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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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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 나는 문득 그동안 상당히 오랜 기간 무엇인가 상당히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약간 당황했다. 잠시 생각해 본 결과 매달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영어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어본지가 꽤나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부리나케 나는 서재 한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는 이 잡지들을 체크해본 결과 아니나 다를까 지난 육 개월 동안 이 잡지가 배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나는 순간 화가 불끈 났지만 곧 이 잡지의 일 년 단위 정기구독 기간이 이미 오래 전에 끝나버렸고, 구독기간 연장을 신청하지도 안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성난 마음을 진정 시켰다. 
 
     그러나 한번 흔들린 마음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나는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다른 것도 아닌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육 개월 씩이나 읽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사실조차 그동안 모르고 지냈다? 재 구독신청을 하지도 않았다? 잊고 있었다? 소홀히 했다? 이제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독자가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이처럼 어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해오는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고의 책임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나는 우선 이 잡지의 한국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 지국의 여직원을 떠올렸다. 이 여직원은 지난 십년이 넘게 나의 구독예약 만료기간이 닦아오면 어김없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귀찮을 정도로) 이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으며, 동시에 기간연장을 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번에는 여자로부터 전화가 없었다. 전화가 없었는지, 내가 전화를 받지 못했는지, 이분이 직장을 그만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 여자 때문이었다.

     아니지. 이 여자 책임이 아니지. 결국 내 책임이지. 이런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그동안 태평스럽게 살아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제 날짜에 잡지의 배달이 안 되는 날에는 야단법석이 났다. 나에게 이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큰일이었다. 대 이변이었다. 대 재난이었다. 지구의 종말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 경우에는 (지금까지 서너 번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성난 목소리로 즉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담당 직원에게 신속하게 사고를 신고하고, 강력하게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내고, 즉시 재 배달을 요구하였다. 마치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지 않고서는 무사히 그 달을 살아갈 수 없다는 듯이.

     실제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우선 영어 하나로 일생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잡지에 빼놓지 않고 나오는 “단어 실력” 시험을 보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매달 나는 남들 몰래 이 시험을 보았고 스스로 채점도 했다. 시험결과 성적은 대부분 “보통임”(Fair) 판정을 받았고, 좀 운이 있는 달에는 “우수함”(Good)을, 그리고 아주 드물게 “뛰어남”(Excellent)을 받았다. “보통임”을 받았을 때는 당연히 기가 죽었고, “우수함”에는 죽었던 기가 다시 살아났고, 드물기는 했지만 어쩌다가 “뛰어남”을 받았을 때는 그 달 내내 기고만장 했다. 
 
