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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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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나는 오랜만에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 있는 서점 교보문고에 들렸다. 시청 전철역에서 나와 서점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모르는 사이 이 지역이 너무나 많이 변해서 어리둥절했다. 따져보니 교보문고에 들려본지도 어언 오년이 더 지났다. 믿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빠르다더니.


     그날 내가 교보문고에 간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20세기 초 영국 소설가 D.H. 로렌스가 쓴 소설『차타레이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 )을 사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이 소설은 엄연히 영문학의 한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고, 영국과 미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 대학 영문과 대학원 과정에서는 담당교수의 기호에 따라 텍스트로 사용됨은 물론, 이 소설을 주제로 한 학술논문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 내가 잘 아는 국내의 영문학 교수 한분은 미국에 유학하여 이 소설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부터 약 팔십년 전인 1928년 이 소설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하여도 사정은 전혀 달랐다. 이 소설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차타레이 부인의 부도덕한 행동과 너무나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 때문에 음란물로 낙인찍혀 그 후 약 삼십년간 영국에서는 물론 미국에서조차 출판 및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도 이 소설은 문제될만한 부분을 삭제한 상태로 출판되거나 또는 익명을 사용한 출판사에 의하여 다른 제목으로 출판되어 호기심 많은 독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유통되었다. 음란물이 범람하여 여기에 많이 익숙해졌거나 면역이 생긴(?) 오늘 날의 독자들의 기준으로 보면 이 소설은 별 것이 아닌 것일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사회기풍과 도덕기준으로서는 무사히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나이도 들만큼 든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세상에 그 하고많은 유명하고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소설들 가운데서, 하필이면, 다른 것도 아닌 바로 이 음란한 내용의 책을 사러 노구를 이끌고 나섰단 말인가? 이제 학생도 아니니 누가 숙제를 내준 것도 아닐 테고, 퇴직까지 하였으니 이 소설을 누구에게 가르치거나 이 작품에 대한 어떤 논문을 써야하는 의무도 없을 터인 내가, 나이 칠십에 새삼스레『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을 읽는다? 혹시 노망이 든 것 아니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하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가끔 만나 점심을 같이 하는 여인이 있다. 지금은 결혼하여 장성한 자녀가 있는 중년을 훨씬 넘긴 이 여인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한때 내가 근무한 대학에 강사로 출강한 적이 있다. 영문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이 여인은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교수가 되려던 꿈은 이제 접었지만 문학에 대한 지식과 열정은 아직도 대단하다. 전공이 같은지라 우리는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영문학으로 흘러갔으며, 그러다 보니 그날의 화제는 영국소설, 그 가운데서도 D.H. 로렌스의『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으로 옮아갔다. 지금까지 말만 많이 들었고 실제로는 이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줄거리는 대강 알고 있는 나는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태연스럽게 지금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자기는 이미 오래전에 이 소설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 심취하여 이 작품을 가지고 대학원에서 논문을 써 석사학위까지 받았다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눈곱만큼도 없이 오히려 아주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에게는 그 소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이 여인의 대담함과 솔직함에 약간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였다. 나는 아직까지 이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영화로는 아주 오래전에 보았고, 최근에는 위성 TV에서 방영되는 비디오 연속물로서 이따금 접하였다. 매체가 혼자서 읽는 책이 아닌 영상물이고 일부러 보다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보기에 민망한 장면들이 너무 많았다. 한때는 부끄럼 잘 타고 얼굴 잘 붉히던 이 여인도 이제 아들 딸 낳아 다 키워 장가 시집보내고 나더니 부끄러움도 모르는 아줌마가 되었나? 나는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특별한 뜻을 가지고 유통되는 “아줌마”란 단어를 생각하면서 혼자 속으로 웃었다.

     한편 나는『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을 아직까지 직접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이 남녀 간의 성행위를 너무나 리얼하게 다룬 작품이라는 사실에 큰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차일피일 하다가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내가 읽기를 미뤄둔 유명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니지마는 이 소설의 경우는 좀 달랐다. 순진한 나는 무의식중에 이 책을 두려워했고 지금까지 애써 읽기를 피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책은 나쁜 책이고, 사람이 이런 것을 읽으면 타락하여 죽어 지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젊었을 때의 일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젊어서는 겁이 없다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순진하였고, 아무 것도 몰랐고, 부끄럼도 잘 탔고, 겁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제 젊은이가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두려운 것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죄의식도 없어진, 만사가 귀찮아진, 그래서, 목욕도 자주 하지 않는 냄새나는 더러운 늙은이다. 한때의 고상한 이성이나 이념, 지성, 지적인 즐거움, 플라토닉 러브 같은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의 몸을 눈으로 더듬거나, 오직 육감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추한 늙은이가 서 있다. 누군가가 지옥에 간다고 위협해도 두렵지도 않다. 될 대로 되라는 배짱뿐이다. 결국 나는『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을 읽기로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렸다.

