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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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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수 없이 노인이 되어버린 내가 최근에 와서 새삼스럽게 발견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청년 중년을 통하여 그처럼 자주 꾸었던 꿈 말이다. 요즈음 나는 잠은 자도 꿈은 꾸지 않는다. 꾼다고 해도 그것은 전처럼 나름대로 어떤 연속성이나 연관성이 있는 선명한 꿈이 아니고 모두가 분명치 않은 단편적인 장면들로써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기억에서 깨끗이 없어져 버리는 것들이다. 한편의 신나는 영화처럼 (그 내용은 비록 황당하다 하더라도) 어떤 이야기가 있고 거기에 알맞은 인물과 배경이 있는 그런 꿈들은 (그래서 깨고 난 후에도 때로는 그 꿈을 계속 더 꾸고 싶거나, 다른 사람에게 다시 들려줄 수 있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섭섭한 일이다. 도대체 그 많고 흔하던 꿈이 모두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돌이켜 보니 그동안 나의 꿈에 가장 빈번히 등장한 꿈의 소재는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고향의 산천과 연관된 것들이었다. 특히 언제나 유유히 흘러가는 강이었다. 내가 살았던 초가집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철따라 강은 소년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였다. 소년에게 강은 놀이터요 생활공간 전부였다. 강은 소년이 모르는 사이 그러나 확실히 그의 의식 깊숙이 흘러들어갔으며, 소년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흘러갔으며, 소년의 꿈에도 나타났다.

     꿈속에서 나는 자주 강가를 걷고 있었다. 걷다보면 주인 없는 낚싯대 하나가 받침대 위에 고여 있었고 낚싯줄은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으나 찌는 물 위에 동동 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하게 떠있던 찌가 요란하게 상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낚시 대를 힘껏 뒤로 잡아챈다. 나는 휘어지는 낚싯대와 팽팽한 낚싯줄에서 낚시에 물린 물고기의 크기를 직감적으로 느낀다. 물고기는 끌려나오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뭍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번쩍이면서 하얗게 빛나는 물고기의 배를 본다. 엄청나게 크다. 마침내 물고기를 뭍에 끌어올려 놓은 순간 나는 잠을 깬다. 아쉽게도 꿈이었다.

     이런 꿈도 자주 꾸었다. 여름 철 고기 잡는 방법에는 낚시 이외에 어항이라는 것이 있었다. 얇고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물병 모양의 이 항아리는 물고기들이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어렵게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 어항을 보통 무릎 정도의 깊이의 물에 놓았지만, 헤엄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나의 키보다는 두서너 배 깊은 곳에 어항자리를 마련하였다. 쫌 더 큰 물고기를 잡겠다는 욕심에서였다.

     나는 어항을 한손에 들고 헤엄을 쳐 강 한가운데로 멀리 나가 어항자리 위에서 곤두박질하였다. 숨을 내어 쉬면서 호흡을 중단하면 나의 몸은 쉽게 지정된 장소로 내려앉았다. 엄마들이 잠든 아기 조심스럽게 잠자리에 뉘이듯이 나는 미리 잘 닦아놓은 자리에 어항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얇은 유리 어항은 돌에 살짝만 부딪혀도 쉽게 깨어졌다. 어항을 제대로 놓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강바닥을 박차고 다시 물 위로 솟아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강가에 헤엄쳐 나와 얼마를 기다린 후 나는 다시 어항을 건져 올리기 위하여 헤엄쳐 나갔다.

     어항 속에는 어김없이 같은 크기의 큰 피라미들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피라미들은 마치 보석상자 속의 수많은 각종 보석들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내가 접근하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피라미들은 어항을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이면서 어항을 잡고 있는 나의 손가락에 부딪쳤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이 피라미들의 주둥이가 나의 손가락에 부딪히던 그 부드러운 충격을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이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분명치 않다. 꿈이기도 하였고 생시이기도 하였다.

     고향을 떠나 잊고 산지도 오래되다보니 자연히 이런 꿈도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강도, 내가 살았던 언덕 위의 초가집도, 주인 없는 낚싯대도, 어항 속에 보석처럼 빛나던 피라미들도 이제는 나의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 어디 이런 꿈뿐이랴. 새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마음대로 날아 다니는 꿈도, 수천 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시커먼 바위 동굴 속을 혼자서 탐험하는 꿈도, 끝도 없이 펼쳐진 꽃이 만발한 들판을 노루처럼 달리는 꿈도 이제는 꾸어지지 않는다. 이런 신나는 꿈이 없어진 나의 잠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한 모험이나 로맨스의 세계로 인도하는 통로가 아니다. 이제 잠은 단순이 하루의 끝이요,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과정이다.

