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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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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나는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것이 힘이 들어 장거리 해외여행은 거의 포기한 상태다.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그런대로 해외여행도 할 만큼은 한 셈이다. 무엇보다 나는 세계에서 크고 유명하다는 도시들 가운데 몇몇 개를 잠사나마 방문하였다는 사실을 내 일생에 있어서 큰 자랑이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한 시간 집에 혼자 있다 보면 나는 종종 나도 모르는 사이 예전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 이 도시들을 하나하나 기억 속으로 불러들여 그 곳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혹시 TV나 라디오, 신문이나 잡지에서 내가 한번 다녀온 경험이 있는 도시에 관한 어떤 작은 언급이나 소개에 접하게 되면 나의 눈앞에는 순간적으로 그 도시에 있는 명소나 유적지, 유명한 건축물, 기념물 등이 떠오르고, 상상 속에서나마 잠시 즐거웠던 그 시간을 되 살아 본다. 행복한 추억이야말로 나이 든 사람에게는 돈 다음으로 귀중한 자산이다.

        오늘 아침 나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라디오의 리모컨을 무심히 눌렀다. 다이얼을 항상 KBS FM으로 고정시켜 놓은 라디오에서는 마침 프로담당 여자 아나운서가 핀란드 태생의 작곡가 시벨리우스(1865-1957)의 “필란디아”를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시벨리우스”라는 소리에 순간 귀가 번쩍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장중하게 울려나오는 이 곡을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흥미와 집중력을 가지고 끝까지 들었다. 내가 만약 지난 해 여름 헬싱키를 여행하였을 때 그 곳에 있는 <시벨리우스 공원>을 거닐어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 곡을 다 듣지 않고 중간에 다른 일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우리들이 - 34명으로 구성된 북유럽 관광단 - 노르웨이를 거쳐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하여 여기 저기, 이것 저것을 구경하고 난 후 어느 공원으로 안내되었을 때 우리들은 모두 시큰둥했다. 좀 심하게 말해서 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 터였다. 그러나 나는 이공원이 <시벨리우스 공원>이라는 사실에 조용히 흥분하고 있었다. 시벨리우스라면 노르웨이 출생의 드보르작과 더불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핀란드 출신의 작곡가가 아닌가. 그의 “필란디아” 일부는 합창곡으로 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려 있었고, 음악시간에 배워 부른 노래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까지 와서 특별히 그를 기념하여 조성된 이 공원을 걷게 되리라고는 지금까지 꿈도 꾸지 못하였다. 나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책상 위에 느긋하게 다리를 걸쳐놓고 앉아 다시 기억해 보는 <시벨리우스 공원>은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지극히 평범한 공원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기념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수백 개의 크고 작은 흰 금속 파이프로 이루어져 마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조각품으로 공원 한 쪽에 있는 푸른 전나무 숲 속에 거대한 나무처럼 서 있었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숲 속에서 핀란드의 국가나 다름없다는 “필란디아”가 장엄하게 울려나오는 듯했다. 이제 와 돌이켜 회상해 보니 이 상징물은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시벨리우스에 대한 핀란드 국민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감사의 적절한 표상이라고 생각된다.  

     <시벨리우스 공원> 내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조각품에 대한 기억은 공원에서 멀지않은 곳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기념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것은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 앞에 서 있는 동상이다. 달리는 남자의 모습으로 영원히 정지된 이 청동 조각품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파보 누루미(1897-1973)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때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 대회 연속 3회 출전(1920년 안트워프, 1924년 파리, 1928년 암스텔담), 중장거리 종목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를 휩쓸어 “날으는 핀란드인,” “달리기의 제왕,” “달리는 인간기계”등의 별명을 얻은 파보 누루미는 핀란드가 낳은, 아니 전 세계가 낳은, 전무후무의 육상선수였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그의 이름을 들어본 후 지금까지 희미하게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이처럼 세월이 많이 흐른 뒤 내가 헬싱키까지 와서 바로 이 전설적인 인물 앞에 서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헬싱키를 기억하게 된 것은 지난 해 여름 헬싱키를 여행하기보다 훨씬 전인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처음 개최된 제15회 올림픽 대회가 바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12살 먹은 시골 소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6.25 전쟁의 참화가 극도에 도달한 시기로서 정부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 있었고, 끊임없이 터지는 포성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전쟁으로 국토는 잿더미로 변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국민들은 모두가 헐벗고 굶주리던 때였다. 참으로 암담하고 암울한 시기였다.

     그러나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희망과 평화, 풍요와 환희를 누리고 있었다. 헬싱키라는 이상하게 들리는 낯선 이름의 도시에서는 우리가 겪는 고통은 아랑곳없이 제15회 올림픽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올림픽 대회 뉴스는 라디오와 신문을 통하여 (당시 우리에게는 텔레비전이 아직 없었다) 어김없이 우리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며, 우리의 귀와 눈을 사로잡았다. 그때도 우리는 지금과 다름없이, 아니, 그 이상으로 올림픽 뉴스에 흥분하고 열광하였다.

     참으로 놀랍고도 더 놀라운 일은 우리가 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당당히 6종목에 21명의 선수와 (1명의 여자선수를 포함) 20명의 임원으로 구성된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입장식에서 우리 선수단은 대회 메인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7만여 관중들로부터 가장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특별히 그 자리에서 당시 핀란드 대통령은 참가를 해준 우리 선수단에게 감사의 표시로 핀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문화체육 훈장’을 수여하였다. 우리는 69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권투와 역도 종목에서 각각 동메달 한 개씩을 얻어 종합순위 37위를 기록했다.

     내가 누루미 동상을 뒤로하고 <올림픽 스타디움> 옆에 세워진 72 미터의 전망대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경기장은 예상하였던 대로 텅 비어있었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도 관중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리고 58년 전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멀고 낯선 이곳까지 와서 고군분투하였던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직도 우리 선수들이 남긴 흔적이 어디엔가 남아 있는 듯하였다. 나는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늘 아침 시벨리우스의 “필란디아”로 시작된 나의 헬싱키 여행도 이제 음악과 함께 끝나고, 나는 지금 혼자서 책상 앞에 앉아있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이룩하고 성취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나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스럽다. 한때 외국에서 보내주는 구호물자로 살아야만 했던 참담한 과거를 뒤로하고, 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된 잿더미 위에 우리는 이제 지구상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가장 활기차고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였다. 1988년에는 서울에서 제24회 올림픽 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헬싱키 대회 당시 서울 구경도 못하였던 12세 시골 소년은 무사히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처럼 이제 70을 넘긴 노인이 되었다. 운 좋게도 그동안 해외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으며, 헬싱키를 비롯하여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큰 도시들도 구경하는 행운도 누렸다. 나에게는 내 인생에 감사할 일이 너무 많다. 이제 해외여행을 더 못한다하여도 좋다. 이정도로 만족한다. 유감도, 여한도 없다.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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