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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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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나에게는 덩그러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장한 자식들은 (딸 셋) 이미 모두 결혼하여 집을 떠났고, 함께 살았던 노모도 구십 일세로 몇 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부친은 6.25 전쟁 중 내가 열 살인가 되었을 때 폐결핵으로 돌아가심) 집에는 이제 우리 부부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아내도 예전처럼 집에 있지 않고 자주 이런 저런 이유로 외출을 하여 친구들을 만나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먹고 돌아온다. 아내는 자기가 집에 없어도 내가 냉장고 속에 준비된 음식을 잘 찾아 먹고 설거지까지 깨끗이 해놓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의 처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의 경우가 그런 것 같다.  

      나도 이제는 텅 빈 집에 혼자 남아있는 단조로운 생활에 꽤나 익숙해졌다. 처음 얼마간은 이처럼 하루 종일 빈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이상하고 거북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런 경험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학교에서나 밖에서 놀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왔을 때 느껴본 바로 그런 정적과 고독감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내가 겪고 있는 이 정적은 그 성격이나 강도에 있어서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만 잠시 기다리면 없어지거나 깨어져버렸던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증가하고 심화될 그런 것이다. 이것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끈질기게 나를 따라붙을 것이다. 나는 이 고요함의 무게를 감지한다. 이 속에서 나는 지금 소리 없이 눈에 보이지 않게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이 고요함이 두렵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 혼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나의 직계 가족들만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멀고 가까운 친척 어른들도 거의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통틀어 나를 가르쳐주었고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들도 이제는 거의가 돌아가셨거나 소식이 끊기어 만나 뵐 기회가 없다. 이제 내가 어떤 어려운 일에 처하였을 때 상의하거나 도움을 청할 그런 어른은 나의 주변에 없다. 새삼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이제는 싫으나 좋으나 나 홀로 살아가야만 된다. 나는 자주 내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고 서 있는 고목에 아직도 남아서 바람에 떨면서 버티고 있는 잎사귀들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내가 떨어질 차례다.

     이따금 쥐죽은 듯한 실내의 정적은 갑자기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깨어지며 동시에 나의 가슴은 아플 정도의 기쁨과 기대감으로 뛴다. 그러나 이 즐거움도 전화 수화기를 잡는 순간 깨어진다. 전화는 좋은 땅을 사라는 부동산 업자의 권고, 아니면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를 묻는 여론조사, 아니면 구형 핸드폰을 신형으로 교환하여 주겠다는 여자 판매원으로부터 온 전화다. 이제는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나를 찾는 전화는 거의 없다. 세상이 더 이상 나에게 용무가 없기 때문이다. 따져보니 이제 내가 누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손자 손녀들도 이미 다 커버려 이들을 돌보는 일도 이미 끝났다. 그처럼 흔하고 많던 나를 찾는 전화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새삼 궁금할 때도 있다. 한 때 어떤 전화 한통은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는 일도 있었다. 그런 전화는 이제 있을 리 없다. 이제 모두 옛날이야기다.

      어제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난 나는 갑자기 외출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하였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 중요한 일을 처리하여야만 하는 사람처럼 특별히 평소 아니하던 샤워도 하고, 정성들여 면도를 하고, 장롱에서 양복과 와이셔츠와 넥타이도 챙겨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넥타이를 매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눈감고도 맬 수 있었던 넥타이가 영 뜻대로 매어지지 않아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넥타이를 매어본지도 꽤나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외출을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과 의욕은 넥타이와 실랑이질을 하는 사이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실제로는 특별히 만날 사람도, 딱 부러지게 할 일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슬며시 외출을 포기하고는 그냥 집에 있기로 하였다. 새장 안의 안일함과 편안함에 길이든 한 마리의 새처럼 나는 이제 게을러지고 허약해져버렸다.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두렵고 귀찮아졌다. 지하철의 높고 또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은 나의 무거워진 다리로서는 담당하기에 벅찬 일이다. 외출은 이제 나에게 하나의 힘든 일이요, 큰 모험이다.

      양복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요즈음 나는 부쩍 양복을 입고 외출을 하고 싶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는 이런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는 양복을 입도록 되어있는 결혼식이나 생일잔치 (회갑연, 아니면 고희연), 정년 퇴임식, 논문봉정식 등에 오라는 초대장도 오지 않는다. 심지어 장례식에 오라는 통지도 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자녀들을 결혼 (출가) 시켰고, 부모들의 환갑잔치나 고희연도 모두 지났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의 회갑은 물론 고희도 지난 사람들이다. 부모들 장례도 이미 모두 오래전에 치른 상태다. 이런 행사가 없으니 정장을 할 기회가 좀처럼 없다. 대단히 섭섭한 일이다. 양복장 속에서 그대로 걸려있는 멀쩡한 양복과 깨끗한 와이셔츠, 고급 넥타이를 볼 때마다 지나간 세월이 그립다. 이 옷들도 나처럼 소리 없이 집안에서 늙어가고 있다. 항상 입기에 편한 캐주얼만 입는데도 이제 싫증이 난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젊은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누구나 일생에 있어서 언젠가는 고독과 단조로움 속에서 보내야만 하는 때가 찾아온다. 싫어도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런 한 과정이다. 그렇지 않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가 오면 누구나 예외 없이 시간이 가져오는 그 억울하고 때로는 굴욕적인 항복조건을 수락하여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금까지 무사히 인생의 모든 단계를 거쳐서 이제 그 마지막 단계에 도착하였다. 나는 넓은 세상에 나가 큰 도시도 여럿 보았고, 높은 산에도 올라가 아름다운 경치도 내려다보았다. 이제 무사히 하산하여 집에서 쉬고 있다. 이제 나의 여행은 끝났다. 이제 나는 당연히 외롭고 심심할 때다. 고독과 정적에 만족할 때다. 아니 오히려 감사할 때다.

      그러나 이런 엄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슴은 아직도 틈만 나면 나에게 밖에 나가 무엇을 찾아보라고 속삭인다.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죽치고 집에 있지만 말고 밖에 나가 무엇을 찾아  해보라고 끈질기게 나를 유혹한다. 가슴은 나이를 모른다. 세월이 흘러도 가슴은 믿을 것이 못된다. 다행스럽게도 무거원진 나의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다리가 무거워진 것이 천만다행이다. 싫어도, 가슴이 아파도, 때가 오면 계절의 끝도, 사랑의 종말도 수락하여야만 한다. 어느덧 저녁이다. 어두움이 찾아올 시간이다. 어차피 올 것이라면 부산떨지 말고 조용히 오도록 내버려 두자.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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