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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왕국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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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텔레비전 야생동물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호주 태생의 유명한 악어 전문가요 프로그램 진행자인 스티브 어윈 씨가 지나해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최근에 뒤늦게 확인하고는 크게 놀랐다. 그의 나이는 이제 한창인 44세. 이 사고는 어윈 씨가 호주 해안의 심해에 살고 있는 위험한 해저동물들을 촬영하는 도중에 거대한 가오리에 등을 쏘여 발생하였다고 전해진다. TV에서는 그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진 필름을 상영하고 있으며, 이 필름에서 우리는 그가 크고 사나운 악어를 다루는 아슬아슬한 묘기를 아직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그의 귀엽게 잘 생긴 얼굴과 위험한 일을 무사히 끝내고나서 청중들을 향하여 자신만만하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흔들던 그 사람 특유의 제스처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알기로 이 스티브 어윈 씨는 이 야생동물 다큐 프로의 진행자로서는 이 분야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최초의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동물왕국 프로의 점잖은 해설자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어떤 면에서 이 방면의 뛰어난 배우였으며, 서커스에 나와 이상한 행동을 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어릿광대였다. 그가 악어를 다루면서 보여주는 행동은 도대체 불안해서 못 볼 지경이었다. 그는 시청자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일부러 흉폭해보이기 그지없는 거대한 악어에 접근하여 이것을 일부러 건드려 불같이 화나게 만들어 놓고는 겁도 없이 맨 손과 몸으로 굴복시키곤 하였다. 한번 아차 실수하는 경우 목숨을 잃거나 크게 부상을 입을 것이 뻔했다. 내가 보기에 목숨을 건 도박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을 그는 서슴없이 하였다.
  
     스티브 어윈 씨의 뒤를 이어 요즈음 야생동물 다큐 진행자에 오스틴 스티븐 씨가 있다. 악어가 고인이 된 어윈 씨의 전문분야였다면 이 스티븐 씨의 전문분야는 뱀이다. 만용을 부리는 점에 있어서는 이 스티븐 씨가 한 술 더 뜨고 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어떤 종류의 희귀한 뱀을 찾겠다고 공언하고는 이 뱀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그는 천신만고 끝에 이 뱀을 찾아내고야만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독사다. 그는 숨어있는 이 뱀을 갈고리 같은 것을 이용하여 억지로 끄집어내서는 맨 손으로 뱀의 꼬리를 잡는다. 뱀은 놀라 미친 듯이 버둥대면서 그를 물려고 몸을 뒤튼다. 그는 손가락으로 독사의 입을 강제로 벌려 청중들에게 독니를 보여준다. 이것도 부족하여 그는 그 뱀으로 하여금 독을 자기의 눈에 쏘게도 한다. 독은 천만다행이도 그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에 의하여 직접 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간단히 실명이다. 그는 이런 쇼로도 만족하지 않고 수백, 아니, 수천마리의 방울뱀들이 엉켜있는 동굴로 기어들어가 가만히 누워 이들이 자기의 배와 넓적다리 위로 슬슬 기어 다니게도 한다. 이 모든 것이 TV를 보고 있는 나와 같은 청중들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이 야생동물들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소위 동물왕국 TV 프로그램을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열심히 보고 있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항상 이 프로그램의 제작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용기,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에 감사하고 있다. TV를 켜서 채널을 맞추기만 하면 이 사람들은 나를 데리고 진귀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지구상의 멀고 먼 구석으로 여행을 떠난다 - 때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세링게티 국립공원으로, 때로는 남아메리카 아마존 강가의 정글이나 열대우림 속으로, 때로는 카리브 해의 깊고 깊은 바다 속에 있는 산호섬으로.  나는 손에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비스듬히 누워 이들이 가는 곳이라면 지구상의 어느 곳에도 갈 수 있고, 이들이 보여주는 지구상의 모든 진귀한 동물들을 아무런 수고나 노력 없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나를 대신해서 모든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고, 구질구질한 일들을 도맡아 해준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런 야생동물 프로그램은 본질상 교육적인 면과 오락적인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우리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런 필름을 통하여 시청자들은 은연중에 이 야생동물들에 대하여 좀 더 많이 배우게 되고, 잘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막연히 두려워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증오하게 되기도 하는 이 야생동물들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하여 보다 가까이 느끼고, 이들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경탄하고, 그리고 우리 인간들의 무지와 탐욕, 그리고 부주의나 무관심 때문에 안타깝게 지구상에서 소멸되어가고 있는 멸종위기에 처하여있는 동물들을 사랑하고 보호하자는 숭고한 뜻이 이들 프로그램에는  들어있다. 이 프로는 한마디로 계몽적이며 동시에 아주 건전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나는 이 TV에 방영되는 야생동물 다큐 프로그램의 효과 내지 기능에 대하여 의심 내지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전자공학의 눈부신 발달과 고성능 카메라의 출현 덕분에 현재 우리가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은 그 시각적 효과와 흥미의 강도에 있어서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교육적인 동물사진들이 아니다. 이제 이 자연 다큐 프로는 그 기발한 착상과 대담한 계획, 그리고 그 스케일에 있어서 어떤 다른 쇼 프로에 뒤지지 않는, 아니 이들을 능가하는 흥미진진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나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의 장래를 염려하게 만드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나는 이들 야생동물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을 의식한 나머지 너무 경쟁적으로 흥미위주의 상품으로 변질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이다. 다시 말해서 이 프로의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보다 더 흥미를 끌 수 있는 프로를 만들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결과적으로 아무 죄 없는 야생동물들을 쓸 데 없이 괴롭히고 있다는 말이다. 과학적 연구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 보존한다는 고상한 명분하에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 곁으로 가까이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활 속을 더 깊숙이 엿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들이 누리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파괴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활에 간섭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윈 씨나 스티븐 씨가 시도하듯이 가끔 이들 야생동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부자연스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연출해 내며, 이 과정에서 이 야생동물들의 사생활이나 위엄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회손 되고 있다. 인간들의 손에서 이들 야생동물들은 하나의 장난감으로 변하고 있다.

