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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두 잡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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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시사 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의 충실한 독자인 나는 요즈음 이 두 잡지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의아해 한다. 다시 말해서 읽을 기사를 선택함에 있어서 전에 비하여 내가 꽤나 까다로워졌고 또한 비판적으로 변한 것이다. 커버스토리를 거의 읽지 않는다는 것이 한 예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선 읽기에 너무 길고 거의가 너무 거창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커버스토리들 가운데는 정말로 나에게 유익한 것들도 가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순전히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잡지의 판매부수를 늘이려는 두 잡지사의 경쟁적인 의도에서 계획된 인기위주의 기사들이 더 많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이 커버스토리를 그냥 지나친다. 대신 나는 짧고, 가볍고, 그리고 소박한 내용의 기사를 찾아 읽는다. 그런 이유로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요즈음 나는 이 잡지를 거꾸로 읽는다. 일단 잡지가 우편으로 배달되면 나는 아예 이 잡지를 책상 위에 뒤집어 놓은 후 마지막 페이지를 시작으로 앞으로 한 장 한 장 넘겨 나가면서 읽을거리를 찾아 기사의 제목과 사진을 훑어나간다. 읽어볼만한 기사를 단 한개도 발견하지 못하여 잡지가 통째로 버려지는 경우도 자주 있다.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잡지란 것이 다 그런 거지, 뭐 별건가? 혼자서 중얼거린다.

     이와 같이 냉정하다면 냉정하고 건방지다면 건방진 나의 태도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두 잡지를 지난 약 사십년이 넘게 읽어 온 뒤에 생겨난 권태기적 현상이다. 유감스런 일이긴 하지만 내가 이 두 잡지에 쏟아온 지금까지의 그 대단한 정열이 최근에 와서 현저하게 약화되었고 식어버렸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매주 꼬박꼬박 이 두개의 잡지를 받아 읽고 있지만 잡지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하루의 외출에서 돌아오는 늙은 아내를 맞이하듯이 그저 덤덤할 뿐이다. 어째서 나의 마음이 이처럼 무덤덤해진 것일까 혼자서 반성도 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월을 탓할 수밖에.  
  
     전에는 물론 이렇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두 잡지는 나에게 있어서 단순한 잡지가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이 두 잡지를 매주 읽는 일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는 성스러운 그 주일의 의식이었다. 커버스토리를 빼놓는 일은 감히 없었다. 매주 새로운 커버스토리를 읽는 일은 그 주일의 기대요, 기쁨이요, 의무였다. 커버스토리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하나같이 중요해 보였으며, 나는 가능하면 그 속에 있는 기사들을 하나라도 더 읽으려고 노력하였다. 무엇보다 나는 영어로 된 이 국제적으로 이름난 두 잡지의 독자라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 두 잡지와의 로맨스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허영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영문과에 들어가 이제부터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의욕으로 불타있던 당시 서점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매주 나란히 진열되었던 이 두 잡지는 꼭 옷만 달리 입은 쌍둥이 형제나 자매처럼 항상 함께 있었다. 그 이름만은 이미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던 이 두 얄팍한 영문 시사 잡지는 그 국제적인 시사 내용과 수준 높은 영어 때문에 나에게는 알맞은 도전이요 유혹이었다. 영어실력은 별로였고 그저 의욕만 앞서있었던 당시 나는 이 잡지를 집어 들어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꼈다.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이 잡지 중 하나를 샀다. 그것이 뉴스위크였는지 타임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후 매주 꼭 이 두 잡지중 하나를 사서 어디를 가나 손에 들고 다녔다. 이런 가운데 나의 영어실력도 조금씩 향상되었다. 허영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두 잡지 가운데서 하나만 샀다. 한 주일에 영어잡지 두개는 당시 나의 영어실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무리였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나의 주머니 사정도 좀 나아지면서 나는 두 권을 함께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매년 초 일 년 분을 미리 구독신청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 후 지난 사십 여 년 간 단 한 번의 단절이나 취소 또는 중지 없이 이 두 잡지를 매주 우편을 통하여 받아 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간의 나의 생활이 단조로웠지만 지극히 안정되고 평온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나는 이 두 잡지와 더불어 지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하였고 성공하였다고 말하여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매주 이 두 잡지와 더불어 나는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대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영문학을 마음껏 가르치고 재작년 정년퇴직하였다. 그동안 영어실력도 많이 향상되어 영시를 비롯한 영문학 과목을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그간 공부해 온 나의 영어를 되돌아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마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저 아래 골짜기에서 이제 막 정상을 향하여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기분이다.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이 두 영문 시사 잡지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의 옆에 있어준 동반자였다. 아무리 감사해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감사는커녕 나는 요즈음에 아주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늙은이로 변하였다. 이제 매주 잡지 두개를 읽는다는 일이 부담스럽고 귀찮다고 느끼게 되었으며 이 짐을 벗어놓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경이다. 모두가 나이 때문이다. 나날이 쇠퇴하여 가는 시력, 줄어드는 용돈, 늘어나는 세상사에 대한 무관심, 읽지도 않은 채 쌓여가는 잡지의 높이, - 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이 이제 두 잡지의 정기구독을 중지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나의 잘 들리지도 않는 귀에다 대고 끊임없이 끈질기게 소근 거리고 있다. 더 기막힌 일은 이미 내가 이런 속살거림에 상당히 귀가 솔깃해 있다는 사실이다.  

