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교수 > LITERARY WORKS

본문 바로가기

  LITERARY WORKS


명예교수

페이지 정보

본문

pen_write-s.png

 

     내가 최근에 나의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만날 때마다 듣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는 도대체 그 “명예교수”란 어떤 것이냐는 것이다. 이들은 내가 작년 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대학과 완전히 손을 끊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아직도 무슨 구실을 가지고 대학 근처를 서성거리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 분명 대학교수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아직도 대학교수처럼 행세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소위 “명예교수”란 말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내가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 “명예”란 말이 “교수” 앞에 붙어서 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이들은 이 “명예교수”란 것이 그럴듯하게 보이고 들리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속 빈 강정처럼 실속은 없는 것이라는 것까지도 이미 짐작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나의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선 나는 우리나라에서 명예교수란 대학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20년에서 25년 이상 한 대학에서 가르친 교수들에게 정년퇴직과 함께 거의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명칭이라고 나는 가능한 한 사실대로 말해준다. 이 설명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정작 중요한 정보를 감추고 있다는 의구심에 찬 표정으로 침묵을 지킨다. 나는 이들이 아주 구체적인 질문을 가지고 다시 공격해 올 것을 직감하고 기다린다.

     “그렇다면, 명예교수가 되면 어떤 혜택을 받는가? 명예교수의 의무는 어떤 것인가?” 드디어 질문은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선다. “없어. 없지. 그냥 글자 그대로 명예라니까,” 나는 시치미 뚝 떼고 대답하면서 질문자의 표정을 살핀다. 이내 못마땅한 표정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변으로 질문을 끝내기로 작정한다. “내가 현재 명예교수로서 누리는 혜택, 아니, 특권은 한 학기에 한 강좌 얻어 가르치는 것뿐일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주일에 3시간 가르치는 것이지. 물론 강사료는 받지. 다시 말하면 나는 어제까지의 정식 교수에서 이 거창한 명예교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시간강사로 전락한 셈이지.”

     이쯤 되면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하여 캐묻지 않고 물러선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으레 다른 사람들보다 한 술 더 지독하게 끈질겨서 불독처럼 한번 물었다 하면 죽어라고 놓지 않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자네가 원하면 더 많이 가르칠 수도 있잖아? 시간 당 강사료는 다른 강사들 보다 더 많이 받겠지? 연구실도 주나? 명예교수는 언제까지 하나?”

     안되겠다. 처음부터 다시 질문에 하나하나 철저하게 해명하는 것이 좋겠다. 적당히 얼버무려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더 많이 가르치면 좋지. 그러나 일단 나간 사람에게 누가 시간을 더 주려고 하나? 강사료는 이제 막 어렵게 학위를 받고 대학에 발을 붙여보려고  시작하는 젊은 시간강사들 보다는 조금 더 받지. 명예교수의 타이틀은 내가 죽을 때까지 써먹어도 상관없지만, 강의는 나의 경우 퇴직 후 5년까지만 할 수 있다네. 이 기한은 학교에 따라, 해당학과의 선례와 필요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지극히 변화무쌍한 것이라네. 우리나라에서 명예교수에게 공식적으로 연구실을 내주는 대학은 내가 아는 한 아마도 없지. 이제 됐나? 더 이상 질문은 없겠지? 없다고? 그럼 됐어. 휴우” 나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잠깐! 나의 긴 교직생활의 경험으로 보아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항상 마지막에 나오며, 또 그것은 대답하기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대단히 수준이 높아 때로는 철학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자네의 말대로 대학에서 해마다 이처럼 수많은 명예교수들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가? 그렇다면 명예교수의 의미는 별로 없다는 말이 아닌가? 명예교수를 선발하는 그 학문적 기준을 엄격하게 정해서 명예교수가 그 이름에 걸맞게 존경도 받고 대우도 받도록 해야만 되는 것 아니겠어? 내 말은 대학에서 얼마의 봉직기간을 가지고 퇴직하는 교수들에게 일률적으로 명예교수의 타이틀을 줄 것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의 대학에서처럼 그 분야에서 진정으로 학문적 또는 학술적 탁월한 업적을 달성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명예교수의 직함을 허용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거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화학이나 물리학, 또는 자네의 경우라면 문학에 있어서 노벨상이라도 탄 그런 사람에게만 명예교수의 자격을 주고 또 거기에 알맞은 예우도 해 주어야만 되지 않겠느냐, 이 말이야. 내 말이 틀리나?”

     옳은 말이다.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대단히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대꾸할 말이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이 친구가 은근히 빗대어 비난하는 자격미달의 명예교수 축에 들기 때문이다. 나야말로 아무런 학문적 업적이나 공헌이 없이 자동 케이스로 명예교수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유일한 자산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 곳에 죽어라고 눌어붙어 있었다는 끈기뿐이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나는 애초에 이런 질문이 나에게 쏟아진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퇴직을 하고나서도 자기들과 전적으로 노는 일에 몰두하지 않고 뭣인가 중요한 일이라도 하는 척하는 나의 행동과 태도에 대한 시샘과 경멸에서 유래한다. 그만큼 한 직장에서 오래 일했으면 만족할 일이지 다 큰 아이가 엄마젖을 못 잊어 틈만 나면 엄마에게 달려가 젖을 빨듯이 퇴직을 하고나서도 그 일과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연연해하는 나를 경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일을 중단할 때 과감하게 중단하고 인생을 즐길 때 즐길 줄을 모르는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한 때 나도 바로 지금의 나처럼 퇴직을 하고 나서도 강의를 하겠다고 캠퍼스에 계속 나타나는 선배 교수들에 대하여 재직 시 같은 생각을 가졌었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나도 이들이 그만큼 오래 가르쳤으면 이제 가르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날 때도 되었을 터인데 또 무엇을 더 가르치겠다고 늙은 몸을 혹사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주당 몇 시간 가르쳐 용돈이라도 벌어야만 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이들은 재직 시 방학이 되면 해외로 골프도 치러 나갈 만큼 여유도 있었다. 또 이분들이 아니면 이분들이 가르치던 분야를 대체할만한 교수가 없을 만큼 대단한 학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주름진 얼굴, 구부정한 어깨, 허옇게 센 머리털을 휘날리며 이미 떠난 캠퍼스에 다시 유령처럼 나타나 순진한 학생들과 남아있는 동료교수들을 놀라게 하고 당황스럽게 만든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그때 그처럼 질겁한 그 유령이 되어 같은 캠퍼스에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8월 달도 이미 절반이 지났고 9월이 이미 모퉁이를 돌아서고 있다. 9월이 오면 어김없이 대학은 개강이다. 나는 지금 개강과 더불어 옛 캠퍼스에서 들려오는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 부름의 소리는 너무나 분명하고 강력하여 거스를 수가 없다. 낮이 지나고 어둠이 찾아오기가 무섭게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드라큘라처럼 나도 나도 모르는 사이 또 개강준비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고 있다. 다만 이번 학기에 보게 될 이 유령은 지난 학기에 강의실에 나타난 유령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인생의 신조처럼 지켜 온 고집을 꺾고 아내와 장성하여 출가한 딸들의 강력하고 끈질긴 충고를 받아들여 흰 머리를 검게 염색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를 만나게 될 옛 동료들과 젊은 학생들을 덜 놀라게 하기 위함이다.
     (2007년 8월)

추천2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설문조사

결과보기

새로운 홈-페이지에 대한 평가 !!??


사이트 정보

LEEWELL.COM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123-45
02-123-4567
[email protected]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인배
오늘
398
어제
1,638
최대
5,833
전체
2,690,943
Copyright © '2006 LEEWELL.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IN-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