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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아가라 폭포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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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2일 아침 뉴욕 주 버팔로 시 근처 클라렌스 지역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로 승무원 5명을 포함하여 탑승객 49명 전원이 사망하였다는 TV 뉴스보도는 비행기 추락 사고가 항상 그렇듯이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추락한 비행기 컨티넨탈 항공사 소속의 3407기는 캐나다 봄바디어 사가 제작한 78인승 소형 항공기로써 뉴저지 주 뉴와크 공항을 출발하여 버팔로 나이아가라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도 되었다. 탑승객 대부분은 아침 출근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끔찍한 사고 소식을 TV를 통하여 들으면서 나는 우선 “나이아가라”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했다. 사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는 미안하고 죄송스런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이미 오래 전 한번 다녀온 나이아가라 폭포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런 참담한 비극 앞에서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린다는 사실이 도리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십여 년 이상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던 나아아가라 폭포가 그 엄청난 물 떨어지는 천둥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다.

     오랜 버스여행 끝에 도착한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은 다음 스케줄 때문에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들어본 나이아가라 폭포인가? 따지고 보면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누구로부터 들어왔고, 책에서 읽었고, 사진으로 보았고, 영화에서도 본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에 드디어 내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관광객들에 속에서 감탄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여기 저기 돌아보고는 부리나케 다음 목적지로 떠나야만 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십년이 더 지났다. 그간 바쁜 일상 속에서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니다. 그동안 나이아가라는 조용히 나의 가슴 속에서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 나이아가라는 흐른다. 폭포라고 하면 깊은 산 속 높은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가늘고 기다란 물줄기로써 그 물의 양이 비가 오고 안 오고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있어서 나이아가라 폭포는 전혀 다른 개념의 폭포였다. 물이 높은 절벽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폭포가 분명하였지만 나이아가라는 폭포라기보다는 대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의 일부분을 극적으로 축소시켜놓은 것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나이아가라 폭포의 그 엄청난 물의 분량에는 변화가 없다는 사실만해도 그렇다.

     내가 보고 놀란 것은 폭포의 높이가 아니라 넓은 절벽을 흘러넘치면서 떨어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 그리고 피어오르는 물보라였다. 저 많은 물이, 저 소리가, 저 초록색을 띈 하얀 물기둥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이년도 아니고,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단 한순간의 정지나 단절 없이, 변함없이, 쉼 없이, 계속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무한정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잠시 고막만이 아니고 정신도 멍멍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도 느꼈다.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이야기를 하자면 미국 쪽의 나이아가라 폭포 밑을 지나 캐나다 쪽에 위치한 소위 말발굽 폭포의 소용돌이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안개 속의 처녀”라는 유람선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관광객들처럼 나도 누군가가 나누어준 우비를 하나 얻어 입고는 폭포의 우레 소리에 고막이 멍멍한 가운데 유람선에 승선하여 갑판 위에 섰다. 때때로 폭풍우처럼 덮쳐오는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 무서워서인지 재미있어서인지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이 와중에서도 이 소란한 유람선에 어울리지 않는 “안개 속의 처녀”라는 지극히 시적인 이름에 남다른 흥미를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엔 사연이 있었다. “안개 속의 처녀”는 아주 옛날 이 지역에 관광객은 물론 단 한명의 백인도 없었던 시절 이 지역에 살았던 인디언 부족의 전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처녀의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이 강가에 살았던 부족마을에 이상한 병이 돌아 주민들이 계속 죽어갔다. 치료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은 나이아가라 폭포 뒤에 살고 있는 천둥의 신에게 마을 처녀를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되었다. 드디어 제물로 선택된 마을 처녀가 폭포의 절벽 위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 처녀는 떨어지다가 폭포 중간에서 폭포 뒤에 살고 있었고 평소 이 처녀를 사랑하고 있던 천둥신의 아들에 의하여 구출된다. 아들은 괴질이 폭포 속에 살고 있는 거대한 물뱀이 마을 샘물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라고 처녀에게 알려준다. 처녀의 영혼은 마을 추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물뱀은 강물 속으로 도주하여 몸을 뒤틀고 죽어 지금의 캐나다 방면에 위치한 말발굽 폭포가 되었고, 마을엔 평화가 찾아왔다. 그 후 “안개 속의 처녀”는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으며, 오늘의 돈벌이 하는 유람선의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가끔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가공할 자연의 힘 앞에서,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광대한 규모와 크기 앞에서, 무한한 시간 앞에서, 숭고한 아름다움 앞에서 할 말을 잊는다. 이들이 우리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너무나 크고 강렬하여 우리는 순간 이것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아낼 수 없다. 이런 장관 앞에서 우리는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덤덤히, 묵묵히, 멍하니,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을 수 있을 뿐이다.
  