     만사에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이제 나는 싫으나 좋으나 나는 조만간 나의 인생일대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로에 놓여있다. 나는 이제 두 잡지 가운데 하나를 냉정하게 떼어버려야만 한다. 한 때 나는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혀 잡지 두개를 모두 단번에 끊어버리겠다는 비장한 각오도 해보았으나 곧 마음을 누그러뜨려 당분간은 둘 중에 하나만 희생시키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였다. 금년 말로 뉴스위크나 타임 가운데 하나와는 이제 이별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마음의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보내느냐가 큰 고민이다. 나에게 이 두 잡지는 둘이면서도 하나다. 어느덧 분리하여내기 어려운 동일체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함께 하여온 잡지 두개 개 가운데서 하나를 이제부터 구독중지를 한다고 해서 별안간 내 용돈에 여유가 생긴다거나 내 인생이 갑자기 달라지지도 않을 터인데 이제 와서 하나를 굳이 떼어버리겠다는 나의 생각에도 문제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늙었기 때문이다. 늙으면 사람이 느긋해지고, 인자해지고, 여유로워진다는 말도 믿을 말이 못된다. 오히려 사람은 늙으면 이유 없이 초조해지고, 심술궂고 변덕스러워지며, 무디고, 차갑고, 인색해진다.

     이제 곧 나의 사랑하는 것이 또 하나 나의 삶에서 떨어져나갈 것이다. 동시에 나의 삶도 그만큼 또 줄어들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 마지막 잎사귀 하나까지 모두 떨어져 없어지듯이 나의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도 이처럼 하나씩 모두 나를 떠날 것이다. 이미 떠났다. 그렇다. 나의 부모님들은 물론 나의 부모님 세대의 모든 친척들은 이제 단 한분도 이 세상에 남아있는 분은 없다. 나의 옛 스승님들도 그렇다. 동년배들 가운데서도 나를 뒤에 남겨놓고 이미 떠나버린 친구들도 여럿 있다. 폭풍이 몰아쳐 배가 갈아 앉기 전에 안전한 항해를 위하여 미리 무거운 물건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기로 결정한 선장의 엄숙한 마음으로 나는 지금 내 삶을 좀 더 가볍고 간단하게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미리 애착을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변명하고 있다.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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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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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님의 댓글

임종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창국교수님,

오늘 아침 코리아타임스 기고 재미있게 또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늙음이란 것이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이라는 말씀, 새로운 의미로 전달되는군요.

타임과 뉴스위크 중에서 하나를 택하시기 보다
올해 타임이었으면 내년에 뉴스위크 식으로 번갈아 벗하시면 어떨까합니다.
저도 명수대 출신인데 대학 타임반 시절 타임지 뒷주머니에 끼고다니면서 세상을 다 아는양 으쓱했던 추억도 아련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임종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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