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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나의 아파트 서재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아내도 외출을 하여 집에는 아무도 없다. 사방은 아주 조용하다. 그러나 외롭다거나 심심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쩌면 잔뜩 긴장해 있다. 나는 지금 새로 수필을 한 편 쓰려고 앉아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지도 이미 두 달이 더 지나갔다. 이처럼 일단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런데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다. 나는 며칠째 이처럼 책상머리에 앉아 시간만 허송하고 있다. 써야겠다는 생각뿐이지 알맞은 이야기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계속 허탕이다. 오늘도 또 공칠 생각을 하니 초조하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이제 이 일도 그만둘 때가 온 것 같다.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고 보니 낯익은 우체부가 조그만 소포 하나를 들고 서 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수령증에 사인을 해주고 소포를 받았다. 소포는 시골 고향에 살고 있는 친구가 보낸 것이다. 이 친구는 이따금 자기가 손수 거두어들인 것이라고 하면서 쌀이나 밤, 고구마 같은 농산물을 보내준다. 나는 소포뭉치를 부엌에 놓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이번엔 또 무엇인가 하는 흥미와 기대 속에서 단단히 싼 포장을 칼과 가위를 동원하여 벗겨냈다. 그 속에는 조그만 플라스틱 박스 속에 다슬기 (강에 서식하는 달팽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

     소포 속에는 볼펜으로 눌러 쓴 친구의 편지도 들어있었다 : 친구 보게. 여기 보다시피 고향 강에서 내가 손수 잡은 다슬기를 좀 보내네. 이놈들을 잡다보니 자네 생각이 났지.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함께 다슬기 잡던 때도 생각이 났지. 그때는 그처럼 많던 다슬기들이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네. 강 아무데서나 잡을 수 없는 아주 귀한 것이 되어버렸지. 요즈음은 이것도 채소나 닭처럼 사람이 기른다고 하더군. 내가 보내는 것은 내가 어제 직접 강에서 건져낸 진짜라네. 그야말로 자연산이지. 이 다슬기를 예전에 우리가 모두 가난했고 먹을 것이 별로 없었던 시절처럼 맛있게 먹기를 바라네.

     나는 고향친구의 생각지 못한 귀한 선물에 적지 않게 감동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회상에 빠졌다. 그렇다. 고향엔 강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다슬기가 참으로 많았다. 강바닥이나 바위, 또는 돌멩이에 붙어사는 이 다슬기를 잡기는 누구에게나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었다. 잡는다기보다는 주워 모은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특히 여름 장마가 시작되어 강물이 불어날 때가 되면 이 다슬기들은 아마도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하여서인지는 몰라도 모두 강가로 몰려들었다. 이때는 하나하나 주어 담을 필요도 없었다. 글자 그대로 두 손으로 준비한 바구니나 양철통에 퍼 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잡은 다슬기를 집에 가져오면 어머니는 이것들을 넓적한 자배기에 넣고는 깨끗한 물을 부어 넣고는 며칠간 내버려두었다. 해감 (다슬기들이 강바닥에서 흡입한 불순물)을 토해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평균 우리 새끼손가락 마디만 하거나 약간 작고 홀쭉한 크기에 나선형으로 되어있는 이 검은 색깔의 다슬기들은 시간이 좀 지나면 자배기 속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연약한 두개의 더듬이를 움직이면서 제각기 기어 나왔다. 그러다가도 물을 갈아주기 위하여 흔들어대면 곧바로 집 속으로 재빨리 숨어들어간 후 얼마동안 죽은 체 하고 있다가 위험이 다 살아졌다고 생각이 되면 다시 살금살금 기어 나왔다. 이놈들도 미물이었지만 나름대로 대단히 예민하고 영리한 존재들이었다.

