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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거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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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머리란 것이 요즈음 와서 아주 수지가 맞는 수입품 가운데 하나이며, 그 수요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신문보도를(조선일보 9월 18일자) 읽고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징그럽고, 보기 흉하고,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거머리를 외국에서 수입한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주로 영국에서 수입되고 있는 이 거머리들은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쓰이며, 특히 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치료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잔뜩 굶겨 피에 굶주린 거머리를 봉합수술을 받아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에 풀어놓으면 이 거머리는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양껏 피를 빨아먹는다. 이 과정에서 거머리는 수술 중 생겨난 나쁜 피를 모두 흡수할 뿐만 아니라, ‘히루딘’이라는 액체를 분비하는데 이것은 피의 응고를 막아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줌으로써 절단된 실핏줄을 다시 연결시키고 재생시켜 상처의 빠른 회복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환자에게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다는데 이 거머리의 존재가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구태여 거머리를 수입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나라에는 거머리가 없나? 물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토종 거머리는 수입 거머리에 비하여 크기가 작고 피를 빠는 힘도 약하여 치료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수입되는 이 유럽산 거머리는 소위 “의학용 거머리”로써 덩치가 훨씬 크고 피를 빠는 힘도 아주 강하여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피를 내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영문학이 전공인 나에게 있어서 이 거머리에 관한 기사는 내가 이미 오래전에 읽었고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기도 한 영시 한편을 상기시켰다. 누구에게나 그 이름이 잘 알려진 19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워드워즈(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지금부터 약 200여 년 전인 1802년에 발표한 “각오와 독립”(Resolution and Independence)이란 좀 딱딱한 제목의 시 속에서 흥미롭게도 바로 이 거머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어느 날 오후 시인은 울적한 마음으로 산책을 나간다. 그는 산책 도중 아무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허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휘어지고 백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아주 비참해 보이는 노인을 만난다. 이 노인은 이 황량한 들판을 흐르고 있는 냇물을 뒤지면서 거머리를 잡아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소위 “거머리 잡이”다.  젊은 시인은 처음 노인을 보는 순간 불쌍함과 측은함을 느끼면서 말을 건다. 노인과 몇 마디 나누어 본 후 그는 곧 자기가 크게 잘 못 보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크게 놀라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끄럽게 느낀다. 시인은 이 지극히 허약하고 초라한 노인 속에서  너무나 견고하고 더 할 수 없이 낙천적인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감탄하고 반성한다. 시인은 앞으로 자기는 오늘처럼 공연히 마음이 울적해지거나, 삶에 대하여 부질없는 생각을 하여 마음이 언짢아지게 되면  오늘 이 황야에서 만난 이 거머리 잡이 노인을 생각하고 마음을 도사려 먹겠노라 맹세하는 것으로 이 시를 끝내고 있다.

     이 시에서 거머리의 용도에 대하여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시인이 살고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거머리의 의학적 용도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시의 한 구석에는 나처럼 거머리의 용도를 전혀 모르고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친절하게도 다음과 같은 간단한 편집자의 설명이 붙어있다: “거머리 - 물속에 살면서 주로 척추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벌레. 과거에는 의학적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거머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널리 의학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20세기에 들어와 현대의학의 발달과 함께 그것의 의학적 용도와 필요는 크게 감소되었으며, 또한 거머리의 존재 또한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거의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거머리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아주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은 위생시설이 잘 된 수조(水曹)에 실려 비행기를 타고 영국 히드로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다시 특별히 제조된 작은 수족관에 넣어져 일정한 기간(약 3개월) 굶긴 상태로 보관되며, 24시간 대기상태로 있다가 병원의 주문에 따라 퀵서비스를 통하여 즉시 필요한 환자에게 공급된다. 이 거머리들은 한번 양껏 피를 빨고 나면 다음 약 3개 월 간은 아무것도 먹으려 들지 않기 때문에 한번 피를 빤 거머리들은 폐기된다. 거머리들은 손가락 절단 봉합수술 환자들 이외에 당료 병 환자, 각종 발가락 과 피부 괴양 환자, 그리고 혈관염 환자들에게 아주 좋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요즈음 그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의 거머리에 대한 기억은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거머리들은 물이 고인 웅덩이, 얕고 수초가 많은 개울, 특히 논에 숨어 살고 있었다. 우리들이 개울이나 웅덩이에서 고기를 잡거나 수영을 하는 동안 이들은 어느새 우리의 종아리나 등에 한두 마리가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논에서 나와 잠시 쉬는 시간에는 종아리에 달라붙은 이 거머리를 떼어내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내어야만 했다. 당시 우리들에게 이 거머리는 한마디로 우리 인간을 괴롭히기 위하여 창조된 아주 지독한 해충이었다. 그 거무틱틱한 색깔에 형상이 정하여지지 않은 고무줄 조각 같은 그 꼬락서니를 보라! 이런 놈이 우리의 그 귀중한 피를 빨아먹는 다는 사실 - 그것도 그렇게 교묘한 방법으로, 소리 없이, 아무런 고통을 주지도 않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 처지는 일이었다.