     좀 더 근본적으로 이들 야생동물 다큐 프로그램과 같은 어떤 사명을 가진 TV 프로그램에는 존재론적인 철학적 문제가 내재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이것을 만드는데 종사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그 고상한 이상과는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전쟁의 참상을 담은 전쟁 영화가 그러하듯이 우리는 이 야생동물들을 다룬 필름을 화면을 통하여 너무 자주 접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나 호기심이 오히려 감소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요즈음 자주 아무런 흥미나 경외감 또는 신비감이 없이 사자나 호랑이, 악어나 상어 등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화면을 통하여 이들을 보면 볼수록 처음 이들을 보았을 때, 아니 그보다 책에서 보거나, 읽거나, 상상을 통하여 이들을 접했을 때의 그 용맹스럽고, 힘세고, 신기하고, 사납고, 민첩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야생동물들에 얽힌 신비함과 신화는 다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히려 형편없이 연약하고, 둔하고, 불쌍하기조차 해 보이는 동물들뿐이다. 가끔 나는 야생동물이 아니고 가축들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제부터 아예 이 프로를 보지 말거나, 보더라도 지금처럼 자주 열성적으로는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친해지면 자연이 상대를 무시하는 생각이 생겨난다는 서양속담이 옳은 말인 것 같다. 
 
     현재의 추세대로 나간다면 그 놀라움과 스릴에 있어서 영화 <조스>를 훨씬 능가하는 초특급 대형 자연 다큐 프로그램이 계속 경쟁적으로 만들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며, 스티브 어윈씨나 오스틴 스티븐 씨는 오히려 겁쟁이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만들 그런 대담한 진행자들이 속속 등장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렇게 되면 끝을 모르는 인간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불가피하게 더 많은 야생동물들이 동원되고, 이용되고, 건드려지고, 놀림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제발 좀 내버려 두어라. 야생동물들로 하여금 그들의 방식대로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도록 하라. 이들의 세계에 너무 호기심을 갖지 말자.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도 말자. 이들만의 생활을 너무 깊숙이 들여다보거나 몰래 엿보려들지 말자. 그것이 그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휴전 후 지난 50여 년 간 아무의 손이나 발이 닿지 않은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를 보라! 누가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관심과 망각 속에 내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현재 한 반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수백 종류의 동식물들의 낙원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입김이 없는 곳에서 자연은 번창한다.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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