     이왕에 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세상에 꿈처럼 신기하고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드물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가 꿈에 대하여 아는 것이나 느끼는 것은 석기시대 이전 동굴 속의 원시인보다 결코 나을 것도 없고 또 다를 것도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꾸지만 실제로 꿈에 대하여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옛 속담도 결국 꿈과 현실의 거리를 인정하는 말이다. 꿈은 예측할 수도 없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꿈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했으며, 꿈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현실에 맞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꿈이 앞으로 닥쳐올 일을 (그것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간에) 미리 알려주는 어떤 초자연적인 징조나 예시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꿈에 돼지를 보면 돈이 생긴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에 어떤 사람은 꿈에 돼지를 보고나서 복권을 사 일등 당첨이 되어 아주 큰돈을 버는 행운을 얻었다고 들었다. 나도 한번 돼지꿈을 꾸고 나서 혹시나 해서 복권을 샀지만 본전만 날린 적이 있다. 꿈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미신적인 존재임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꿈은 전적으로 무시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믿기도 어려운 현상이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것이 꿈이다.

     그런데 꿈이 최근에 와서 아주 이상하게, 아니, 아주 위험하게 변하였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그것이 어떤 내용의 꿈이던 간에 - 좋던 나쁘던, 희미하던 선명하던 - 꿈은 꿈으로 끝났다. 그런데 최근 나에게는 아주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며칠 전 나는 꿈을 꾸었다. 요즈음 나의 꿈이 모두가 그렇듯이 앞뒤가 있는 것이 아니며 깨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다. 꿈에서 어떤 상대를 만났는데 그것이 집에 침입한 강도였는지, 사나운 개였는지, 호랑이였는지, 황소였는지 분명치가 않다. 하여간 이놈은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극도로 긴장한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이놈을 오른발로 냅다 걷어찼다. 차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앉아 두 손으로 오른발을 감싸 쥐었다.

     내가 혼신을 다하여 걷어찬 것은 침대 옆 시멘트 콘크리트 벽이었다. 어찌나 세게 정확하게 걷어찼는지는 나 자신이 놀랄 지경이었다. 발가락이, 특히 엄지발가락이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아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픈 발가락을 감싸 쥐고는 어린애처럼 징징 울면서 밤을 새웠다. 너무나 아파서 다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 때문에 잠을 설친 아내는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한마디 하였다. “그것이 벽이었으니 망정이지 내 옆구리였으면 큰 일 날 뻔 했우.” 나는 심사가 뒤틀렸지만 아내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정도 아픔이라면 아내의 갈비뼈 몇 개는 부러뜨리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꿈이 사라졌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주 사치스런 푸념이다. 이제는 꿈을 꾼다는 자체가 두렵다. 잠이 드는 것도 두렵다. 전에도 꿈속에서 발로 무엇인가를 걷어찬다거나, 주먹으로 때려야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오히려 그 행동이 현실처럼 이루어 지지 않아서 안간힘을 쓰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정상이었다. 이제 나는 꿈조차 통제할 능력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쩌다 내가 이 모양이 되었단 말인가?

     이제 나에게는 꿈과 현실을 갈라놓는 경계선이 없어졌다. 꿈에서도 생시처럼 손과 발이 제멋대로 나간다. 이러다가는 내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 줄 누가 알겠는가? 우선 침대를 벽에서 멀리 떼어놓는 조치를 취했다. 동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어보니 다행스럽게도 뼈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 사고가 있은 후 아내는 베개를 싸들고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이 모든 불행과 불운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늙었기 때문이다. 심신의 기능이 쇠퇴하였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빨리 죽어야한다. 꿈과 현실도 구별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더 살아서 무엇 하리.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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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님의 댓글

김나영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안녕하세요,

전 전공은 전혀 영어와 무관한 간호학을 했으나 언젠가는 영어로
교수님 처럼 쉽고도 아주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는 김나영이라고 합니다.

제가 요즘 매일 신문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잡지(리더스 다이제스트) 에 열렬한 애독가(?)이셨고 연세가 드셔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신다고
뭐 그런 내용의 글 이후로( 그때 그 글 내용이 아주 재미있었는데 이것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정말 오랜 만에 다시 교수님의 글을 읽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메일을 보냅니다.

혼자서 교수님 글의 좋은 부분을 적어 뒀다가 그냥 연습삼아 다시 써 보기도 하고 했었는데
요즘 교수님을 도통 신문에서 못 본것 같아 아쉬웠었습니다. 그럼 이제 발가락은 괜찮으신건지....
좋은 하루 되시고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교수님 건강하세요.

P.S) 전 교수님을 한번도 개인적으로 뵌적도 아무런 연관도 없는 그냥 코리아 타임즈 애독자 임을 말씀드립니다.
혹시나 교수님께서 아는 사람인가 고민하시지는 않을까 해서.....
                                                                                                              김나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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