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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리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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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7월 29일 처음 방문한 서울 한남동 소재 리움 미술관에서 보고 느낀 것은 지금까지 내가 방문했던 국내외 여느 다른 미술관에서 경험한 것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 나와 나의 아내가 택시로 미술관 입구에 도착하자 우리는 우리가 마치 고급 호텔에 도착한 손님이라도 되는 듯이 검은 양복으로 정장을 한 두 젊은이에 의하여 아주 친절하고 정중한 마중을 받았다. 그중 한사람은 내가 든 우산을(그 날은 비가 내렸다)  얼른 받아서는 근처에 마련된 우산꽂이에 집어넣고는 키를 나에게 주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기치 못한 친절 앞에서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이내 익숙하여졌고 기분이 대단히 좋았다. 지금까지 나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부르 박물관을 위시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을 여럿 방문하여 보았지만 입구에서 이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이점에 있어서만은 서울의 리움이 파리의 루부르보다 단연 더 좋았다.

     나로 하여금 그 날 시간을 내어 새로 개관한 이 미술관을 찾게 만든 나의 미적 욕구는 내가 정작 미술관 안으로 채 들어가기도 전에 미술관 입구 오른편 야외 전시장에 전시된 하나의 조각품에 의하여 채워졌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산책도 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이 공간에는 루이즈 부르주아라는 금년 95세의 생존하는 프랑스 한 여성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한 조각품 두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인 듯 했다. 나는 나의 시야에 나타난 이 거대한 조각품 앞에서 벌려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경이로운 심미적 경험이었다. 조각예술에 대하여 별로 잘 알고 있지 못하는 나로서도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미술품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보는 순간 나는 그것을 대단히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에 있어서는 징그럽고, 보기에 흉측스럽고, 혐오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 거미라는 미물이 이 조각가의 손을 거침으로서 이처럼 장엄하고,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조차 느껴지는 창조물로 승화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 사이에 존재하는 부드러운 사랑조차 느낄 수 있었다. 거미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으신가요? 없다구요? 당장 리움에 가 보세요. 이 야외 전시작품은 언제라도 다른 작품으로 대체될 수도 있으니까 노치지 않으려면 당장 가 보세요. 공짜로도 볼 수 있어요.

     내가 지금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는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미술관들은 여럿 있지만 그것은 모두가 단체로 관광여행에 나섰을 때 여행사에서 만든 스케줄에 따라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룹 해외여행이 모두 그러하듯이 어디를 가도 시간의 제약 때문에 허겁지겁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그 많은 진열품들을 커버하여야만 하니 하나 하나 여유를 가지고 감상할 수는 없고, 이것저것 휘휘 둘러보면서 그저 한 바퀴 돌아 나오게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방문은 즐거움이기보다는 의무감이 앞서는 일종의 교육이다. 어느 사람에게는 대단히 힘들고 지루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박물관을 돌아 나와서는 어려운 일이라도 하나 끝냈다는 듯이 대개 한숨을 내 쉰다. 거기다가 예외 없이 수많은 다른 관광객들의 인파에 휩싸여 정신없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내가 그 유명하다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나는 수백 명의 관광객들의 인파에 휩싸여 박물관 안으로 떠밀려들어 갔다. 나는 전시된 너무나 많은 훌륭한 미술품들을 보느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관람을 끝내고 미술관 밖에 나와서야 비로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보았다는 그 유명한 〈모나 리자〉를 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피하고 원통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가슴을 앓아야만 했다. 문제는 한꺼번에 몰려든 너무나 많은 관람객들 때문이었다.

     내가 보증하건대 이런 비극은, 아니, 희극은 이 리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리움은 예약을 통하여 방문객들의 숫자를 아주 이상적으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리움에 가려면 전화나 인터넷을 통하여 미리 예약을 하여야만 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일이 없으니 귀중한 작품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리움은 정말로 좋은 전시품들을 감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고려자기도 보았고, 이조 청자도 보았으며, 이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도 많이 들어보아 왔지만 이번 리움에 와서 비로소 그 찬사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진열 방법과 주변 분위기 또한 예술품 감상에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나는 재삼 확인하였다.

