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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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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가야만할 길은 아직도 멀다,

 잠들기 전에 가야만 할 길은 아직도 멀다.”

 - 로버트 프로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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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일이 있다. 그는 내가 최근에 퇴직을 하여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이 친구 나를 보자 대뜸  “자네 요사이 참 좋겠네, 글 쓸 시간이 무궁무진할 터이니 말일세,” 라고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 내가 채 무어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 친구는 또 말을 이었다. “자네 퇴직은 하였어도 글은 계속 쓰겠지? 글쓰기에는 정년 같은 것은 없으니까.”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스에 가끔 쓰는 칼럼을 거의 빼놓지 않고 아주 열심히 그리고 자세하게 읽고 한마디 해주는 몇 명 안되는 고맙고도 두려운 독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왜? 이제 더 쓰지 말라는 뜻인가?” 내가 반격을 가했다.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글쓰는 사람 치고 스스로 붓을 놓는 사람 보았나. 모두 하나같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지.”


     저녁 늦게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친구가 농담조로 건넨 말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는 그 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에 가슴이 뜨끔하였다. 이 친구가 약간 빈정대는 투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이 친구에게 글쓰기의 어려움을 불평처럼 털어놓았으며, 글쓰는 일이 너무 힘들어 그만 두어야겠다는 말도 이미 여러 번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나의 심정이 글쓰기를 그만둘 마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그만두기는커녕 지금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글을 더 많이 쓰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항상 이 글쓰기에 한눈을 팔아왔는데, 이제 직업이 없어졌으니 누구 말대로 널브러지게 많은 것이 시간 아닌가? 주어진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아서 걱정인 이때, 이 글쓰기야말로 시간을 효과적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이상적인 수단이요 방법이 아닌가? 더 자주 쓰면 한푼이라도 더 생기고, 제대로 잘 써졌을 때는 한없이 기쁘고, 독자들의 칭찬도 받고, 인기도 누리고,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글쓰기를 그만둔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정작 이제부터다.


     내가 지금까지 항상 글을 더 자주 쓰고싶었지만 실제로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순전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써 무엇보다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할 곳은 직장 일이지 신문에 칼럼 쓰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퇴직을 하여 지금까지 나를 구속하여왔던 귀찮은 의무에서 완전히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나는 전적으로 글쓰기에 매진하여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일인가? 더할 수 없는 축복이다.


     그런데 이처럼 시간만 많이 주어지면 좋은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 기대가 아주 순진하고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곧바로 드러났다. 이미 내가 퇴직을 한지도 이미 삼 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그간 내가 기대한 글쓰기의 수확은 아주 기대에 못 미치는 흉작이다. 오히려 직장 일에 매달려 있을 때만도 못하다. 그 동안 끙끙거리면서 써낸 글은 고작 한 편, 그리고 5월이 지나가기 전에 한 편을 더 완성하기 위하여 무진장 애를 써보았는데 별다른 진전 없이 시간만 흘러 가버렸다. 나는 이 별 것 아닌 일을 질질 끌면서 6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아직도 신통한 진전이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 잘난 신문 칼럼 한편 쓰느라고 이 해를 다 보내게되는 것이 아닌가 하니 허무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나는 이런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여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 그처럼 갈망하던 자유롭고 한가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딜레마에 빠져 허둥대는 이 현상을 어찌 설명하여야만 한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 모든 능력이 쇠퇴한다는 이치로 보아 나도 이제 글쓰기에조차도 너무 늙어버린 것이 아닌가? 나의 능력과 실력이 이제 모두 바닥이 난 것이 아닌가? 지난번에 만났던 친구가 슬쩍 내비친 것처럼 이제 나는 직장에서 뿐만이 아니고, 글쓰는 일에서도 손을 털고 물러날 때가 된 것은 아니가? 나는 내심 무척이나 초조하고 허망하다. 공연이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짜증도 난다. 울고싶은 심정이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켜가면서 이런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나 합당한 이유를 스스로 찾아보았다. 그런데 내가 내린 결론은 우습게 들리겠지만 역시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시간이 없다? 아직 퇴직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이미 퇴직을 한 백수(白手)들은 쉽게 이해하리라 믿는다. 집에 있어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백수가 과로사(過勞死) 한다는 농담조의 말이 생겨났듯이, 직장이 없어졌다고 해서 한가한 것만은 아니다. 집에서도 직장 못지 않게 이런 저런 할 일이 끊임없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는 일 없이 더 바쁜 사람이 노는 사람이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헛소리다. 바쁜 것이 아니라 바쁜 체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혼자서 쓴웃음을 짖는다. 특히 아직 현직에서 일하는 동료나 후배들을 만나면 더욱 그런 체한다.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부끄럽다. 누군가 불쑥 전화를 해서 점심을 사겠다고 만나자 해도 나는 중대한 선약이 있다는 핑계로 퇴짜를 놓고는 혼자 후회한 경우도 여러 번 있다. 나는 내가 아주 한가한, 그래서 무료하기조차 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는 것이 아직은 싫다.


