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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의 5년 임기가 불과 8개월 정도 남아있는 지금, 사람들의 관심이 다가오는 12월 19일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와 과연 누가 다음에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후보자들의 이름은 이미 언론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상태이며,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선거운동도 이미 시작된 상태이다. 후보들 가운데서 인기 여론조사에서 항상 선두를 지켜온 고건 씨는 출마 선언을 한 후 험난하고 냉혹한 정치현실과 희박한 당선 가능성에 직면하여 채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출마를 포기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들 후보들 가운데는 내가 보기에 어느 모로 보나 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한 분 끼여 있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운찬 씨(59세) 말이다. 과연 이 사람이 끝까지 대통령 선거전에 남아있을런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오늘까지도 그는 대통령 후보자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고, 본인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마는 아직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는 어정쩡한 태도다. 그의 역량과 인품을 알고 그를 밀고 추종하는 사람들은 몇몇 있어 보이나 그는 현재 어느 정당에 속한 사람도 아니고, 정치하는데 필수적인 돈이 있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를 열열이 지지하는 어떤 단체나 조직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는 현 집권당에서 혹시나 자기를 점찍지나 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는듯하다. 현재 그는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경제학 교수의 신분이며, 여러 면에서 학자 내지 지식인이지 정치인은 아니다.

     이분은 서울대학교 총장이었을 때는 물론, 총장직을 물러나는 순간까지도 본인 스스로 (언론에서는 심심하면 이분을 들먹였지만) 자기가 수행하고 있는 대학 총장직 이외에 다른 어떤 정치적 야망을 나타내는 언행을 눈곱만치도 표출한 적이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은행 총재의 자리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하였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대단한 용기다. 그런 자리가 아무에게나 주어지겠는가?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의 전임자들과는 사뭇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국립 대학교 총장으로서 그는 정부의 정책, 특히 문교 정책이나 명령, 규정 등에 솔선하여 따르게 되어있었으나 그는 (내가 알기로) 자주 자신의 신념이나 주장을 고집하였으며, 때로는 정부와 정면충돌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분이 현 정부에 대하여 좀 더 고분고분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였다면 그는 그의 선임자들이 모두 그랬듯이 지금쯤  임기를 마침과 동시에 현 정부의 교육부총리 자리 하나 쯤은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면에서 보아도 이 사람은 정치를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그리고 그가 세속적인 명성이나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순진하다면 순진하고 오만하다면 오만하기도 한 그런 태도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지성적인 인상과 언행 때문에 정운찬 씨는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다른 나의 모교 총장들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한 친근감과 존경을 느끼게 된 유일한 총장이었다. 나는 그가 총장의 임기가 끝나면 다시 본래의 교수 자리로 돌아가 총장을 지낸 권위와 경험을 가지고 모범적인 학자와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으며 또 그러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이 시간에는 상어와 하이에나가 들끓는 정치판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의아스럽기도 하고 딱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정운찬 씨의 변신에 대하여 최근 나는 나보다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의 주위에 나 말고 또 한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나는 거의 매주 한번 나의 대학 은사이자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잘 알려진 수필가요 시인인 피천득 교수가 살고 계신 반포 아파트 54동 206호에 들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는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지난 주 방문 시에는 화제가 우리나라 정치 이야기에서 자연히 다음 대통령 선거로 흘러갔다. 올해로 98세이신 피 선생님은 아직도 정신면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정정하시지마는 이제는 걷기에 어려움을 느껴 주로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KBS 라디오 FM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시면서 소일하신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으레 선생님을 모시고 아파트에서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파리 끄라쌍> 제과점까지 가서 선생님은 핫초콜렛, 나는 커피를 주문해 앞에 놓고는 문학을 비롯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시 아파트로 돌아오는 것이 그날의 일과였다. 이제는 거기까지 함께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아프다. 선생님도 말씀은 안하시지만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현재 언론에 거명되고 있는 대통령 후보들의 이름을 여론조사 인기도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소개하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정운찬이란 이름을 부르자 선생님은 갑자기 어리둥절해 하시면서 나에게 재차 물었다, “정운찬? 정운찬? 서울대 총장 정운찬 말인가?”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입을 다무시고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리셨다, “정운찬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선생님은 믿으려하지 않았다. “이 선생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크게 실망일세. 나는 그 사람을 믿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을 믿었는데....” 피 선생님은 순간 퍽 슬퍼보이기까지 하였다. 나는 선생님과 가까이서 여러 해 지나는 동안 오늘처럼 어떤 사건에 대하여 선생님이 자신의 감정을 이처럼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피 선생님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과 음성의 진지함에 놀란 나는 정운찬 씨의 정치적 야망에 대하여 어째서 평소 선생님답지 않게 이처럼 크게 마음을 쓰시느냐고,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느냐고,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선생님은 천천히 입을 여셨다. “그 사람 나에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을 하였거든,” 선생님은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나는 너무나 놀라운 대답에 잠시 내가 무엇을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고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언제요? 어디서요?” “작년인가 서울 대학교 호암회관에서 정운찬 총장이 나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라에서,” 선생님은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맞다. 그런 일이 있었다. 작년인가 재작년 조주연이란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여류 서예가 한분이 피천득 선생님의 시와 수필만을 사용한 이색적인 서예전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선생님의 수필 “久원의 女像”이란 비교적 긴 작품도 포함되어있었는데, 서예가는 전시회가 끝난 후 이 작품을 특별히 피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그런데 이 작품을 담은 액자는 너무 커서 선생님의 아파트에는 걸만한 알맞은 장소가 없었다. 생각 끝에 선생님은 이것을 당신이 오래 가르친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학교당국에서는 이 의미 있는 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시 총자이었던 정운찬 씨는 감사의 표시로 선생님을 모시어 정중히 식사 대접을 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이 노 교수는 젊은 총장과 마주하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정 선생, 당신은 그 학력이나, 나이, 언행에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역대 총장들 가운데서 가장 매력 있는 총장이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러나 정 선생, 당신의 이름은 어디까지나 서울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나 잘 알려져 있지 일단 서울 대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무도 당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요. 임기를 명예롭게 마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학자가 되시오.” 당시 선생님의 충고에 정운찬 씨는 일말의 의심이나 주저 없이 진지하고 흔쾌하게 동의하였으며, 선생님 또한 정운찬 씨에 대하여 아주 만족하였다고 말씀하였던 사실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둘 사이에 분명한 하나의 약속이었지,” 선생님은 혼자 중얼거리셨다. “언제 다시 정운찬이를 한번 만났으면 좋겠어. 만나면 단단히 따져 볼 거야.” 선생님은 성이나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크게 한번 웃고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 애초에 우리가 정운찬이라는 사람에게 정치적 야망을 갖지 말라고 기대한 것이나 요구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적던 크던 정치적 야망이 없는 사람은 없지요. 정운찬 씨도 예외일 수가 없지요. 지난 4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서울대학교 총장이라는 자리가 가져다주는 명예와 특권, 그리고 권력에 노출되어 그 달고 쓴 맛이 자신도 모르게 뼈 속까지 깊히 스며들어간 그런 분에게 이제 다시 작고 초라한 연구실로 돌아가 책장이나 넘기고 있으라는 것은 무리지요. 돌아갈 이유가 없지요. 사람은 누구나 더 크고 싶어 하고, 더 강해지고 싶고, 더 많은 권력을 갖고자 하는 것이 본성이지요. 그분에게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라는 것은 인간본성에 반하는 일이지요. 정운찬 씨가 4년 전 서울대학교 총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는 사실하나만 보더라도 정운찬 씨는 이미 대단한 정치적 야망과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미 스스로에게는 물론 만천하에 증명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2007년 4월 30일)

