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슨 부서져라, 부서져라, 파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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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출판사에서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대표적인 시인을 모두 망라하는 번역시집을 내기로 결정하고 나에게도 한사람 고르라고 하였을 때 나는 얼른 미국 시인 롱펠로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나서 시인의 명단을 죽 읽어내려가다 나의 시선은 테니슨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또 욕심이 생겼다. 평소에 테니슨을 대단히 좋아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시인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가 싫었다. 테니슨 시의 번역을 누가 맡았는지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아직 미정이라 했다. 그러면 내가 맡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좋다는 허락이 떨러지는 순간 나는 대단히 흥분하였다.
이제 약속된 시간이 다되어 번역한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주면서도 처음 그 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동안 언제 어떻게 이 번역일을 했는지 나 자신도 잘알 수가 없다. 대개 번역이란 기한이 지나 독촉을 몇 번 받고서도 질질 끌기가 일쑤인데 이번 나의 테니슨 시의 번역은 그렇지가 않았다. 하루에 한 편씩, 그것도 가장 편안하고 조용한 시간에 안정된 마음으로 해 나갔다. 하기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도 별로 들지 않았다.
내가 이 일이 힘들지 않았다고 한 말은 테니슨의 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 결코 용이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영문학사상 시인 중에 시인이었던 테니슨은 여어라는 언어의 소리에 유달리 민감하였던 시인이었다. 예를 하나만 들어 그의 "시냇물"(The Brooks)라는 시에 나오는 " Men may come and men may go, / But I go on forever" 와 같은 후렴구는 필자의 번역대로 "사람들은 오고, 사람들은 가지만,/ 나는 영원히 흘러만 가네"라고 옮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원시의 재잘거리면서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가 가져다 주는 아기자기한 맛을 살릴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따지면 나의 테니슨 번역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시인 테니슨의 아름답고 힘찬 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부끄럽고 뻔뻔스런 일이라 하겠다. 독자들은 부지런히 영어공부를 하여 가능한 한 나의 번역문보다는 영어로 된 그의 시를 찾아 읽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993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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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The Oak |
부서져라, 부서져라, 파도여! Break, Break, Break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Break, break, break 너의 그 차가운 잿빛 바위 위에, 오 바다여! On thy cold grey stones, O Sea! 가슴 속에 솟아나는 이 상념, And I would that my tongue could utter 혀가 있어도 말 할 수 없구나. The thoughts that arise in me. 아, 어부의 아들은 좋아라, O well for the fisherman's boy, 누나와 소리치며 놀고있구나; That he shouts with his sister at play! 아, 젊은 선원은 좋아라, O well for the sailor lad, 배 위에서 노래 부르네. That he sings in his boat on the bay ! 위풍 당당한 선박들 And the stately ships gon on 언덕 아래 항구로 다시 들어오는데 To their haven under the hill; 오, 잡아 주던 그 손길 어디로 갔나, But O for the touch of a vanished hand, 불러 주던 그 목소리 어디로 갔나! And the sound of a voice that is still!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Break, break, break 그대의 절벽 밑에, 오 바다여! At the foot of thy crags, O Sea! 아, 부드럽던 그 축복의 날은 이미 죽어, But the tender grace of a day that is dead 나에게 다시 찾아오지 않으리. Will never come back to me. 조 곡 (슬픈 노래) 7 from "In Memoriam" VII 어두운 집, 길다란 보기 흉한 이 거리에 Dark house, by which once more I stand 나는 다시 찾아와 그 집 앞에 서 있네, Here in the long unlovely street, 이 문 앞에만 서면 맞아줄 그 다정한 손길에, Doors, where my heart was used to beat 언제나 나의 가슴은 뛰었지. So quickly, waiting for a hand, 이제 그 손길은 없다오 -- A hand that can be clasp'd no more -- 나를 보시오, 나는 잠 못 이루고, Behold me, for I cannot sleep, 이렇게 이른 아침 죄인처럼 기어와 And like a guilty thing I creep 이 문 앞에 서 있다오. At earliest morning to the door. 그는 이제 이 집에는 없다오, 그래도 또 He is not here, but far away 하루가 시작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네, The noise of life begins again, 황량한 거리 위에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 And ghastly thro' the drizzling rain 또 공허한 하루가 밝아 오는구나. On the bald street breaks the blank day. 조 곡 (슬픈 노래) 27 from "In Memoriam" xxvii 나는 어떤 기분에서도 고귀한 분노를 모르는 I envy not in any moods 포로를 부러워하지 않노라, The captive void of noble rage, 새장에서 태어나 여름의 울창한 숲을 모르는 The linnet born within the cage, 홍방울새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That never knew the summer woods: 나는 시간의 들판에서 멋대로 뛰노는 I envy not the beast that takes 짐승들을 부러워하지 않노라, His license in the field of time, 죄책감에 구애될 리 없는 이들에게 Unfettered by the sense of crime, 양심이란 것이 생겨날 리 없도다. To whom a conscience never wakes; 스스로 축복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Nor, what may count itself as blest, 나는 부러워하지 않노라, The heart that never plighted troth 한번도 굳은 맹세를 해 보지 않은 마음을, But stagnates in the weeds of sloth; 게으름의 잡초 속에 고여 있는 마음도, Nor any want-begotten rest. 결핍이나 부족에서 생겨나는 휴식도. 그러나 누가 무어라 해도나는 믿노라, I hold it true, whate'er befall; 내 슬픔 가장 클 때 마음 속 깊이 느끼나니, I feel it, when I sorrow most; 사랑을 하고 그것을 잃는 것은 'T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아예 사랑을 하지 않은 것보다 나은 일이라고. Than never to have loved at all. 조 곡 (슬픈 노래) 108 from "In Memoriam" CVIII 나는 사람을 피하지 않으련다, I will not shut me from my kind, 혼자 가슴 태워 And, lest I stiffen into stone, 돌이 되지도 안으련다; I will not eat my heart alone, 스쳐가는 바람에 한숨을 보태지도 않으련다. Nor feed with sighs a passing wind: 불모의 신앙심 속에, 공허한 동경 속에 What profit lies in barren faith,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비록 그 힘으로 And vacant yearning, tho' with might 천국에 이르고, 죽음의 심연에 To scale the heaven's heighest height, 뛰어들 수 있다 하더라도. Or dive below the wells of Death? 천국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What find I in the heighest place, 나의 유령이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이 아닌가 ? But mine own phantom chanting hymns? 죽음의 심연에서 보이는 것은 And on the depths of death there swims 헤엄쳐 다니는 인간의 얼굴뿐. The reflex of a human face. 차라리 인간이 사는 하늘 아래서 I'll rather take what fruit may be 슬픔의 열매를 따리라. Of sorrow under human skies: 슬픔은 우리를 지혜롭게 만든다지, 'Tis held that sorrow makes us wise, 슬픔은 지혜와 함께 잠드는 것. Whatever wisdom sleep with thee. ※ 관련사이트 바로가기 :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51215&CategoryNumber=001001017003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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