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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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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날짜로 나는 19세기 러시아 문호 레오 톨스토이가 쓴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읽기를 휴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끝냈다. 물론 영어로 된 번역본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등에 지고오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이 소설 하나를 읽는데 거의 일 년이 걸렸다면 아마 믿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실이다. 오늘 아침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바라보면서 드디어 나도 이 방대한 소설을 한번 읽어냈구나 하는 뿌듯한 감회에 잠시 잠겨보았다.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였다.

     소설 책 한권 읽는 데 일 년이나 걸렸다고? 그것이 그처럼 대단한 일이라고? 이사람 나이 먹더니 이상한 소리하는군. 친구들로부터 조롱과 핀잔을 들어도 할 수 없다. 사실 마음먹고 빨리 읽어치우려고 했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이 우리글이 아닌 영어로 되어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현재 나에게는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마시게 되는 이른 아침 커피 한잔을 마시듯이 나는 조금씩 아껴 그 맛을 감상하여 가면서 일부러 하루에 조금씩 읽었다. 다른 일이 생겨 며칠씩 읽기를 중단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미 읽은 부분의 스토리가 생각나지 않아 자주 몇 페이지를 다시 되돌아 가기도했으며,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상호관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였다. 모두가 나이 탓이려니 하면서 혼자 웃기도 하였다.

     본디 영문학이 전공이고, 이제 퇴직을 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거나 논문을 써야하는 의무도 없는 나로서는 구태여 이 러시아 소설을 끝까지 공들여 읽어야만 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이미 아주 오래전에 (대학생 시절에) 영화로 보았기 때문에 그 줄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결혼을 하여 어린 아들까지 하나 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라는 미모의 젊은 여인은 우연히 기차 여행 중 러시아 귀족신분의 기병대 소속 젊은 장교 부론스키 백작을 만나게 된다. 당시 브론스키 백작은 미혼이었다. 두 사람은 곧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안나는 남편과의 결혼 상태에서 브론스키와 사이에 딸 하나를 낳는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이혼이 기대한대로 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비난과 따돌림을 받게 되고, 심리적으로 불안 속에 시달림을 받게 된 안나는 결국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실하고, 브론스키는 자포자기에 빠진 폐인이 되고 만다. 한마디로 불륜의 남녀관계가 가져온 비극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톨스토이의 이 안나 카레니나의 영문 번역본 한권이 항상 나의 곁에 있었으며, 이 책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언젠가는 내가 저놈의 두꺼운 책을 꼭 한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지내오다 보니까 어느덧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해 어느 날 우연히 이 책을 집어 들어 첫 장을 넘겨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소설에 끌려들어갔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같다.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대로 제각기 불행하다.”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이 주문(呪文)에 홀려 나는 계속 읽기 시작하여 드디어 근 일 년 만에 끝장을 보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소설 전체를 읽은 경험은 영화만 보고 알고 있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우선 소설은 그 구성이나 줄거리, 배경, 그리고 등장인물에 있어서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고, 광대한 것이었다. 스토리에 있어서도 단지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 사이의 사랑 이야기 이외에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스토리와 에피소드들이 잘 엉켜있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톨스토이가 살았던 19세기 러시아의 역사와 사회, 사람들, 그리고 영토와 자연 속으로 깊숙이 여행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동시에 나는 문호 톨스토이가 간간히 들려주는 인생, 종교, 사랑, 죽음 등에 관한 심도 있는 철학적인 설교도 들을 수도 있었다. 잠시 서울을 떠나 19세기 러시아에 관광여행을 다녀온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보고 즐기면서도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새삼 진정한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 좋은 기회였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 이 뿌듯한 독서경험을 누구와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몇몇 주변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모두 한 결 같이 이 소설의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읽을 적은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영화로 보았거나, 누구에게 들었거나, 어디서 이 소설에 대하여 쓴 글을 읽은 사람들뿐이었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우선 이 소설의 분량에 압도당하고 만다. 우리는 이런 작품들을 읽고 싶어 하면서도 우선 그 분량 앞에 기가 죽어 차일피일 하다가 못 읽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할 의무도, 인내력도, 시간도 없다. 우리는 모두 이런 명작들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읽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어쩌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위대하다는 고전 문학작품들의 공통된 운명이기도하다.

