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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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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례 없이 많이 내린 지루한 장마 비, 계속되는 열대야, 이에 따른 축축한 습기 이외에 지난 여름 나를 괴롭힌 요인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매미들의 울음소리였다. 본래 매미란 한적한 시골의 나무 위에서 여름 한철을 노래하면서 보내는 곤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들도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를 한 모양이다.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한복판에서도 매미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이 매미들은 또 전등 때문인지 공해 때문인지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는 감각을 상실한 모양이다. 새벽부터 울기 시작하면 한 낯은 물론 늦은 밤까지 그칠 줄을 모른다. 아파트 주변의 나무에는 물론 아파트 창틀의 철제 방충망에도 달라붙어 귀 따갑게 울어 댄다.

     그런데 어느 날 세상이 별안간 조용해졌다. 그 시끄럽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갑자기 뚝 그쳐버린 것이다. 나의 눈에 띄던 안 띄던 간에 내가 매일 지나가는 아파트 주변에 서 있는 나무에 붙어있던 그 많던 매미들이 오늘 아침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집단적으로 살아진 것이다. 나는 작년 여름, 재작년 여름, 아니 해마다 여름 이맘때면 그랬듯이 어떻게 이런 일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높은 위치에 있는 누구의 명령에 의하여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 - 마치 극도의 보안이 유지된 군사작전에 의한 부대이동과 같다. 그 많던, 그 흔하던 매미들이 모두 도대체 하룻밤 사이에 어디로 갔단 말인가?

     우리는 매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안다. 매미는 몸에 비하여 비교적 큰 두 개의 투명한 날개를 가진 곤충이다. 수놈은 배에 달린 두 개의 얇은 막을 진동시킴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매미 특유의 울음소리를 낸다. 매미에도 그 크기와 생김새, 색깔, 울음소리, 나타나는 시기 등에 따라 참매미, 말매미, 잠매미, 쓰르라미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메뚜기, 방아깨비, 베짱이, 여치 등과 더불어 소유 곤충의 분류학상 동시류(同翅類)에 속한다. 그러나 세상만물이 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가 매미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단연 더 많다.

     매미는 유충, 다시 말해서, 굼벵이로 땅 속에서 아주 긴 세월을(어떤 사람은 15년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12년, 또 어떤 사람은 7년이라고 주장한다) 보내고 매미로 탈바꿈을 하고 나서는 참으로 짧은 생애를(누구는 단지 15일간, 또 누구는 한 달, 또 누구는 3개월) 살고는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매미에 대한 지식은 부정확하고 추측에 의한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로써 대부분이 우리가 누구로부터 얻어들은 것이다. 확실하거나 확정된 것은 거의 없다.

     매미는 일생동안(비록 짧은 일생이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 말이 사실인 듯하다. 그간 나의 주의 깊은 관찰에 의하면 나는 매미가 어딴 작은 벌레나 어떤 것을 잡아먹으려 한다거나 무엇을 먹고 있는 현장을 본적이 없다. 도대체 매미에게 입이 달려있는지 조차가 의문이다. 이처럼 일생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서도 그처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매미야 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가수들이다. 이들은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태어나, 노래만 부르다가 죽는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들이 먹는 것은 아침 이슬뿐이라고 한다.

     여름 한철 우리 주변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이기는 하지만 이 매미는 여러모로 대단히 신비스런 존재이다. 나타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신비스럽다. 이들도 우리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그러하듯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린 매미, 다시 말해서 새끼 매미를 지금까지 단 한 마리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또 죽은 매미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도 따지고 보면 꽤나 놀라운 일이다. 매미가 어느 날 집단적으로 없어지는 것을 보면 모두 한꺼번에 죽었을 터인데, 죽었다면 죽은 매미의 시체들이 가을 낙엽처럼 여기저기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끔 한두 마리가 병이 들었는지 땅위에 떨어져 버둥거리는 놈은 본 적이 있지만 죽은 매미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어느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각, 모두 떼를 지어 바다로 날아가 집단적으로  자살을 감행하나?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곳에 이들만의 지정된 비밀 공동묘지라도 있는지?

