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이슈 > LITERARY WORKS

본문 바로가기

  LITERARY WORKS


빅 이슈

페이지 정보

본문

pen_write-s.png

 

     지난주 목요일 나는 길거리에서 잡지 한권을 샀다. 솔직히 말해서 꼭 읽어보려는 마음보다는 그 잡지를 팔고 있는 사람에 대한 동정심에서였다. 지난 겨울방학 내내 나는 이 등산복 비슷한 붉은 색 상의를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흑석동 중앙대학교 정문 입구 벤치 한 구석에 The Big Issue (빅 이슈)라는 영어로 된 생소한 잡지를 몇 권 벌여놓고, 손에는 이 잡지 한권을 들고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서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였다. 그 곳은 항상 많은 학생들과 행인들로 북적대는 곳이었지만 잡지를 사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잡지를 팔고 있는 남자에 대하여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이 잡지를 팔고 있는 남자와 그의 영업방식에 대하여 궁금함과 의아함을 느꼈다. 이 사람은 길에서 잡지를 팔고 있음은 분명하였다. 길거리에서 잡지를 판다? 그것도 영어 잡지를? 처음 나는 이 잡지가 영문 시사주간지 Time (타임)이나 Newsweek (뉴스위크)와 같이 국제적인  시사문제를 다룬 새로 창간된 영어잡지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어째서 이런 수준 높은 잡지를 길거리에서 행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선전기간인가? 궁금한 일이었다.

     궁금한 나는 잡지가 진열 된 그 벤치로 다가 가 한 권 집어 몇 페이지 넘겨보고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우선 나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새로운 잡지이던 간에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정기구독 하여 오던 잡지도 이제 이런 저런 이유로 구독을 중단하려는 참이다. 또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이 상인에게 드디어 한 권 팔았구나 하는 헛된 희망과 동시에 실망을 주기도 싫었다. 일단 잡지에 손을 댔다하면 한 권 사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왔다.  

     그런데, 지난 주 드디어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잡지를 한 권 사고 말았다. 사고 보니 놀랍게도 잡지의 표지에 커다란 글자로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는 영문 표제와는 달리 그것은 완전히 우리글 (한글)잡지였다. 잡지 이름만 영어였지 내용은 교양과 오락 위주의 평범한 일반 잡지였다. 어째서 우리글 잡지에 영어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느냐 하는 나의 의문은 잡지를 팔고 있는 빨간 상의를 입고 있는 판매원의 설명과 함께 곧 모두 풀렸다.  

     한마디로 말해서 “큰 문제”라는 뜻을 가진 이 빅 이슈라는 잡지는 홈리스 (노숙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잡지이다. 잡지이자 기업이고, 자선단체이자 일종의 국제적인 기구이기도 하다. 이 잡지는 홈리스들의 딱한 처지와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이들의 재기와 재활을 돕고자 1991년 영국에서 최초로 창간되었으며, 현재 이 잡지는 같은 영문 이름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 걸쳐 10개국에서 총 14종이 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5년 이상 홈리스들의 자활을 지원하여 온 비영리 봉사단체인 “거리의 천사들”이 이 잡지의 창업 이상과 영업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2010년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다수의 공사 협력업체와 기업, 개인들이 이 잡지의 발간에 도움을 주고 있다. 빅 이슈는 매월 2회 발행되고 있으며, 판매원들은 이 잡지를 팔아 자신의 삶을 새로 개척해보겠다는 재활의 의욕과 의지를 갖춘 홈리스 중에서 선발된다. 한 권 팔 때마다 권당 3,000원 정가에서 1,600원이 판매원에게 돌아간다.

