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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저자와의 관계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와 같다. 우선 책이 태어나기까지의 고통은 저자나 알지 책은 모른다. 책이 태어날 때마다 저자는 희망과 기대에 가슴이 부풀지만 그 것은 십중팔구 실망과 배신감으로 끝난다. 책은 축복인 동시에 고통이요, 명예인 동시에 하나의 걱정거리다. 태어난 책이 세상에 나가 잘 나가면 저자는 더할 수 없이 행복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슬프다. 책은 저자에게 명예와 돈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책은 저자를 쉽게 떠나고 곧 잊어버리지만 저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쓴 책에 대하여 기억하고 걱정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나는 서울 한 복판에 위치한 교보서점에 들렸다. 책을 사려서가 아니고 내가 쓴 책이 서점에서 어떻게 되어가나 한번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출판한 저자이다. 이미 장성하여 결혼까지 해서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을 항상 염려하는 부모처럼 나도 나의 책이 서점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지가 항상 궁금하다. 나는 한번 가서 직접 보기로 결정했다.

     막연하게 예측하였던 대로 나의 책들은 잘 살고 있지 못하였다. 우선 나는 바다처럼 넓은 공간에 산처럼 높게 첩첩이 쌓인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나의 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책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으리라고 기대할 만큼 바보도 아니요, 화려한 장정의 책들로 가득 찬 최근에 출판된 서적들로 가득 찬 진열대 위에 놓여있으리라고 기대할 만큼 이 방면의 숙맥도 아니었다. 나의 마지막 책이 출판 된지도 이미 수년이 지났고, 나의 책들 가운데 잘 팔린 책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수많은 책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서가들을 하나하나 조사해 보았으나 나의 책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좀 부끄러웠다.

     나는 내색을 하지 않고 근처에 있는 점원 아가씨에게 책 도움을 청했다. 나는 나의 수필집 세권을 찾아달라고 말했다. 점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디론가 살아졌다. 점원은 한참 있다가 나의 눈에 익은 수필집 두 권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나는 점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점원이 낀 흰 장갑은 나의 책을 찾느라 먼지에 더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점원이 찾아다 주지 않은 나의 첫 번째 수필집에 대하여서는 감히 물어보지도 못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돈을 지불하고는 서둘러 도망치듯 서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나는 오늘 서점에서 겪은 씁쓸한 경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제 보니 그동안 나의 수필집은 독자들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서점의 어느 구석 안 팔리는 책들만 모아놓은 곳에서 먼지만 먹으면서 근근이 비참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점원이 찾아다 주지 못한 나의 수필집 하나는 극심한 생존경쟁 속에서 십년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이미 그 생명을 다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추세라면 지금 살아있는 나머지 두 권의 수필집의 수명도 그리 길지는 못할 것이 불을 보듯이 뻔했다. 박복한 자식을 둔 아버지의 심정이 그러하듯이 나는 내가 써서 세상에 내보낸 나의 책들에 대하여 미안했고 안쓰러웠다.

     다시 한 번 반복하거니와 책과 저자와의 관계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와 같다. 결점이 있든  없든 간에 부모에게 자식은 더할 수 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이듯이, 나에게는 내가 쓴 책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좋아 보인다. 책이 한권 세상에 나올 때마다 나는 기쁨과 기대에 들떠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남몰래 기대도 컸다. 나의 책은 이제 날개가 돋친 듯이 팔려나갈 것이며, 누구나 사서 읽을 것이며,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나는 갑자기 유명한 사람이 될 것이며, 돈도 많이 생길 것이다. 나는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하였다. 새로 책이 나오면 몇 달간 나는 으레 이와 같은 희망과 기대, 야망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나의 기대와 희망은 어김없이 실망과 후회, 그리고 부끄러움으로 끝나버렸다.

     엄격히 말해서 책의 출판에 관련된 경험을 저자로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좀 쑥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으니 흥미를 느낄 리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사서 읽기는 하지만 손수 책을 쓰지는 않는다.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그 소망은 현실적인 장애물 앞에서 실현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책을 써서 출판한다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우리와는 좀 별다른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책을 쓰려면 어떤 주제나 분야에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하며,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지혜를 갖추어야만 하며, 여기에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글 쓰는 재주도 타고나야만 한다고 알고 있다. 다시 말해서 책의 저자가 되려면 독자들에게 알려줄 보통 이상의 지식이나 정보가 있어야만 하고, 우리를 기쁘게 하면서 동시에 가르침도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갖추어야만 한다. 우리가 책의 저자를 존경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곳에 놓여있다.

     그런데 나는 책의 저자가 갖추어야만 될 기본적인 자질도 없이, 또 어떤 뚜렷한 목적이나 동기도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결에 세 자녀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것과도 같이,  뻔뻔스럽게도 어쩌다 보니 수필집 세권의 저자가 되고 말았다. 이런 사람이 쓴 책이 오죽하겠는가? 당연히 나의 수필집은 팔리지 않았다. 팔리지 않으니 돈도 명에도 생기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의 수필집을 읽는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나를 수필집을 세권이나 쓴 위대한 수필가라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나의 아내나 아이들은 아예 내가 책을 썼는지 안 썼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때는 슬프고, 어떤 때는 화가 나고, 어떤 때는 부끄럽다. 나는 이 방면에 크게 성공한 저자들을 부러워한다. 나는 가끔 내가 왜 이런 일에 손을 대었나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책을 골라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항상 종이 위에다 무엇인가를 쓰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 남에게 들려줄 중요한 것, 재미있는 것, 유익한 것이 있어서 이것을 꼭 말해주고 동시에 많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나의 이와 같은 욕망은 현실적인 문제와 장애물 앞에서 번번이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지만 그 욕망은, 그 슬픈 욕망은, 쉽게 꺼지지 않는 첫사랑의 불꽃과도 같이, 언제나 가슴 속 한구석에 남아 젖은 짚 불에 타듯 시름시름 타고 있다가 잊을만하면 또 살아나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유혹이었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 함정에 빠져버린 어리석은 사람이다. 책을 쓰는 사람은 모두가 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상한 병에 걸린 사람이다. 허약한 사람이다.

     나는 지금 나의 서재에 앉아 역사에 이미 그 이름을 남긴 위대한 저자들이 남긴 불멸의 저서들로 가득 차 있는 서가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나를 내려다보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시선은 서가를 더듬어 내려오면서 같은 서가 한 구석에 나란히 꽂혀있는 나의 초라한 책들에 머문다. 나는 혼자 생각해 본다. 죽은 후에는 말할 필요도 없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나 말고는 나의 책을 읽거나 기억해 줄 독자들은 없을 것이다. 못나고 못사는 자식이 더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부모의 심정으로 오늘도 나는 또 나의 책을 한 권 한 권 책장에서 꺼내어 마음 내키는 대로 여기 저기 펴 읽어도 보고, 만져도 보고, 쓰다듬어보고 나서는 다시 차례차례 제 자리에 끼워 놓는다.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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