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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에게 영어를 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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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영어를 배우고,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지난 사오십년을 보낸 후 지난 해 2월 말로 직장에서 퇴직하여 지금은 주로 집에서 홀로 흔들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는 요즈음 과거에 있었던 이런 저런 일들을 회상하면서 생각 속에 자주 빠진다. 이런 생각들 가운데는 자연히 그동안 내가 다른 어떤 것에 보다 더 많은 시간과 애정, 그리고 노력, 정열을 쏟아 부은 영어에 관련된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것들 가운데 이제까지 말하고 싶어도 솔직하게 터놓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누가 들어도 좀 이상하고 건방진 말이기에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이제 퇴직도 하였으니 해도 될 것 같다. 할 말은 해야 정신건강에 좋다지 않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영어공부에 있어서 교사의 역할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아니, 이 사람, 자기는 수십 년 아무 말 없이 실컷 잘 해먹고 퇴직금에 연금까지 챙겨 나가더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이따위 건방지고, 무책임하고, 배은망덕한 헛소리란 말인가? 나를 가르친 스승들, 남아있는 동료 교사들, 후배 교사들, 앞으로 교사가 되기 위하여 현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나의 제자들로부터 들려오는 분노의 함성에 귀가 따갑다. 그러나 어쩌랴. 할 수 없다. 이왕 내뱉어놓은 말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 얻어맞아 죽을 각오하고 더 계속해보자.

     나는 중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을 통하여 교실에서 여러 영어교사들이나 교수들을 만났지만 실제에 있어서 이들은 나의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혹시라도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신 옛 스승들 가운데 누군가 이 글을 읽고는 “세상에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있나”하고 개탄을 해 보아도 소용없는 일이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존경하고 좋아한 영어선생님들이 없었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여러분 계셨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소식이 거의 끊겼지만 지금도 가끔 이분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면서 즐거운 회상에 잠기기도 하고, 혼자 웃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것은 나의 영어실력의 향상이나 진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이유에서이다. 나의 영어는 거의 전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 스스로 혼자서 터득하고, 연습하고 익힌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처음부터 영어라는 과목을 누가 가르쳐주지 안했어도 잘 했다. 무엇보다 나는 영어를 좋아했다. 우선 나에게는 영어 과목이 쉬웠으며, 영어에는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어도 나는 노래를 부르듯이 영어책을 큰 소리로 읽기를 좋아하였다. 지금도 그렇다. 영어단어는 아무리 많이 외워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누구에게 특별히 지도를 받지 않고서도 나의 영어 발음과 억양은 정확하고 자연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판단해보아도 그랬다. 영문법은 처음부터 우리말 문법보다 쉽고도 분명했다. 복잡한 영어문장을 이리저리 분석하고 다시 꿰매어 궁리한 끝에 얻어지는 해답은 수준 높은 즐거움이었다. 이 모든 일을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좋아서 했다.

     이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수학은 그렇지 못하였다. 처음부터 나는 숫자에 둔하였으며 계산에 느렸다. 수학이라는 과목도 영어처럼 잘 하려고 무던히 노력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수학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우수한 학생들 축에 들지 못하였다. 죽어라 노력했어도 결과는 항상 보통 아니면 그 이하였다. 나를 가르친 우수한 영어교사들이 많이 있었듯이 우수한 수학교사들도 많이 있었고, 또 열심히 가르쳐주었지만, 그들은 나의 수학실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하였다. 제일 큰 문제는 애초부터 나는 수학에 흥미가 없었고, 어떤 우수한 수학교사도 내가 수학을 좋아하도록 만들지 못하였다. 교사는 교사대로 열심히 가르쳤고, 나 또한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결과는 항상 실망스러웠다. 나는 내가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수학교사는 너무나 열심인 나머지 나처럼 수학에 둔한 사람을 계속 야단치고 창피하게 만들어 오히려 수학을 더 싫어하게 만들었고, 수학이라는 과목에서 점점 더 멀리 도망가게 만들었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두 과목, 즉 영어와 수학의 경우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가능한 결론은  어느 경우에서도 교사의 역할이 학생의 성적을 높이는데 그렇게 효과적이 아니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학생은 이미 그 과목을 잘하게, 또는 못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이며, 이런 엄연한 사실 앞에서 교사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답답하게도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그리고 알고 있는 교사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가르침에 따라 학생들 개개인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고 상승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틀린 생각이요, 부질없는 기대요, 허망한 꿈일 뿐이다.  