     내가 한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교보문고는, 그래서 제집처럼 느껴졌던 이 서점은 그동안 너무나 많이 변하여 있었다. 서점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너무도 달랐다. 모든 것이 낯설고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그 조용하고 아늑한 장소가 아니었다. 눈을 감고라도 찾을 수 있었던 내가 찾는 양서 전문점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동안 이곳은 낯선 사람들로 붐비는 거대하고 화려한 백화점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살다보면 한때 자주 들리거나 찾아가는 장소가 생기게 마련이다. 학교, 단골 커피숍, 서점, 공원, 산책로 등등. 자주 들리다 보니 익숙해지고 그 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르는 사이 정이 들어 이런 장소는 무의식중에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장소에 마냥 머무를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정이 변해서 그 장소에 가지 못하게 된다. 방문의 빈도가 차츰 줄어든다. 마침내 그 곳을 영영 떠나거나 아주 못 가게 되고 결국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계기로 그 장소를 다시 기억해내고는 그 장소와 연관된 사람들, 사건들을 연상하고는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슬퍼한다. 태어나 자라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떠나버린 고향이 그 대표적인 예다.

     드디어 나는 외서 코너에 들어섰다. 제목, 크기, 표지 디자인, 두께, 색갈이 다양한 수많은 수입서적들이 분야별로 잘 분리되어 제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가슴은 다시 한 번 옛날처럼 뛰었다. 그러나 역시 옛날 같지는 않았다. 무엇인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거의가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처럼 영문학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만나면 악수를 하거나 눈이나 미소로나마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낯익은 얼굴들은 이제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그들 모두가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그들도 모두 퇴직하였을 터이니 더 이상 이곳을 찾을 이유는 없었다. 갑자기 나는 낯선 군중들 사이에서 진한 고독을 느꼈다. 이제 나의 세대는 지나갔다. 이곳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대단한 정열과 야망으로 가득 차 이곳을 찾았던 젊었던 날을 회상하면서 천천히 서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영문학에 관련된 각종 서적들이 변함없이 나를 반겼다.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워드워즈, 하디, 디킨스, 등등 끝도 없었다. 나는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옛 친구들을 만난 듯 반가웠다. 이들을 하나 하나 서가에서 꺼내어 만져보고 쓰다듬어보고 싶었다. 불현듯 이들 가운데 몇 권이라도 사서 집에 가져가 이제는 초라해진 나의 서재를 장식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나는 곧 이 욕망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눌러버렸다. 한 미모의 젊은 여인이 진열된 다른 책들 사이에서 유혹이라도 하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반겼다. 『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이었다. 아니, 이 소설 표지에 사용된 여인의 초상화였다.
  
     나는 책을 사서 집에 돌아와 곧바로 읽기 시작해서 일주일 안에 끝냈다. 이 소설이 대단한 음란물일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 속에서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는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선 이 소설을 끝까지 읽는다는 일이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이 단순한 음란물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어찌 되었던 간에 나도 이제 와서 마침내 이 유명한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시원하기도 했고 허탈하기도 했다. 생각했던 대로 성욕이라는 우리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 하나를 솔직하고 진실 되게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었다. 좀 민망할 정도의 성행위 묘사가 부분적으로 있기는 했지만 소설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소설 특유의 전달방법 때문에 영화나 비디오에서처럼 외설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소설가 로렌스는 이 소설 속에서 인간의 섹스라는 본성 이외에도 언급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주 많다. 자기는 이 소설이 대단히 아름답다고 느꼈다는 그 여인의 말에도 수긍이 갔다.

     그렇다고 한참 성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도 영문학의 한 고전이니 한번 읽어보라고 권장하지는 않겠다. 이 소설은 음란물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음란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명작이라 하더라도 음란한 내용이 어디로 가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란한 것은 음란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성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고 민감했던 사춘기에 이것을 읽지 않았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역기가 몸의 근육을 만드는데 좋은 운동기구라 하더라도 나이에 비하여 너무 무거운 것을 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몸에 좋을 리는 없다. 만사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법.

     그 여인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약속을 해야겠다. 이번엔 내가『차타레이 부인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할 차례다. 늙으면 사람이 뻔뻔해 지나보다.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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