     흑석동 중앙대 정문 입구에 자리를 잡고 이 잡지를 팔고 있는 붉은색 상의의 중년 남자, 금년 57세의 임흥식 씨도 홈리스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전기기술자로서 결혼도 해서 아들도 하나 둔 행복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작업 중 사고로 왼쪽 시력을 잃게 되어 전기기술자로서의 일을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생계를 위하여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막노동 일도 해야만 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운반하던 그는 설상가상으로 허리를 다쳐 일은 물론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다. 벌어놓은 얼마 되지 않은 돈은 치료비로 모두 없어졌고, 이 와중에서 아내는 아들과 함께 그를 떠났다. 마침내 쪽방 신세가 된 그는 그나마 방세를 오래 내지 못하여 더 이상 주인 보기가 미안하여 스스로 방을 비워주고 거리로 나서야만 했으며, 마침내 그는 영등포 전철역사 내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 위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홈리스가 되고 말았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홈리스 되기 참 쉽데요. 나도 내가 정작 노숙자가 되어 길에서 잠을 자게 될 때까지는  내가 차마 홈리스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지요.”  

     그러나 그는 운이 좋았다. 그는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각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친절한 의사를 만났으며, 이 의사는 자기의 허리를 치료하여 주면서 동시에 이 빅 이슈라는 잡지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고, 이 잡지의 판매원이 되도록 적극 격려하고, 추천하고, 주선하여주었다. 결과 그는 현재 전국에 모두 50여명 밖에 안 되는 빅 이슈 판매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재도 홈리스로서 이 잡지를 거리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 그는 길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절박한 처지는 아니다. 그는 자기가 번 돈으로 소형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가 항상 입고 있는 붉은색 상의는 모든 빅 이슈 판매원에게 회사에서 지급하는 일종의 유니폼이다.

     비록 임흥식 씨가 현재 노상에서 벌리고 있는 이 사업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업은 사업이라 거기에 따른 애환과 어려움 또한 적지 않다. 우선 비오는 날은 별 수 없이 공치는 날이다. 물건을 진열할 곳이 없다. 사실 현재 임흥식 씨가 상품을 진열하는 벤치도 중앙대학교 구내의 시설물로서 그는 이것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당국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다. 그동안 그는 학교당국으로부터 2회에 걸쳐서 벤치를 사용하지 말 것과 그곳에서 상행위를 하지 말고 그 장소를 떠날 것을 통고받았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였으며, 그의 처지를 알게 된 몇몇 학생들이 그를 위하여 학교 당국과 만나 협상을 벌인 결과 몇 가지 조건을 준수한다는 서약 하에 현재의 자리에서 사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애써준 학생들과 학교당국의 너그러운 처사에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또 그는 이 사업 덕분에 홈리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생일대의 명예를 누렸고 호강도 했다. 지난 해 그는 이 빅 이슈 판매원들 가운데서 풋살 (5인이 한 팀이 되어 경기하는 일종의 축소한 축구경기) 선수로 선발되어 한국 홈리스를 대표하여 프랑스 빅 이슈의 주관 하에 파리에서 개최된 홈리스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는 영광을 누렸다. 대회기간 동안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한 호텔에 투숙하였으며, 대회 가 끝난 다음에는 센 강의 유람선을 위시하여 에펠탑, 그리고 파리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관광까지 하고 돌아왔다. 다시는 자신에게 그런 화려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임흥식 씨의 얼굴에서 나는 자부심과 아쉬움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다.  
  
     임흥식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가 놀라울 정도로 똑똑하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이 빅 이슈의 판매원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으며 또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물론 그는 잡지를 한 권이라도 더 많이 팔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동정심에서가 아니라 잡지 자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가게 되기를 바란다. 장래 목표나 소망에 대하여 묻자 그는 즉시 대답했다. “먼저 건강을 회복해야지요. 눈은 이제 회복 가망이 없어요. 허리는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그저 지붕이 있어 눈비를 맞지 않아도 되고, 틈틈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조그만 나만의 가게라도 하나 갖게 되기를 바라지요.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추운 날, 또 햇볕 쨍쨍한 여름 날 하루 종일 길거리에 오래 서 있기가 너무 힘들어요. 나도 이제 나이를 느끼게 되네요.”
     (2012년 5월)  

추천1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설문조사

결과보기

새로운 홈-페이지에 대한 평가 !!??


사이트 정보

LEEWELL.COM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123-45
02-123-4567
[email protected]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인배
오늘
258
어제
1,638
최대
5,833
전체
2,690,803
Copyright © '2006 LEEWELL.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IN-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