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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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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버린 것도 여러 개 되지만 나는 아직도 네 개의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가 값나가는 고급품이기도 하지만 하나 하나에 얽힌 사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버릴 수도 없다. 특히 두개는 펜촉이 순도가 높은 금으로 되어있으며 유명한 브랜드의 명품에 속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요즈음에 와서는 이 좋은 만년필을 쓸 곳이 없다. 나 자신도 만년필로 옛날처럼 원고지 위에 글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레이저 프린터에 연결되어 있는 PC의 스크린 위에다 타이프 하고 있다.

     나는 컴퓨터가 놓여있는 나의 책상 위 한구석에 할 일없이 놓여있는 나의 만년필들을 볼 때마다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나만 바라보면서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하다. 나는 가끔 이것들을 하나씩 집어 올려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잉크가 말랐으면 잉크를 채워주고, 카트리지를 교환해주기도 하고, 성능에 이상이 없는가를 테스트하기 위하여 종이 위에 몇 자 끼적여 보기도 한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제자리에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일종의 의식(儀式)이다.

     그리고 틈틈이 서예가들이 붓을 가지고 글씨 연습을 하듯이 나는 만년필을 가지고 일부러 글씨쓰기 연습도 한다. 나는 붓글씨는 잘 쓰지 못하지만 나의 만년필 글씨는 내가 보아도 괜찮은 편이다. 나는 나의 이 펜글씨의 실력과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운동선수들이 평소 최상의 신체적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꾸준히 연습을 하여야만 하듯이, 글도 계속 쓰지 않으면 손가락이 뻣뻣해져 말을 잘 듣지 않게 된다. 종이 위에 써지는 글씨가 잘 나가고 글자의 모양도 괜찮을 때 나는 기분이 좋다. 그렇지 않을 때는 글씨 연습에 평소보다 시간을 좀 더 쓴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는데 최근 나에게는 만년필이 한개 더 생겨 이제는 재고가 다섯이 되었다. 재직 시 각별히 가깝게 지냈고 또 내가 만년필에 대하여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외국인 동료교수가 선물로 주었다. 지난주 내가 그의 사무실에 잠시 들렀을 때 그는 느닷없이 만년필 하나를 나에게 내밀면서 원하면 가져도 좋다고 말했다. 얼듯 보아도 싸구려는 아니었다. 괜찮은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얼마 전 자기도 누구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냉큼 만년필을 받아 챙겼다.

     집에 돌아와 새로 생긴 만년필을 손에 들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때 이정도 수준의 만년필이면 재산목록에 속하고도 남을 만큼 만년필이 귀중한 물건이었던 때가 있었다. 항상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만년필은 카메라맨에게 좋은 카메라만큼이나 필요하고, 부럽고, 갖고 싶은 물건이었다. 좋은 만년필 하나면 일생동안 사용하는 것으로 알았으며, 이런 귀중한 물건을 누구에게 별다른 이유도 없이 공짜로 넘겨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료교수가 만년필을 나에게 주면서 한 말이 생각났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다보니 이제 펜을 잡는 일조차 어색하고 서투르다. 이 좋은 만년필이 할  일없어 빈둥빈둥 책상 위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것이 보기 싫다.”

     맞다. 세상이 변했다. 이제 필기(筆記)는 우리로부터 사라지고 있으며, 이와 함께 만년필이 누렸던 영광도 옛 일이 되어버렸다. 이와 같은 현상은 타이프라이터라는 기계의 사용과 함께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인터넷과 이메일의 출현 그 절정에 이른듯 하다. 인터넷은 글쓰기와 통신방법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필기와 만년필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을 울렸다. 이제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아도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무엇을 진지하게 쓰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거의 불가능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인터넷 스크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섭섭한 일이다. 나에게 값비싼 만년필을 서슴없이 넘겨준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곧 나는 필기에 관한 이와 같은 나의 비관적 견해가 너무 성급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주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 내에 위치한 문구점에 들렀다. 나는 상점을 가득 메운 각종 문구들의 다양함과 화려함에 놀랐다. 각양각색의 연필, 볼펜, 사인펜, 종이, 공책,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모두가 사고 싶은 것들이었다. 주인은 물건을 파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나는 의아했다. 주변에 손으로 글 쓰는 사람은 눈에 뜨이지 않는데 이 많은 문구들이 어디에, 도대체 누구에게 필요하단 말인가?