     이처럼 해감을 빼낸 다슬기를 요리하는 일은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주로 이것들을 된장찌개나 아욱국에 넣어 끓였다. 나는 지금도 그 때 어머니가 다슬기를 넣고 끓여주었던 아욱국의 그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다음은 다슬기를 먹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슬기를 먹는 방법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하나는 다슬기의 단단한 껍데기의 뾰족한 끝 부분을 어금니로 깨물어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공기가 통하게 만든 후 쪽 소리를 내면서 입으로 빨아들이거나, 아니면 바늘이나 이와 비슷한 꼬챙이를 사용하여 익은 다슬기의 살을 찍어 꺼내어 먹는 것이었다. 다슬기의 익은 살은 바늘에 꿰어 나선형 껍데기 속에서 딸려 나오면서 자주 중간에서 부러져 아까운 살을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바늘에 딸려 나오는 다슬기 살의 속도에 맞추어 다슬기 껍질을 천천히 나선형으로 뱅뱅 돌리는 기술을 혼자서 터득하였다. 살을 빼먹은 다슬기기 껍데기들은 어느새 빈 양재기에 산처럼 쌓였다.

     나는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이 신기하고 귀한 친구의 선물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아내의 반응은 별로였다. 이해할 만도 하다. 아내는 나처럼 강과 더불어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없다. 다슬기도 말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본다고 했다. 이 다슬기를 어떻게 요리해 먹는 것이냐고 묻지 조차 안했다. 아예 다슬기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빨리 이것들을 어떻게 처치해주기를, 정확하게 말해서 어디에 내어다 버려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나는 불같이 화가 났지만 참았다. 어림도 없는 일이지. 이 귀한 것을 내다버리다니! 자기가 정 싫다면 내가 끓여 먹지. 나는 이 다슬기들을 손수 끓여 먹기로 작정했다. 간단했다. 글자 그대로 물에 넣고 끓이면 그만이다.

     나는 곧바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커다란 양은 대야 비슷한 그릇을 찾아 수도 물을 채우고는 다슬기들을 그 속에 쏟아 넣었다. 그리고는 이틀 정도 내버려두면서 서너 번 물을 갈아주었다. 해감을 빼내는 과정이다. 예전엔 몰랐는데 해감을 토해낸 물은 생각보다 더러웠고 비린 냄새도 고약했다.

     이 요리준비 기간 동안 나는 이들을 아주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슬기들은 이 와중에도 그릇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일제히 소리 없이 껍데기 속에서 기어 나와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들도 본능적으로 자기들의 처지가 변하였고, 어떤 위험에 처하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이들은 내가 모르는 자기들만의 의사소통 방법으로 은밀하게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전쟁 포로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처형을 코앞에 둔 사형수의 신세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들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운명의 그 날이 왔다. 나는 물을 반쯤 채운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는 스위치를 돌렸다. 물은 곧 시익 소리를 내면서 끓기 시작했다. 나는 이 끓는 물속에 소금을 조금 집어넣었다. 오늘의 요리는 간단히 다슬기 삶기다. 다슬기들은 그동안 준비를 마친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나는 다슬기를 한 움큼 손에 움켜쥐었다. 물은 사정없이 펄펄 끓고 있었다. 나는 선뜻 다음 단계로 행동을 옳기지 못하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그동안에 이 말 못하는 생물들과 나 사이에 어떤 인연이, 어떤 감정이, 어떤 정서적인 소통과 교류가 생겨난 모양이다. 이제는 이 다슬기 이외에도 먹을 것이 지천인데 내가 구태여 이것들을 산채로 끓는 물속에 집어넣어 죽여야만 한다는 잔인한 사실 앞에서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는 다슬기를 손에 든 채 부엌에서 나왔다.
  
     부엌에서 나온 나는 다슬기들을 모두 플라스틱 백에 쏟아 담아 한 손에 들고 아파트를 나섰다. 나의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자주 산책을 하는 시내가 흐르고 있다. 나는 부지런히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알맞다고 생각되는 장소에 도착하여 이것들을 모두 흘러가는 개울물에 쏟아 넣었다. 나는 나의 다슬기들이 이 새로운 서식지에 잘 적응하여 오래 살고 크게 번식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과 발길은 아주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즉시 고향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내준 달팽이는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살다보면 사람은 거짓말도 하게 되고 또 해야만 할 때가 있다.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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