     단어 시험을 보고나서는 느긋한 마음으로 나는 이 잡지의 고정메뉴인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웃음이 명약,” “인생은 그저 그런 것,” “세상만사,” “인용할만한 인용구,” “어린이들이 보는 어른들의 세상,” - 등과같이 그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보석과 같은 기사들로 나의 시선을 옮겼다. 다음에는 밤하늘에 떠서 반짝이는 별처럼 이 잡지 여기저기에 산재하여있는 있는 만화들 - 때로는 그 만화의 지적, 풍자적, 문화적, 간격 때문에 그 의미를 파악하고 미소를 지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영어실력이 요구되는 수준 높은 만화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잡지, 그 기발한 창업정신과 편집방법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잡지, 그 내용과 세계관에 있어서 건전하고 유익한 잡지 - "리더스 다이제스트". 이 잡지는   영어를 공부하고, 영어실력을 더 향상시키고 세련시키고, 또 영어를 가르쳐야만 하는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필수불가결의 교과서가 되어버렸다. 그 속에는 항상 새롭고 어려운 단어, 각종 새로운 구절과 숙어, 용법, 구문과 문장, 잘 만들어진 모범적인 문단 - 이런 것들이 모여 종합적으로 만들어 내는 유익하고,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일화가, 실화가, 이야기가, 수필이 - 예술의 경지에 이른 정교한 삽화나 사진과 함께 이 조그맣고 귀여운 잡지 속에 잘 응축되어 들어 있다.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나는 이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교실에서 교과서로 사용하여 큰 재미를 본 사람이기도 하다. 매년 한 학기 나에게는 “영어강독”이라는 좀 애매한 과목이 배당되었다. 글자 그대로 영어를 많이 읽어 영어실력을 향상시킨다는 과목이었다. 교수들이 적당한 교재가 없다고 항상 고민하고 투덜대는 과목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교재로 선택하였다. 그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읽을거리들이 가져다주는 흥미와 생동감 넘치는 영어는 학생들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항상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금도 가끔 길을 가다가 생각지 않은 곳에서 나와 함께 교실에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었던 졸업생들과 만난다. 어느 졸업생은 나의 영어강독 과목을 수강한 후 이 잡지에 반하여 졸업 후 지금까지 이 잡지를 계속 정기구독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나의 일생에 있어서 이처럼 아주 귀하고 중요한 사람이나 물건들이 처음 어떻게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대부분 분명하지 않다. 이 리더스 다이제스트만 해도 그렇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인연이 참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어 판 "리더스 다이제스트"였다. 지금처럼 영문으로 된 "다이제스트"를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 부터였다고 생각된다. 그때도 어떤 교수님이 (나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당시 우리 사범대에 출강하셨던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김명수 교수님) 나처럼 “영어강독” 시간에 이 잡지를 교재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시작된 나와 "리더스 다이제스트"란 잡지와의 친밀한 관계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 잡지가 무려 육 개월 간이나 배달이 끊어진 것이다. 환장할 일이다. 펄펄 뛸 일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 놀라지 말라. 지난 수십 년간 이 잡지의 충실한 애독자로서 쌓아올린 공로가, 권리가, 애정이 이처럼 무참히도 무너지고, 박탈당하였고, 무시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아주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주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사태평이다. 이 심각한 사건이, 아니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도 또 두 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이 엄청난 손해와 손실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알맞은 그리고 신속한 어떤 행동이나 조치를 취한 것이 없다. 전처럼 나는 당장 회사에 전화를 걸어 담당직원에게 호통을 치기는커녕, 잡지의 배달사고가 났다는 사실 조차 알리지 않았고, 강력한 항의를 하지도 않았다. 아예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도대체 어쩌다 내가 이 모양이 되었단 말인가?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되기를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좀 더 정직하게 털어놓자면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서울 영업소의 정기구독 담당자인 그 여자가 또 구독기간을 연장하라는 전화가 오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한때는 꾀꼬리 같았던 이 여자의 애교 넘치는 목소리도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부지런함, 즐거움, 새로운 지식, 모험과 성공의 세계로 일깨워주고 인도하는 고마운 복음의 목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것은 이제 사기 싫은 물건을 사라고 귀찮게 졸라대는,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라는 강요처럼 들린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 잡지에 대한 젊은 날의 그 열정이 세월과 함께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나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나의 다정한 벗 하나와 또 이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사과도 익으면 그 무게 때문에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지듯이 이제 "리더스 다이제스트"도 내 손에서 스스로 떨어져나갈 때가 된 것 같다. 나도 늙었다. 나의 이 잡지에 대한 수그러져가는 정열을 다시 타오르게 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었다. 오늘따라 서재 한 구석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더미가 예전처럼 대견스럽지도, 아름답지도, 든든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 이것들은 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지식과 중요한 자료의 창고도 아니고, 영감(인스피레이션)의 원천도 아니다. 그저 헌 잡지의 무더기일 뿐이다. 등에 오래 매달려 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이제부터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매달 읽지 않고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젊음은 갔다. 젊음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힘도, 정열도 갔다. 살려낼 길이 없다. 억지로 살려낼 필요도 없다.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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