     그런데 나를 포함하여 어떤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위대한 문학작품을 읽는 일이, 그 가운데도 특히 소설을 읽는다는 일이, 다른 어떤 종류의 취미나 오락보다도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일 수가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토마스 하디의 테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 죄와 벌, 스탕달의 적과 흑, 빅토르 유고의 레미제라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멜빌의 모비 딕, 찰스 디킨스의 데이빗 코퍼필드, 섬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 등을 읽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다. 분명 그 이상이다.  이들은 이런 소설들 속에서 인생에서 자기들이 찾고 바라는 모든 것을 - 철학, 심리학, 역사, 사회학, 도덕, 윤리, 종교 - 얻는다.  

     그런데 섭섭한 일이지만 이런 긴 소설을 읽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소설의 전성기가 지나간 것이다. 이런 위대한 소설들이 누리던 과거의 영광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어 보인다. 이제 이런 위대한 사실주의 소설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소설들은 대부분이, 아니 거의 전부가, 영화나 비디오, 심지어 만화로까지 이미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제 사람들은 이런 소설들을 구태여 읽는 수고를 하지 않고 보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이 위대한 소설들이 그 옛날 그들만이 누렸던 그들만의 영광은 이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읽는 시대는 가고  보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의 시력이 허락하는 한 읽기를 고집한다. 안나 카레니나 읽기를 끝낸 나는 또 하나의 긴 소설에 도전할 준비가 이미 되어있다. 이번에는 같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다.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져 있으며, 나도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보았다. 그러나 하얀 종이 위에 인쇄된 수만, 아니 수십만, 아니 수백만 개의 새까맣고 조그만 글자들을 읽어가는 일에는 그 수고에 해당되는 충분한 보상이 따른다는 진리를 나는 이미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가면서 터득하였다. 또 일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나에게는 현재 이 책이 없다. 책을 사러 책방에 가야만 되겠다. 이 소설책이 광화문에 있는 내가 자주 들리는 외서 수입 전문 서점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참으로 고무적인 일은 이런 과거의 위대한 소설들이 시대와 세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판되고 있으며,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고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기쁘고 희망적인 일이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나처럼 이런 방대한 소설을 영화나 비디오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읽기를 고집하는 우직하고 미련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증거다. 다행스럽고 마음 든든한 일이다. 전쟁과 평화를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마치 내가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콜럼버스라도 된 기분이다. 나는 분명 지금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신대륙을 발견하고는 또 놀랄 것이다.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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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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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님의 댓글

고영주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안녕하세요? 이장국 교수님.

저는 Korea Times를 구독하고 있는 대학원생 고영주입니다.
제가 오늘 이장국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번에 읽고 있는 책은 Modern Times라는 책인데요.
워낙 책이 두껍고 글씨가 깨알같아서 3개월이 지난 지금 3분의 1정도 읽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 구입하였을때에는 한 6개월 정도 잡아끌겠구나 싶었는데......

이창국 교수님께서 1년정도 걸렸다는 말에 의외로 놀랐습니다.
저도 영어를 전공하였고 지금은 영어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생이지만, 영어라면 훤히 꿰뚫을실 교수님의 경험담과 소감을 읽고 참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모던 타임즈라는 책이 앞으로 언제 완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한동안 놓았던 그책의 책장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감사인사드리고자 이렇게 멜 한장 띄웁니다.
교수님의 솔직하고 자상하신 글 한편때문에 한동안 놓았던 모던타임즈 그리고 셰익스피어 원전등 다시 읽기로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사람들에게 귀감이 많이 담긴 명문을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애독자 고영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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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 삼나무님의 댓글

옥토 삼나무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안녕하세요

저도 지금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있는 독자입니다만
영문으로 한번 읽고 싶은데.. 인터넷 서점에 영문판이 너무 많네요
읽으신 영문판은 혹시 어느 출판사 것인지 알수 있을지요

추천하시는 안나 카레니나 출판사의 그림이나 URL 있으면 부탁드리구요
[email protected] 로 회신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엔 카라마조프 형제를 도전하려구요

그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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