     내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나는 한때 매미를 잡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쓴 적이 있다. 길고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으레 우리에게는 곤충채집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방학숙제가 부과되었다. 잠자리, 나비, 딱정벌레, 풍뎅이,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벌, 사마귀 등 우리는 서로 경쟁적으로 눈에 띄는 곤충이면 어느 것이건 잡았다.  우리는 쇠로 된 핀으로 잡은 곤충들의 등을 찔러 벽이나 상자 위에 고정시켰다. 이들은 등을 핀으로 꽂힌 채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결국은 죽어버렸다. 학교가 개학을 해서 채집한 곤충들을 학교에 가져갈 때 쯤 해서 이 표본들은 - 아니 죽은 곤충들의 시체들은 - 부패하여 지독한 냄새가 났다. 돌이켜 보니 이것은 곤충채집이 아니라 곤충채집이란 미명하에 무식하고, 무책임하고, 인정머리 없는 교사들의 명령에 따라 철없는 아이들에 의하여 자행된 아름답고 죄 없는 불쌍한 곤충들에 가해진 무차별 학살이었다.

     매미는 단연 이 곤충채집의 중요한 목록 가운데 하나였다. 매미를 채집한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매미는 아주 약고 민첩해서 잡기가 결코 쉬운 대상이 아니었다. 매미는 주로 강가에 늘어선 높다란 미루나무나 늙은 느티나무, 또는 개울 가 뽕나무 위에 있었다. 나는 감히 미루나무나 느티나무를 기어 올라간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나는 주로 개울가 뽕나무 밭으로 갔다.

     뽕나무 위에서는 매미들이 귀 따갑게 울어대고 있었다. 나는 이때가 바로 매미들을 공격하기에 알맞은 시기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매미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내가 접근을 하면 매미들도 일제히 노래를 중단하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이놈들이 다시 노래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놈들은 내가 가버리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잠시 인내력의 시합이 진행되었다. 내가 포기를 하고 자리를 뜨기가 무섭게 매미들은 나를 조롱이라도 하는 듯이 다시 힘차게 합창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마치 나의 인내력의 한계를 꿰뚫고 있는 듯했다. 어느 해 여름 나의 나이 또래 가운데 아주 마음이 다부지고 나무를 잘 타는 소년은 매미를 잡으러 강가에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가 그만 미끄러지면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영영 불구가 되었다. 다리를 저는 이 친구는 지금도 나의 시골 고향에 살고 있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 여름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매미잡이가 되었다. 어느 날 나의 일곱 살 된 손자는 느닷없이 나에게 매미를 잡아내라는 것이었다. 사연인즉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 하나가 자기 할아버지가 잡아준 매미들을 상자에 넣어가지고 자랑을 하였던 것이다. 나는 흔쾌히 동의를 하고 우선 단지 내 상가에 가서 자루가 기다란 매미채와 잡은 매미를 담을 조그만 통을 하나를 샀다. 나는 매미채를 어깨에 메고 손자는 매미통을 손에 들고 우리는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그런 기분으로 기세등등하게 가게를 나섰다.

     매미는 생각보다 쉽게 잡혔다. 아파트 주변에 늘어선 나지막한 벚나무 위에서 신나게 노래하는 매미가 눈에 띄면 나는 매미채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매미채 끝에 달린 그물을 매미 위에 가져가기만 하면 매미는 푸르르 날아 영락없이 그물 속으로 들어가 푸드덕 거렸다. 신나는 사람은 어린 손자만이 아니었다. 이 늙은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미들이 이처럼 쉽게 잡히는 데 놀랐다. 요즈음 매미들은 이처럼 모두 바보인가? 지능이 둔해졌나? 아니면 그동안 내가 약아졌나? 나는 어린 시절 고향의 그 뽕나무 밭 생각이 났다. 어느덧 통 속에는 열 마리도 넘게 매미가 들어찼다. 손자 녀석은 즐겁고 신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녀석은 이 매미들을 집에 가져가 금붕어나 햄스터처럼 하나의 애완동물로 기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이 매미란 동물을 위한 먹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손자를 설득하여 잡은 매미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도로 날려 보내도록 만드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손자에게 그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대신 사주기로 하였다.

     참으로 멋진 여름이었다. 그 많은 비, 견디기 힘들었던 더위, 그리고 매미들의 노래가 다시 그립다.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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