     이 거머리가 일단 우리 몸에 붙게 되면 떼어내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것을 간신히 떼어내면 그 자리에서는 붉은 피가 적지 않게 솟아나왔다. 이것들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여 배가 터지도록 마음껏 피를 빨아먹었을 때는 공처럼 둥글게 부풀어져 제풀에 떨어져 나갔다. 어느 모로 보아도 기분 나쁜 존재들이었다. 엑, 엑, 엑. 에이 더러워. 에이, 징그러워.

     이래저래 거머리라는 말은 이제 별로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기분 나쁜 일이나 보기 싫은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여 먹고사는 선량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거머리 같은 놈들이다,”라든가, “그 녀석은 항상 그 여자 옆에 거머리처럼 붙어 다녔다,”라는 표현에서처럼  결코 좋은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거머리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 인간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거머리란 말이 부정적이고 나쁜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에 들어와 생긴 현상으로 현대의학이 발달하여 널리 보급되고 이에 거머리의 의학적 필요성이 쇠퇴하고 중단됨에서 나온 지극히 최근의 현상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영어의 거머리에 해당되는 “leech”라는 단어는 19세기까지만 하여도 “의사”와 동의어로써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사”라는 말보다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더 널리 사용되어 온 단어이며, 동사로는 “치료하다”의 뜻으로 애용되어 온 어휘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전 작품을 통하여 “의사”라는 말로 바로 이 “leech”를 사용하였으며, 19세기까지만 하여도 이 단어가 지금의 “의사”나 “외과의사”의 자리에 버젓이 쓰이고 있다. 지금 현재도 “Leeches kill with licence”(의사는 허가 받고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다,)라는 영국 속담에서 볼 수 있듯이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농담이나 속담 속에 이 거머리는 엄연히 살아있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거머리는 단순히 징그럽고 보기 흉한 미물이 아니다. 그것은 의학적으로 유용하고 필요한 벌레만도 아니다. 거머리 잡는 노인에게서 대 시인 워드워즈가 삶의 중요하고 가치 있는 교훈을 발견하였듯이, 나도 이번 이 거머리 기사를 읽으면서 자연에 대한 아주 중요하고 새로운 큰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자연의 오묘한 연결 고리에 있어서 어떤 미물도 가치 없거나 불필요한 것은 없다는 것. 만물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이 지구상에 창조된 생명체들은 그것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거나를 불문하고 - 크거나 작거나, 아름답거나 보기 흉하거나, 둔하거나 약삭빠르거나, 심지어 가장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거나, 징그럽거나, 독성을 가지고 있거나를 막론하고 - 결코 선(善)을 행할 가능성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진 것은 없다는 것. 그 어떤 것도 우리 인간의 조롱이나 조소를 받을 대상은 없다는 것.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생물도 서둘러 아무짝에 필요 없다고 성급하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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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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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세님의 댓글

박용세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낯설은 이창국 교수님

저는 코리아타임스 애독자인데 오늘 신문에서 투고하신 Leeches 를 재미있게 읽고서 우편으로 실례합니다

이전부터도 늘 교수님의 글은 흥미있고 교훈적이면서
아니 영문학을 하시는 분은 이렇게 멋지신가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글을 읽으면서 교회목사님이 이런 멋진 설교를 하신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었습니다
바쁘신데 길게 쓸수 없고 앞으로도 자주 자주 투고해서 즐겁게 해주세요

저는 70대 후반의 치과의사입니다

광주에서 박용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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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 독자님의 댓글

타임스 독자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저는 39년째 코리아 타임즈를 구독하는 독자입니다.

늙어 가면서 더 꼼꼼히 신문을 읽게 되어 즐겁고 보람찬 생활을 보내면서 많은 상식과 지혜를 터득해 왔습니다.
특히 교수님을 비롯한 분들의 수필과 세계적 전문가(학자)들의 기고문이나 매주 토요일(최근에는)에 전재되는
타임즈지의 심층 취재 보도는 인생을 돌아 보고 세계의 그늘진 곳을 들여다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아프게도 하는 기사죠.

교수님이 동물 프로를 즐겨 본다는 기고문도 읽고
저와 같은 취미를 가진 것에도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죠.

이 번에도 거머리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한 귀절이 제가 동물 프로를 보면서 터득한
진리(?)와 너무나 흡사한 귀절을 표명하셨기에 하도 반가와 인용하면서

감사함을 표합니다.

"No creature is worthless or useless in the divine scheme of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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