* 이 글이 채 세상에 발표되기 전인 5월 5일 정운찬 씨는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였으며,  피천득 선생님은 그 뒤 20일 후인 5월 25일 세상을 떠나셨다.  이것이 피천득 선생님과 내가 이승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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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님의 댓글

정유진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에 보았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사에 치여 순수를 잃고 살아가던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대학시절 은사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 분은 희귀병으로 인해 신체가 점점 마비되어 활동이 어려워지고 있던 처지였고 주인공은 매주 화요일 그러한 은사님을 만나
일대일로 인생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된다는 내용의 이야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교수님이 은사님과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만남을 가지시면서 소중한 인연을 쌓아오신 노력과 용기가 존경스러웠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서의 사제지간이 가지는 의미가 예전의 그것과는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점차 사제간의 관계라는 것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피상적인것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항상 마음속으로 저의 인생을 나누면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은사님을 한 분 정도는 꼭 모시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저는 그런 용기도 없고, 또 노력도 잘 하지 못하는 류의 사람이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중학교때 국어교과서에서 처음 접했던 피천득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으신 교수님께
제가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도 괜시리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약속은 지켜진 것이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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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국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유진에게;

재미있는 글 실려주어 고맙다.
나도 피천득 선생님과의 오랜 인연에 감사하고 있다. 나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연히도 내가 선생님과 가까운 거리에서 살게되어 방문하기가 수월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였지.
만약에 멀리 떨어져 살았다면 마음은 있어도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을거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소설의 제목이 마음에 든다.
가끔 들려 소식 전해다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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