     리움에서는 관람객에게 일일이 개인 안내원을 붙여준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입장을 한 후 예약을 확인하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면, 방문객들에게는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의 녹음기와 이어폰 한 개가 지급된다. 녹음기에 녹음된 언어는 우리말을 위시하여 영어와 일본어다.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줄을 목에 걸고 녹음기를 가슴까지 늘어뜨린 후 이어폰을 한 쪽 귀에 건 뒤, 당신 이 보고자 하는 작품, 예를 들어, 고려청자나  고서화 앞에 서면, 자동적으로 그 작품에 대한 간결하고 분명한 설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어폰을 통하여 들려온다. 당신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이 전자 가이드는 설명을 중단하고는 다음 설명할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다. 내가 견문이 좁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간단하면서도 혁신적인 안내 서비스에 관한한 현 시점에서 리움을 능가하는 미술관은 이 지구상에 어디를 가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틀렸나?

     리움은 이제 개관한지 불과 2년 미만의 세계에서 그 역사가 가장 짧은 미술관이다. 그러나 리움이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은 물론,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의 수준에 있어서는 당장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미술관임에 틀림없다. 좋은 것들 가운데 특별히 좋은 것만 모아놓은 미술관이라는 사실을 이곳을 한번 둘러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우선 진열된 미술품의 수가 너무 많지 않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보면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모든 관람객들이 진열된 귀중한 미술품들을 감상하는 데에만 골몰한 나머지 정작 이 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값비싸고 아름다운 미술품에 눈을 돌리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지적하여야만 하겠다. 그것은 리움 미술관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다시 말해서 이 미술관의 뛰어난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기능 말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리움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세 사람의 건축가에 의하여 독립적으로 구상되고 디자인 된 건축물로서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프랑스의 장 누벨, 그리고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의 합동 작품이다. 진열된 미술품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이 리움 전체를 이루고 있는 건물의 지붕, 계단, 마루, 기둥, 그리고 벽을 형성하고 있는 직선, 곡선, 각, 빈 공간, 색깔, 그리고 각종 희귀한 건축자재가 만들어내고 있는 건축학적 조화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런 건축물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심미적 경험이다.

     마지막으로 이 미술관의 영문 이름인 “Leeum”(리움)에 대하여서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처음 이 미술관의 개관을 다룬 신문기사를 통하여 이 이름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생소하고 어색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곧 지금까지 내가 방문한 경험이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의 “루브르”와 “오르세,”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로마의 “바티칸,” 피렌체의 “우피치,” 베를린의 “페르가몬,” 마드리드의 “프라도” 등과 같은 서양의 유수한 미술관들의 이름을 연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가운데 서울의 “리움”이 끼어든다고 생각하니 처음의 생소함은 사라지고 참 잘 지어진 이름이라고 생각되었다. “삼성 미술관”이란 우리 이름이 있기도 하지만 이미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미술관은 이미 "리움"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으며, 또한 리움으로 통하고 있다. 간결하면서 동시에 국제적인 감각에 알맞은 이름이라고도 생각된다. 또 그 의미에 있어서도 엄청난 액수의 돈과 정성을 들여 후세에 길이 남을 이런 역사(役事)를 결행한 이 미술관 설립자의 성(姓)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소리’뿐만 아니고 그 ‘의미’에 있어서도 수긍이 가는 이름이다.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한번 짖고 나면 앞으로 거의 영구하게 사람들에 의하여 불러지고 기억될 그런 이름을 짓는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누구의 아이디어로, 처음, 어떻게 이 이름이 나왔는지 개인적으로 퍽 궁금하며, 최종적으로 이 이름으로 낙착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다. 수많은 그럴듯한 후보 이름들을 놓고 최종적으로 결정하기까지에는 엄청난 고뇌가 수반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에 내가 사용하고 있는 나의 칼럼 “Ideas & Ideals"라는 간단한 명칭만 하더라도 이것으로 낙착 결정되기까지 내가 겪은 고뇌는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리움은 개관 후 불과 2년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가장 수준 높고 명성 있는 미술관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이 명성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 분명하다. 미술관을 한 바퀴 돌아 출구를 나서면서 나는 여러 면에서, 아니, 모든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관 하나를 드디어 우리도 서울 한복판에 갖게 되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하였다.
    (2006년 8월 28일)  

