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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인어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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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여름 나는 관광 차 북유럽 네 나라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무사히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다음날 나는 다른 일은 모두 뒤로 미루고 서가에서 안데르센의 동화집을 꺼내 그 가운데서 “인어 공주”를 찾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생전 처음 덴마크라는 나라에 가서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를 방문하였고, 수도 코펜하겐 시내 시청사 근처에 앉아있는 안데르센의 동상도 보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펜하겐 해안 랑게르니 부두 바위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인어 공주”의 동상을 보고난 후 느낀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를 통하여 어린 시절에 이 덴마크 태생의 안데르센이라는 사람이 쓴 동화 몇 편을 읽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동화들 가운데서 이미 “성냥 파는 소녀,” “미운 오리새끼,” 등 몇 편의 동화를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인어 공주”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인어 공주”는 읽은 기억은 있었으나 그 감동이 분명하지 않았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인어 공주” 이야기는 젊은 왕자를 사랑한 인어의 슬픈 이야기 - 좀 황당하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 - 그야말로 하나의 동화였다.

     그런데 이번에 “인어 공주”를 다시 한 번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읽고 나서 (이번에는 영어로) “인어 공주”와 안데르센이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느낌과 평가는 근본적으로 크게 변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동화가 아니었다. “인어 공주”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인어의 슬픈 운명과 사랑에 가슴이 아파 몇 번인가 읽기를 중단해야만 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더 감상적이 되고 쉽게 가슴이 부서지는가보다.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인어는 깊은 바다 속 궁전에 사는 나이 15세 된 지체 높은 공주 신분의 인어로서 어쩌다가 인간의 세계에 눈이 떠 인간이 되고 싶어 하며, 인간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며, 인간들처럼 죽은 후 그 영혼이 죽지 않고 영구히 살기를 염원하게 된다. 이 별난 인어의 이와 같은 염원은 우연히도 16세 된 지상의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며, 지금까지 태어나 자란 바다 밑 궁전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게 만들며, 엄청난 고통을 견디어내는 대가를 치루고 신체적으로 인간의 형상을 갖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사랑의 즐거움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 불쌍한 인어가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소생하여 생전에 항상 소원했던 대로 인간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면서 영원불멸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덴마크 여행을 통하여 알았다. 내가 찾아갔을 때 이 인어 공주는 청동으로 된 소녀 모습의 예쁜 조각상으로 조그맣고 평탄한 화강암 바위 앉아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코펜하겐 항구의 길고 오랜 역사에 비하면 인어 공주의 나이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지만 이제 이 조그만 동상은 코펜하겐을 찾아오는, 아니 덴마크를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들과 관광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되어 버렸으며, 동시에 예술과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불후의 생명을 증명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인어 공주” 동상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생명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의 진리를 쉽게 터득할 수 있다.

     하나의 문학형식으로서 소위 “동화”라는 것은 아무래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나 소설, 또는 드라마와 같은 장르와 비교하여 볼 때 분명히 불리한 형식이다. 동화란 순전히 아직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린이들을 위한 글로서 그 내용은 지극히 도덕적이거나 교육적인 것으로 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동화란 그저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있고 유익한 글로서 다분히 본격적인 문학작품에는 못 미치는 것쯤으로 가볍게 인식되고 있다. 동시에 동화작가에 대한 평가도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극작가에 미치지 못한다. 마치 시나 소설, 또는 드라마를 쓰기에는 그 재능이 좀 모자라는 사람이 동화를 쓰는 것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훌륭한 작가란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어떤 형식을 가지고도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작가이다. 진정한 작가는 오래된 묵은 형식을 가지고도 새로운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안데르센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그는 동화의 위상을 문학의 그 어떤 장르 이상으로 끌어올린 작가였다. 안데르센이 없었다면 동화는 하나의 떳떳한 문학형식으로서 오늘날의 영광을 누리고 있지 못할 것이다.

