초대가 다른 곳에서가 아니고 청와대로부터 왔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은 과연 거절할 수 있겠는가? 아마 거절 못할 것이다. 아니, 안할 것이다. 평소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삐딱하게 말하여 오던 사람일지라도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양복 다리고 새 넥타이 준비하라고 성화부터 할 것이다. 초청장을 사진틀에 끼워 벽에 걸어 놓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자랑도 할 것이다.

       1962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생존하여 있는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들을 모두 백악관으로 점심초대를 하였다. 소설가로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1897-1962)는 점심 한 번 먹으러 가기에는 백악관이 너무 멀다는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상대성원리’라는 물리학상의 이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박사에게는 1922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었다. 또 거절이냐구요? 아닙니다. 안심하십시오. 이번에는 기꺼이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이 사람이 거절한 것이야말로 우리 보통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대통령 자리를 거절해 버렸으니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이 다시 모여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하자, 이스라엘 국회는 만장일치로 아인슈타인에게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직을 맡기기로 결정하여 그에게 통보하였으나, 그는 물리학자답게 24시간 생각해본 뒤 거절의 회신을 보냈다. 자기는 아무래도 대통령 노릇보다는 물리학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이런 행동 앞에서 그저 멍할 따름이다. 이 사람들 좀 어딘가 잘못된 것 아닐까? 아니, 그런 명예를, 부를, 거기에 따른 특권을 헌 신짝같이 버리다니, 혹시 바보나 천치가 아닌가?

       아니다. 천치도, 바보도, 정신이 나간 사람도 물론 아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남들이 모두 ‘예스’ 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때, 전혀 예기하지 못하였던 ‘노’를 할 수 있었던 특권과 사치, 그리고 스릴을 맛보았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거절이라는 것을 제때 알맞게 할 줄 알았던 축복받은 극소수의 사람들이다.

       어느 사람에게 상이나 관직이나 명예가 주어지는 것은 그 개인에게는 참으로 좋고 기쁜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음도 알아야 한다. 거절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으로는 위선이나 허영으로 가득 차 있는 막강한 권위의 가면을 간단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벗겨 버릴 수 있는 미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절은 새로운 차원의 용기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미학의 경지로까지 승화될 수도 있다.

       나는 슬프다. 거절을 하지 못하니 슬프다. 친구가 권하는 담배도, 커피도, 술도, 몸에 해롭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거절을 하지 못하니 슬프다. 글도 잘 쓰지 못하면서 누가 써달라고만 하면 가리지 않고 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억지춘향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 슬프다. 또한 나는 많은 우리나라의 정치나 사회, 문화예술, 학문 등 여러 분야에서 지도자급에 있는 저명한 인사들이 자신에게 이 거절의 특권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리고 그 축복받은 특권을 써야 할 때와 써야 할 곳에서 쓰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더욱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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