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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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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를 바라볼 때마다 “새처럼 자유롭게”라는 문구를 떠올린다. 간단하고 평범한 문구이지만 참 좋은 비유라고 생각된다. 우리 인간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날아 언제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새의 처지를 부러워하고 동경하였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을 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 문구는 우선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을 나에게 가져다준다. 날개가 없는 나도 어느덧 한 마리 새가 된 기분이다. 잠시나마 세상의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도 맛본다.


     “새처럼 자유롭게”는 나의 오랜 염원이었다.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젊어서는 물론 나이 들어 퇴직을 한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온 꿈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마침내 정년퇴직을 하였을 때 나는 지금부터는 오랫동안 나를 구속하고 속박하여 온 모든 일,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해방되어 글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살게 되어 기뻐했다. 오래도록 기다리고 갈망하여 온 자유에다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터득한 삶의 지혜를 가지고 나는 새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떠한가? 솔직히 말해서 기대하였던 만큼 그렇게 자유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 전보다 자유롭다고는 할 수 있지만 결코 더 행복하지는 않다. 우선 전보다 외롭다. 걸려오는 전화가 없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전화를 걸 곳도 없다. 하루하루가 따분하고 지루하다. 뭐 재미있다거나 신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 좋은 내용의 책들도 예전처럼 즐거움이나 위안을 주지 못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많은 시간을 지난 일을 회상하는 데 보내고 있다. 그 결과는 항상 우울하다. 자주 이유 없이 불안하다. 늙어가는 것이 서럽다. 죽음이 두렵기도 하다.  

     나는 지금 대단히 혼란스럽고 실망이 크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그렇게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 모양이란 말인가?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읽은 책들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식은 모두 어디 갔으며 쌓인 지혜는 어디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고 누가 말했나? 멀쩡한 거짓말이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행복은 또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유와 행복은 별개의 것인가? 누구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이 내가 늙었기 때문인가? 모든 것이 결국 다 나이 탓인가?

     울적한 심사를 달래기 위하여 나는 산책을 나선다. 점심을 먹은 후 약 한 시간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흐르는 하천을 따라 걷는다. 약 십여 년 전만 해도 이 개울은 너무나 오염이 심하여 악취가 심하였고 생명의 흔적조차 없는 완전히 죽은 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수질이 많이 개선되어 이제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엄쳐 다니는 하천으로 다시 살아났다. 개울물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하천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길도 걷기에 너무나 편리하고 쾌적하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집을 나설 때 나를 괴롭혔던 그 잡다한 생각들이 어느덧 씻은 듯이 살아지고 나는 다시 삶의 여유와 기쁨을 맛본다. 여름내 무성하게 자란 갈대들이 이제 모두 하얗게 꽃을 피워 가을바람에 흔들리면서 춤을 추는 모습은 더 할 수 없이 아름답다.

     하천이 생명을 되찾고 시내 물에 물고기들이 살기 시작하니까 언제부터인지 이것들을 먹이로 하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개울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로 야생 오리들이다. 가끔 다리가 기다랗고 주둥이가 노란 해오라기도 눈에 뜨인다. 이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놀라 멀리 날아가 버리더니 요즈음에 와서는 경계심을 늦추고 사람들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항상 멀리서 하늘을 나는 새들만 바라보며 “새처럼 자유롭게”만 흥얼거려온 나는 이 산책길에서 개울가에서 생활하는 오리나 해오라기를 가까이서 오래도록 마음껏 바라보는 즐거움도 누린다.
    
     그런데 이 새들을 관찰하다보니 지금까지 내가 막연히 새들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들이 결코 자유롭거나 한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새들은 항상 아주 바쁘다. 이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자리에 한가하게 가만히 있는 법이 별로 없다. 어떤 일에 항상 몰두해 있다 - 먹이를 찾아 개울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고, 무엇인가를 먹고, 새끼들을 끌고 다니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가는 또 내려앉기도 하고, 털을 다듬고 - 쉬는 법이 없다. 잠시 졸거나 쉬면서도 항상 어떤 위험이나 적으로 부터의 공격에 대비하여 경계태세를 늦추는 법이 없다. 알고 보니 이들은 하늘을 나는데 있어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이들에게 허용된 공간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이 제한된 범위를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허공을 나는 새가 아니고 이처럼 개울가에 내려앉아 생활하는 새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지난 날 항상 바쁘게 살았던 나의 모습을 본다. 한 때 나도 이 새들처럼 쉴 사이 없이 일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했지만 분명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 나는 지금 너무 긴 휴가를 얻고 있다. 흔들이 의자에 비스듬히 누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닥쳐올 미래를 생각하면서,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새김질하면서, 따뜻한 햇볕 속에서 주로 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늙은 개처럼, 그간 나는 나도 모르게 나태해지고 게을러졌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나의 정신과 육체를 바쁘게 만들고 피곤하게 만들어 줄 일이다. 활동이다.

    나는 산책을 일찍 끝내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나는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았다. 오늘따라 나는 그간 느껴보지 못한 어떤 에너지가 나의 몸속에서 솟아남을 느낀다. 이상한 흥분도 느낀다. 이런 마음의 상태로 책상 앞에 앉아본지도 퍽 오래되었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글쓰기에 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였다. 마음속으로는 이제 더 이상 글을 쓰기도 싫고, 쓸 수도 없고, 더 쓸 필요도 없고, 더 써 보아야 예전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자포자기의 심정과 자기위안에 빠져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을 육체적 정신적 집중 속에 집어넣는 고통과 고뇌를 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글을 쓰련다. 나의 이 글쓰기 작업은 이 시작한 글이 긑날 때까지나마 나의 행복을 방해하였던 자유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줄 것이며 결과적으로 나를 다시 “새처럼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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