     이제야 털어놓는 일이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랜드 캐니언을 보고 돌아와 지금까지 이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지 못했다. 여러 번 시도를 여러 번 해보았지만 번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었다. 이들은 나의 서툴고 부족한 글재주를 가지고 다루기에는 너무나 벅찬 대상이었다. 비록 마음에 들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할망정 이제 뒤늦게나마 이처럼 그동안 오랜 시간 가슴속에 갇혀 있어 어떤 형태로의 표현을 기다려온 강력한 감정에 숨통을 트게 해주고 나니 오래 끌어온 이자 높은 빚을 드디어 갚기라도 한 듯이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걱정도 팔자라고 나는 지금 혹시라도 나이아가라 폭포에 어떤 이상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나이아가라는 변하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사실이다. 다만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눈에 띄지 않게 이 일이 진행되고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영구한 것은 없다. 처음 그대로 영구히 남아있는 것도 없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이루고 있는 두개의 절벽 가운데 하나인 미국 쪽에 있는 절벽만 하더라도 무너져 내린 바위 덩어리들이 밑에 쌓여 절벽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갔을 때만 하더라도 이미 어느 곳에는 이 돌덩이들이 절벽의 절반이상을 점령하고 있었으며,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백년이내에 이 폭포의 절벽은 가파른 비탈로 변할 것이며, 동시에 폭포라기보다는 하나의 여울로 변할 것이라는 것은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캐나다 쪽의 말발굽 폭포에도 문제는 있다. 오랜 세월동안 엄청난 양의 물이 엄청난 속도로 흐르면서 만들어낸 이 절벽은 바로 같은 힘에 의하여 계속 씻기고 깎여 그 위치가 점점 물이 흘러들어오는 상류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매년 평균 약 3피트(대강 1미터) 정도 절벽이 후퇴하였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상류에 발전소를 만들어 물의 양과 속도를 줄임으로써 이 후퇴의 폭은 십년에 평균 1피트(약 30센티)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완전히 정지된 것은 물론 아니다.

     또 하나의 걱정이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루 다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제각기 특징이 있고 명성이 있는) 다른 폭포들과 구별지어주는 풍부한 그 물의 양 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현재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감지되고 있는 강우량의 감소에 따른 물 부족 현상을 감안하여 볼 때 과연 나이아가라 폭포를 이루는 그 풍부한 수량이 언제까지 변함없이 지금처럼 계속될 것인가? 줄어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나는 어느 날 TV를 통하여 날아들지도 모를 또 하나의 뉴스 - 이번엔 여객기 추락 사고가 아니고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한 - 불길한 뉴스가 전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불안하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연약하고 예측불가능 하다. “산 속의 노인”(The Old Man in the Mountain)을 보라. 미국 뉴햄프셔 주 프랑코니아 노치 주립공원 내 높은 산 정상에 위치하여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인간의 얼굴 모양을 한 이 바위는 (이 바위는 미국의 소설가이자『주홍 글씨』의 저자인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로써 더욱 유명해 졌고 더 잘 알려짐) 가슴 아프게도 2003년 5월 3일 심한 폭풍우에 무너져 영영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제 그 유명한 얼굴 모양의 실물은 없고 오직 전설 속에만 남게 되었다.

     나이아가라여 영원 하라!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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