      나는 일부러 주인에게 병에 든 잉크가 있느냐고 슬쩍 한번 물어보았다. 주인은 선반 위 한구석에서 낮 익은 잉크 한 병을 꺼내왔다. 만년필은 물론 옛날식의 그 뾰족한 펜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붓도 있고 먹도 있고 벼루도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필기도구치고 없는 것은 없었다.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구색은 다 갖추어 놓고 있다는 것이 상점 주인의 말이었다. 나는 흐뭇했다. 안심이 되었다. 이처럼 문구들이 건재 한다는 사실은 아직 필기의 생명은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살아있으며, 그 장래도 생각처럼 그렇게 암담한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이 많고 화려한 문구들 앞에서 나는 갑자기 “몽당연필”이란 말이 생각났다. 귀한 것이 없고 귀한 것을 모르고 자라나고 있는 대부분의 지금 세대의 어린이들은 아마 이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난했고 필기도구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던 때 우리는 누구나 필통 속에 한두 개의 몽당연필을 가지고 있었다. 흑색 심을 가진 연필은 당시 필기도구의 전부였고, 쓰다보면 이 흑연 연필심은 수시로 부러졌다. 부러진 연필을 뾰족하게 다시 깎는 일 또한 대단한 기술이었다. 부러진 연필을 깎고 또 깎다보면 긴 연필 한 자루는 어느새 몽당연필이 되어버렸다. 몽당연필이라고 내다버리는 일은 없었다. 오늘따라 필통 속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살아야만 했던 몽당연필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공책 위에 몽당연필로 새로 배운 글자를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쓰던 때가 그립다. 요즈음은  연필 깎는 학생도 없는 것 같다. 오늘따라 잘 드는 칼로 연필을 한번 깎고 싶다.

     나는 며칠 후 필기와 필기도구의 미래가 암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밝고 화려하다는 사실을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백화점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우선 나는 백화점의 명품만을 팔고 있는 점포들 가운데 전적으로 만년필만을 취급하는 점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명품 고급시계, 귀금속, 핸드백, 의상을 진열하고 있는 가운데 만년필만을 위한 공간도 엄연히 한군데 있었다. 품위 있고 우아하게 진열된 만년필들은 물론 유명 브랜드의 값비싼 것들이었다. 진열된 만년필의 디자인도 색갈도 다양했다.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만년필도 있었다.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옛 친구를 만난 듯 기쁘고도 생소했다.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고는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모두가 엄청난 가격의 사치품들이었다. 그랬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그동안 만년필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생활필수품에서 사치품으로 진화를 한 것이다.

     사치품의 세계는 알 수없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전자기술의 발달로 필기와 이에 따른 필기도구인 만년필의 용도가 폐기되고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가 했더니 엉뚱하게도 이제 필기는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 되어버렸고, 이제 만년필은 누구나 필요하고 가질 수 있는 물건에서 소수의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기호품이 되어버렸다. 이제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은 가난한 소설가나 시인이 원고지를 메우는데 쓰는 물건이 아니다. 국가의 원수들, 대기업의 CEO들, 사회의 VIP들이 조약문이나 협정서, 기타 중대한 계약서, 서류 등에 사인을 하는데 필요한 물건이다. 만년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히 말해서 이렇다: 아직도 만년필을 사거나 쓰는 사람은 부자다, 교양 있는 사람이다,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따져보면 필기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시작과 함께한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은 돌 위에, 나무 위에, 가죽위에, 그리고 종이 위에 손으로 무엇을 썼다. 하나의 생활에 필요한 개인적인 습관으로, 사회적 관습으로, 문명의 유산으로 이 글쓰기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와 함께하는 사이 아마도 우리인간의 유전자 속에 이미 하나의 인자로 굳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때 아닌 때 이 만년필 시장의 번성은 이 글쓰기라는 버릇은 쉽게 죽어 없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그 명맥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한때 대중들의 필요였던 붓글씨가 지금에 와서는 소수의 전유물인 서예라는 예술로 남아있듯이, 지구상에서 멸종된 것으로 되어있는 뒤뚱거리던 공룡들이 진화하여 공중을 나는
날렵한  새가 되었듯이, 만년필 글씨도 나와 같은 끈질긴 소수의 애호가들에 의하여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의 희귀한 기술로, 나아가 하나의 독특한 예술로 승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따라 책상 위에 가즈런히 놓여있는 나의 만년필들이 더한층 돋보이고 사랑스럽다.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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