추천194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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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일님의 댓글

최부일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리움이라는 미술관을 이제야 이교수님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하나하나 작품에 도취되어 감상하는 이교수님에 모습이 보입니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를 다시감상하시고 리얼하고

유익한 글을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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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국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부일 씨,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읽느라고 수고가 많았을 것으로 사려됩니다.
최부일 씨는 나의 글을 제대로 읽어주는 귀한 독자들 가운데 한사람이지요. 감사합니다.

다른 글도 한가한 시간에 읽어 주시고 한말씀 남겨주세요.
문학비평이 바로 이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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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익님의 댓글

장주익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몇번 가보고서 느꼈던 감회를 축약해서 잘 써주셨네요
저는 비전문이면서 건축에 남다른 관심이 큰 편입니다

마리오 보타의 즐겨쓰는 벽돌과 자연광을 이용한 천창,자신의 건물천정과 돌아내려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식의 통로벽에 길게 구멍을 낸것들과 그리고 로비 접수층에 자연광을 끌어들이려는 노력등이 눈에 뜨입니다.
그의 작품중 제일 크다는 강남 교보빌딩도 외관의 벽돌 재질이나 그 특유의 회색과 흰색을 조화시킨 기둥등...

장누벨의 건물은 설명에 의하면 녹슨(일부러) 스테인레스 재질이라더군요.
건물에 이런 철제 박스들을 과감히 노출시키고 그것이 안에서는 전시공간 역활을 하더군요. 제 개인으로는 이 건물 외곽이 더 눈에 들어오더군요.
공사중 나온 돌들을 네모 반듯한 철제(철사로 거칠게,그러나 정연히 묶은)틀에 넣어 차곡차곡 쌓아놓았을 뿐인데 건물과 벽 사이의 Birch 나무와 어울려
미적 쾌감으로 다가오더군요.

램쿨하스의 작품은 검은 콩크리트(새로운 설계와 새로운 재질의 활용?)를 썼다는데 공중에 띄운듯한 거대한 박스가 전시공간이나 영화상영 공간으로서
활용도를 보며 새로웠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이라는 서울대 미술관을 보고서도 공중에 띄운 듯한 그의 건축언어, 그리고 우리 창호지같이 빛을 여과시키는 유리, 그리고 역시 두군데의 영화상영 공간과 객석 처리, 그리고 객석 접근 방식등에서 다시 아마튜어적 미적쾌감(비전문가로서)을 느꼈습니다.

그냥 혼자 보고 혼자 좋아서 느낀것 일 뿐인데 마침 교수님의 글을 읽고 이렇게 나마 쓰고 싶었습니다
이런 공간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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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국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장주익 선생;

장선생이 건축학 분야에 이처럼 남다른 지식과 안목이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이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크, 임자를 여기서 만났구나"하면서 가슴이 뜨끔 하였습니다.

나는 건축에 대하여서는 잘 모르지만 관심은 항상 있어 새로운 건물을 접할 때마다 유심히 관찰해 봅니다.
"리움"의 건축학적 가치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뜻에서 한마디 첨가하였지요. 한마디로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장선생을 빨리 만나 한 수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용솟음칩니다.

우리 쉬 한번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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