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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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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3일 오전 10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 (48세) 씨와 그의 동료 산악인 두 사람을 위한 특별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시신이 없이 엄수된 장례식이었다. 이들은 히말라야에 있는 해발 8,091 미터 높이의 안나푸르나 봉의 등정에 나섰다가 지난 10월 18일자로 실종되었으며, 국내외 구조대가 10일간 수색을 벌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이들은 크레바스 (얼음 계곡이나 빙하의 갈라진 틈) 속에 추락하였거나 눈사태를 만나 그 아래에 파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례식에는 유가족들을 위시하여 수많은 산악인들과 산악에 관련된 단체들이 거의 모두 참석하였으며, 국내의 모든 매스컴에서는 이 장례식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크게 보도하였다.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있었던 산악인 장례식으로서는 매스컴의 조명을 받은 가장 큰 장례식이었다.

     나는 산악인 박영석 씨의 이번 조난 사건을 그가 자신만만하게 출발하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실종되었다는 소식, 구조작업의 진행, 그리고 마지막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부러움과 의아함, 불안, 초조, 안타까움이 뒤섞인 심정으로  TV와 신문을 통하여 자세히 지켜보았다. 우선 나는 어째서 박영석 씨가 구태여 이번 등반을 시도하려하였는지가 의문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럴만한 이유나 동기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가 이번에 등정하고자 했던 안나푸르나 봉은 이미 그가 15년 전 1996 년에 정복한 산이었다. 한번이면 되지 않았을까? 보도된 바에 의하면 박영석 씨와 그의 일행은 이번 등정에서 안나푸르나 정상을 남쪽 면으로 오르는 루트를 하나 새로이 개척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야심찬 목표가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루트를 최초로 개척하여 한국 산악인 전체의 명예를 드높이고 등산가 박영석 씨 개인의 이름도 남기겠다는 숭고한 목표가 그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럴듯하지만 얼마나 무모하고 허망한 구실인가? 이 모험에 따르는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이런 등산에 항상 수반하는 죽음의 가능성을 박영석 씨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더구나 산악인으로서 박영석 씨는 이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국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를 통하여서도 그가 지금까지 이룩한 기록을 깨뜨릴 산악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소위 산악인으로서는 최고의 명예인 “그랜드 슬램”(Grand Slam)을 달성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전 세계에서 최단 시일 내에 히말라야 8천 미터 이상의 고봉 14개를 모두 정복하는 기록을 수립하였으며, 여기에 더 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는 산 7개 모두를 정복하였으며, 도보로 남극과 북극에 도달하는 전무후무의 기록을 세운 사람이다. 그의 이 초인간적인 업적을 인정하여 정부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그에게 스포츠 분야의 인사에게 수여하는 최고최대의 명예인 청룡훈장을 수여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번 비극이 일어나기 전 그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였다는 그의 어록의 일부가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속에는 그의 심적 내면을 잘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길함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이처럼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등반 중에 함께 간 동료들을 여럿 잃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산악인은 산에 갈 수 있는 동안 산악인이다. 탐험가는 탐험을 하는 한 탐험가이다. 동물원 우리에 있는 호랑이가 진짜 호랑이 일수가 없듯이 집에 있는 산악인은 산악인이 아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산에 갈 것이다.” 이런 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지금까지 이룩한 엄청난 업적에 만족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에도 만족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박영석 씨에게 있어서 평범한 일상생활은 그가 30세가 된 1993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그리고 동양인으로서도 최초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에 오름과 동시에 끝났다. 그때부터 그의 생활은 평범할 수가 없었다. 그는 유명해졌다. 그에게는 명예와 돈도 생겼다. 그는 등산에 관한한 하나의 전설 내지 신화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우리 보통사람들과 다른 사람으로 만든 것은 그가 해발 8,848 미터 고도에서 그 사람만이 체험한 그 무엇 때문이었다. 그가 지구상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그의 폐 속으로 들여 마신 공기, 손으로 만져본 눈,  그의 눈과 귀를 통하여 보고 들은 바람소리와 변화무쌍한 구름의 모양은 이 아래서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는 항상 산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는 너무나 분명하고 강력해서 거부하거나 대항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몸은 집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이나 생각은 언제나 먼 그곳에 가 있었다. 그는 여기 있으면서도 자신의 체력과 용기를 시험하고, 호흡의 한계를 체험하고, 근육과 에너지와 열량을 소진할 수 있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와 위험,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 이 있는 곳에 가 있었다. 그에게는 일상의 평온함이 오히려 불안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산의 부르는 소리는 그로 하여금 모든 것 - 사랑하는 아내의 따뜻한 품도, 자녀들의 사랑스런 얼굴이나 미소도, 친구들과의 허물없는 술자리도 - 무정하게 저버리게 할 만큼 너무나 강력하고,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제 그만하라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충고와 간청에 귀가 먹어있었다. 모두가 산의 부름 때문이었다.  

     박영석 씨는 아늑한 아파트에서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난방 속에서 게으름을 피우면서 한가하게 늙어가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모험을 그만두고 편안하게 쉬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젊음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과 고통의 술잔을 저 맨 밑바닥에 남아있는 앙금까지 마시고 싶어 했다. 그는 때로는 동료들과 함께, 때로는 혼자서, 신나게 즐기고 신나게 고생하기를 갈망하였다. 모험을 그만두고 쉰다는 것, 이제 종착지에 도달하여 더 갈 곳이 없다는 것, 쓰지 않아 몸과 마음에 녹이 슨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이 나지 않는 다는 것 - 이 얼마나 그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그는 단지 유명해진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제 한창 나이에 실종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세출의 산악인 박영석 씨의 죽음에 심심한 애도를 표하면서 나는 당년 48세라는 그의 나이에 관심을 가지고 잠시 생각해 본다. 만약에 박영석 씨가 50세만 지났더라면 그는 이번의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거나,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이번의 모험을 그만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48세란 나이는 박영석 씨처럼 보통이상의 강인한 체력을 타고났으며,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으로서는 모험을 그만두기에는 참으로 애매하고 어려운 나이라고 생각된다. 계속하기엔 조금 늦었고, 포기하기엔 약간 이른, 박영석 씨는 어쩌면 산악인으로서는 전성기를 넘긴 사람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것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일생에 아주 중대한 순간에 처해있었다. 이번 원정이 그에게 마지막 등정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이번 등정에 성공하고 무사히 귀환하였더라면 아마도 그도 나처럼 평범한 늙은이로서 노년에 따르는 시시껄렁한 즐거움에 만족하면서, 크고 작은 슬픔과 괴로움과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지루하게 늙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그가 부럽기도 하다.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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