     어느 영어 교사가 제아무리 높은 실력을 갖추고, 신기한 교수법을 동원하여, 열심히, 혼신의 힘을 다 바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해도, 그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개개인이 교사 못지않게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열성과 노력, 그리고 흥미가 없다면 교사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교사는 영어에 관한 많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주입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말을 강가에 까지는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듯이, 교사는 그 지식을 학생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줄 수 까지는 없다. 그것은 순전히 학생들의 몫이다. 교사보다는 오히려 학생 쪽에서 우선 영어에 대한 본능적이면서도 타고난 애정이 있어야만 하고, 이 언어를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구사하겠다는 강력한 욕망 내지 야망이 있어야만 한다. 이런 강력한 사랑, 욕망, 정렬이 영어를 배우고자하는 학생에게 없을 때 교사의 노력은, 열성은, 정성은 가상한 일이지만 허사다.

     영어는 예체능 과목과 같다. 다시 말해서 타고난 재능이 없이는 결코 높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영어뿐만이 아니고 어떤 언어이건 간에, 넓게는 모국어를 포함하여, 높은 수준의 언어를 누구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예술을 가르치겠다는 일과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한 일이다. 미술교사들이나 음악교사들이 자기의 학생들을  모두 화가나 음악가로 만들 수 없다. 예술가란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체능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소수의 제자들을 도와주고, 격려하고, 더 높은 경지로 이끄는 데 있어서 모범이 되는 일이요, 모델이 되는 일이다. 영어교사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포함하여 어떤 언어이건 간에 그 언어의 가장 높은 수준은 예술이며, 이것은 누가 누구에게 가르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어에 있어서 가르쳐서 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거나, 아주 간단한 수준의 의사소통 단계일 것이다. 영어교육에 있어서 교사가 모든 학생들을 높은 수준의 언어구사능력을 갖도록 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영어를 포함하여 어떤 언어를 가르친다는 말은 하나의 기대요, 가정이요, 나가서 신화다. 결코 해롭지 않고 어찌 보면 필요하고 유익한 말이기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 믿음에 불과하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처럼, 사막에서 나타나는 오아시스의 신기루처럼, 지상에 이루어진다는 낙원처럼, 모두가 그렇듯 하게 보이고 솔깃하게 들리겠지만 알고 보면 모두 허깨비다. 우리는 모두 막연히 그런 것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 믿고 싶어 할뿐이다. 차갑고 엄숙한 현실은 잘 하는 학생은 - 그것이 영어든 수학이든 - 교사의 도움이나 채찍질이 없이도 잘한다는 사실이며, 못하는 학생은 열성적인 교사가 아무리 악을 쓰고 채찍질을 가한다 하더라도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우수한 학생이 있다 하여서 그것을 자기의 능력이나 공로로 착각하여 기고만장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사 밑에서 배운 학생들 가운데서 아주 성적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에 대하여 교사는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못하는 학생은 학생 책임이고, 잘하는 학생은 자기가 잘 가르친 덕분이라고 말하겠는가?

     모든 교사들은, 특히 영어교사들은, 그들의 목적과 노력에 있어서 보다 정직하고 겸손해야만 한다. 교사들은 자신들이 영어공부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의 존재라든가, 전지전능한 존재라든가, 마치 기적을 이루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거나, 처신하거나, 말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참으로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있거나,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고액을 받고 과외수업을 하여 부당하게 과다한 수입을 올리는 과외교사들처럼 남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교실에서 교사는 해당과목의 전도사와 같은 존재다. 교사가 교실에서 할 일은 학생들에게 영어라는 과목에 흥미를 느끼도록 유도하는 일이며, 영어에 각별한 소질과 흥미를 보이는 소수(결코 다수가 아님)의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높은 수준의 언어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지식, 인격 그리고 능력을 갖추고 기다리는 일이다. 교사들은 자기가 열심히 더 많이 가르치기만 하면 모든 학생들이 더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하여서는 안 된다. 영어교사들의 열심과 열성은 영어 이외의 다른 과목에서는 천재일 수 있는 학생들에게는 단지 하나의 가혹한 형벌이나 참기 힘든 고문이 될 수도 있다. 너무 많이, 너무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교사는 오히려 그냥 내버려두었더라면 현재는 잘 하지 못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는 영어를 좋아하고 잘 하 수도 있는 역량과 잠재능력을 타고난 학생으로 하여금 영영 영어라는 과목과는 담을 쌓도록 만들 수도 있다. 수많은 우수한 나의 수학교사들이 내가 수학이라는 과목을 더 무서워하고 영영 싫어하게 만들어버렸듯이.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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