     안데르센 동화의 진정한 가치는 그의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서 문학적 상상력의 깊이와 다양성을 독자가 경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독자는 나이가 좀 들어 삶의 희비극성을 어느 정도 경험한 후에야 작품의 진정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모두 합쳐 159편에 달하는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제 나름대로 아주 잘 만들어진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다.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인어 공주,” “미운 오리새끼,” “성냥팔이 소녀” 이외에, 예를 들어, “와이셔츠 칼라” 같은 이야기는 순전히 재치 넘치는 장난기로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어느 엄마의 이야기”에서 안데르센은 곤경에 처한 어떤 어머니의 처지를 비극적으로 그려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충치 아주니,” “행운의 피어 씨,” 또는 “안네 리스베스 양”과 같은 이야기들도 한번 읽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 개성 있는 주인공을 포함하고 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들은 그 내용이 희극적이던 비극적이던 또는 도덕적 교훈적이던 간에 그 안에는 위대한 문학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향기와 시, 미묘한 상상력과 다양성으로 충만하여 있으며,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과 연령의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안데르센의 작가로서의 높은 위상과 작품의 우수성은 언어가 다른 전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독자들의 수에서 알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유명한 책도 많고 유명한 작가들도 많이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 안데르센처럼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널리 알려지고 그의 이야기들처럼 연령에 구애됨이 없이 많이 읽히고, 이해되고, 동시에 사랑을 받는 작가는 없다고 말하여도 크게 지나친 말은 아니다. 현재 안데르센의 동화는 20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들도 아마 이에 못지않게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겠지만 실제로 일반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랑을 받는다는 면에 있어서는 단연 안데르센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과연 우리말로 번역된 단테의 『신곡』을 읽고 감동하고 즐거움을 느낀 독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요즈음에 와서는 인지가 발달하고 사정이 많이 달라져 인어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 중세시대나 그 이전,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때 인어는 신화 속에, 전설 속에, 민속과 미신에, 자주 등장하였다. 때로는 신비하고, 때로는 친근하고, 때로는 바람직하고 사랑스런 존재로서 인어는 인간들에게 알려져 왔다. 반면에 인어는 인간과 그 외모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인간사에 관심이 있고 동시에 인간을 유혹하여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는 경계의 대상으로도 전하여졌다.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코펜하겐 항구 랑게르니 부두에 세워진 인어 공주의 동상은 세워진 이래 많은 전통이 생겨났다. 항구에 들어오거나 항구를 떠나는 선원들은 이 동상이 자기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거나 소망하는 뜻에서 동상에 꽃다발을 걸어주고 키스도 한다고 한다. 이 조각상은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조각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나도 그랬지만 덴마크를 방문하는 사람치고 이 인어 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않고 덴마크를 떠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인어 공주”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1912년 동상이 처음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이 인어 동상은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수난과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페인트 세례를 받은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고, 팔이 떨어져나가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송두리째 물속에 던져진 일도 있었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수난은 1964년에 일어난 인어 공주 동상의 목이 쇠톱으로 잘려나간 사건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주물공장에 보관되어 있는 동상의 원형 금형 덕분에 동상은 감쪽같이 새로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상을 새로 만드는 약 한달 동안 코펜하겐 항구 해변에는 인어 공주의 모습이 없었다니 항구가 얼마나 삭막하고 쓸쓸했을까?

     나는 지금 책상에 두 다리를 걸쳐놓고 의자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지난여름 생전 처음 방문했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항구 랑게르니 부두에서 언뜻 보고 온 “인어 공주”를 회상하고 있다. 내가 찾아간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좀 더 동상 가까이 접근하여 좋은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소란스런 수많은 관광객들에 둘러싸인 채 “인어 공주”는 그날도 인간과 인어의 세계 경계선에서 꿈을 꾸고 있는 듯 애절한 표정으로 비에 젖으면서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 공주”를 다시 책상 위에 펼치고는 다음 구절 위에서 잠시 시선을 멈추었다. “인어 공주는 항상 그랬듯이 말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육지를 보고 돌아와서부터는 그 증상이 더 깊어졌다. 언니 인어들이 바다 밑 용궁에서 나가 생전 처음 바다 위로 솟아올라 인간들이 사는 육지를 본 소감이 어떠하냐고 물었을 때도 인어 공주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인어 공주는 아무도 모르게 용궁을 빠져나와 자기가 구해준 왕자가 살고 있는 육지를 보기 위하여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2009 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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