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전부는 아니다 > LITERARY WORKS

본문 바로가기

  LITERARY WORKS


영어가 전부는 아니다

페이지 정보

본문

pen_write-s.png


     영어를 포함해서 어느 외국어를 배운다는 일은 일생 동안 계속해도 모자라는 일이다. 끝이 없는 일이다. 그 일에는 완성이란 것도 없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떤 외국어를 소위 "마스터 한다"는 일은 불가능한 꿈이요, 이루고 싶은 환상일 뿐이다. 일생 그것에 매달려 죽어라 공부해 달성한 어느 정도의 실력도 계속 갈고닦지 않고,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눈 깜작할 사이에 봄눈 녹듯이 없어져버리고 마는 것이 외국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어를 포함해서 어떤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런 것이며, 그 노력과 수고에 비하여 그 대가나 보상은 대단히 허망한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영어를 아주 열심히 공부하여 큰 불편 없이 그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치자. 이 것은 그 사람이 언어습득이라는 면에 있어서 남보다 뛰어난 천부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사실 이외에 실제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은 이 자기의 타고난 재능을 직업에 필요한 어떤 특별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 또는 경험으로 보충하거나 보완하지 않는다면 그 언어실력만으로는 그의 삶에 있어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나,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없다는 말이다. 뛰어난 언어능력은 다른 모든 분야의 뛰어난 능력이 그러하듯이 대단히 중요하고 가상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그것 하나만 가지고는 인생에 있어서 크게 성공할 수 없다.

     이 세상에는 많지는 않지만 분명 남보다 언어 습득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따로 있다. 이들은 남보다 짧은 시간 안에 언어를 습득하여, 예를 들면, 우리말을 영어로, 영어를 우리말로 자유자재로 거의 동시에 통역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시통역사란 사람들 말이다.  나도 영어를 일생동안 공부해 온 사람이지만 이런 사람들 앞에서는 그저 기가 죽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기적이요, 요술이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분하고 원통하기조차 하다. 좋다. 그렇다고 하자.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 이런 사람들이 이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을 잘 개발하고 발전시켜 이 능력을 가지고 좋은 직업이나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될 수도 없으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아니 바로 오늘 아침까지, 지난 오십여 년에 걸쳐 영어라는 외국어를 내가 생각해보아도 아주 열심히 부지런하게 배우면서, 공부하면서, 가르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영어를 구사함에 있어서 내가 기대하는 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이 말은 겸손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엄연한 사실이다. 영어로 된 신문이나 잡지, 소설 같은 것들을 들추기만 하면 나는 내가 모르는 생소한 어휘, 구절, 관용구 등과, 그 의미나 문법적 구조가 분명하지 않은 문장들에 계속해서 직면하게 되며, 사전이 없이는 불안하기만 하고 속수무책인 경우가 비일비재다.

     때에 따라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하지만, 나는 내가 구사하고 있는 나의 영어가 그리 좋은 영어가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가끔 외부에서 낯선 외국인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만 할 때도 있다. 영어에 자신이 없는 학교의 행정직원이나 교환소의 안내양이 나의 사무실로 전화를 돌려 영어 박사님께 도움을 청하는 경우다. 이번엔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고 또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통화를 하고나면 등에 식은 땀이 날 때도 있다. 학교 당국으로부터 영어로 강의하라는 압력도 받았고, 권고도 받았지만, 나는 나의 영어실력을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 응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하겠다고 자신 있게 나서는 동료들이 그저 부럽고  존경스럽기만 하였다.  

     가끔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에 있는 나의 칼럼에 글도 쓰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나의 에너지와 시간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작은 원고료에 비하여 너무 많다. 정확한 어휘나 관용구의 용법을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수없이 사전을 뒤져야만 한다. 영어로 방송되는 라디오와 방영되는 TV 프로그램도 자주 시청하지만  쉽게 알아들을 때 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생소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영어로 된 코미디의 핵심은 항상 놓쳐 사람들이 어째서 웃는지 몰라 어리둥절 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영어로 된 낯선 팝송의 가사는 귀 만으로는 거의 백퍼센트 알아듣지 못한다.  나의 영어실력이 이 지경이지만 나는 엄연히 대학에서 영어를 전문으로 하는 영문학 교수요, 또 사람들은 내가 영어를 ‘마스터’하고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으며, 나 또한 구태여 아니란 말도 하지 않고 그런 체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에게 영어는 어디까지나 무엇을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외국어를 유창하고 자유롭게 구사하고자 하는 목적은 그 실력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떤 시험에 패스하기 위하여, 영어로 된 책을 읽어 그 속에서 어떤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의사소통을 하기 위하여, 영어를 배우고 공부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영어를 배워 영어교사가 되기 위하여, 신문기자(외신기자나 외국 특파원)가 되기 위하여, (국외) 세일즈맨이 되기 위하여,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하여, 외교관이 되기 위하여, 영어를 배우고 공부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달성해야만 되는 영어실력은 이 목적에 부합하기만 하면 된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의류 상가에서 일하는 점원은 외국인에게 옷 파는데 필요한 만큼 영어를 하면 잘하는 것이며, 이 점원이 구태여 아리랑 TV의 영어 아나운서처럼 영어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의 영어가 구태여 동시통역사의 수준일 필요가 없음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영어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 하면 누구나 잘 하는 것이다. 그 이상 잘 하는 것이나, 더 많이 배우겠다는 생각은 불필요하고도 부질없는 일이다. 주로 집에만 있는 나의 아내처럼 영어를 쓰고 싶어도 쓸 데가 없는 사람은 아예 영어를 배우는데 귀중한 그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현재 알면서, 모르면서, 이런 저런 근거 없는 압력과 유행 속에서, 영어라는 외국어를 배우고 공부하는 데 불필요하게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영어를 아주 잘 하여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강박관념 속에 처하여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서울 어느 동네의 극성스런 어머니들 가운데는 자기 아이의 영어발음을 보다 더 정확하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처럼 만들기 위하여 어린 아이의 혀를 수술까지 하였다고 한다. 이 끔찍한 뉴스의 진위를 떠나 이런 뉴스가 우리 귀에 들려온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걸려있는 영어라는 전염병의 극단적인 증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다행스런 일은, 우리는 영어 없이도 우리의 하루하루를 아무런 불편 없이 잘 그리고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인 나도 그간 살면서 영어를 단 한마디도 누구와 나누어 본 일이 없이 지난 오륙년을 살아왔다. 그간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온 사람도 없었고, 내가 영어를 써야만 될 어떤 경우도 없었고, 나의 도움을 청한 사람도 없었다. 이런 사정을 조금 확대, 연장하여 말한다면, 우리는 영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라도 얼마든지 아무런 불편 없이 영어권을 포함해서 세계 어디든지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주머니에 돈만 있으면 말이다. 지금부터 약 칠팔년 전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 칠 개국을 거치는 관광여행단을 인솔한 우리 관광 안내원은 영어를 포함해서 외국어라고는 본인의 말대로 단 한마디 할 줄 모르면서도, 우리 모두가 아주 만족할 만큼 성공적으로 자기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결국 언제 어디서나 정작 더 필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고,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가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상식이다.
     (2005년 12월)             

추천2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설문조사

결과보기

새로운 홈-페이지에 대한 평가 !!??


사이트 정보

LEEWELL.COM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123-45
02-123-4567
[email protected]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인배
오늘
209
어제
1,685
최대
5,833
전체
2,718,755
Copyright © '2006 LEEWELL.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IN-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