     그러나 사실은 엄연히 사실이다. 싫어도, 부정하여도, 감추어도 소용없는 일이다. 하루하루의 단조로움은 이미 나의 몸 속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새로운 일, 신나는 일,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미 나는 익숙해졌다. 오늘은 특별히 신바람 나는 일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고 나서 나는 곧바로 그따위 쓰잘데없는 망상을 해낸 나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두어 번 단단히 쥐어박았다.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하루종일 앉아있어도 이제는 지루하지 않다. 어제는 열린 창문을 통하여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가지를 바라보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나 이외에 아무도 없는 집안의 정적을 나는 사랑한다. 가끔 이 정적을 깨뜨리는 전화 벨 소리는 반갑기 그지없다. 정적과 고독은 이제 나의 가장 중요한 친구다.


     다시 말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갈망해 오던 글쓰기에 아주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런 환경이야말로 지금까지 직장에 얽매어 살아오면서 짬을 내어 좋아하는 글을 써 온 나에게 있어서는 바라고 바라던 여건인 것이다. 현재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거나 글쓰기에 불리한 여건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모든 것이 글쓰기에 유리하고 우호적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이란 말인가? 지금 쓰고있는 이 글은 한 달이 넘게 하등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제 자리 걸음만 하고있으니 말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초조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답답해하거나 초조해할 일만도 아니다. 별 수 없는 글이지만 어쨌든 지난 30여 년에 걸쳐 틈틈이 이런 글을 써오는 동안 이번과 같은 어려움에 봉착하였던 때가 어디 이번이 처음인가? 거의 매번 그랬다. 단 한번도 시작한 글이 술술 써내려 가 결말에 도달하는 경우는 없었다. 예외 없이 글쓰기라는 이름의 마차는 중도에 한두 번은 수렁에 빠져 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려야만 했다. 내가 선택한 글의 주제와 함께 혼돈의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사이에 귀중한 시간과 체력은 한없이 소모되었고, 때로는 선택한 주제를 내 힘으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다는 공포심에서 시작한 글을 중도에서 포기할까하는 마음이 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예 처음부터 나에게는 너무 벅찬 주제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후회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아무려나 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글쓰는 일에는 정년퇴직 같은 법적 제한은 없으며, 사회통념상 언제 끝내라는 규범 같은 것도 없다. 순전히 글쓰는 사람의 결정에 달려있다. 그런데 그 글쓰는 일이란 것이 공사판의 벽돌 나르는 일이나, 땅을 파는 일처럼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 아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글쓰는 재미에 한번 맛을 들인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스스로 그 일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는다. 친구가 말한 것처럼 글쓰는 사람은 대개 죽어야만 붓을 놓는다.


     그러나 나는 그 시기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써 온 수필이란 종류의 글은 나 자신을 야금야금 써먹는 일의 계속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간직하고있는 자원을 조금씩 소모해 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노름꾼이 노름판을 떠나기 아쉬워하듯이, 나도 가능하면 오래 동안 이 글쓰기의 판을 떠나고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역량 또는 함량이 애초부터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고있으며, 그나마 이미 상당한 분량을 써버렸기 때문에 재고도 별로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 일을 계속하려면 써버린 것 이상으로 계속해서 재충전을 해야만 하는데 그 일이 이제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이 때문이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여 두 손 번쩍 들 날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소리가 전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주위가 조용해서 만은 아니다.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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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님의 댓글

김미경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교수님의 힘겨운 고뇌 속에서 나온 글이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요...
그 즐거움은 때로는 박장대소할만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입가에 나도 모르게 번지는 웃음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릎을 탁! 치게만드는 것이기도 하답니다.

교수님의 영양가 높은 글을 읽는 일은 정신적인 웰빙을 체험하는 것이기에 계속 꾸준히~ 써주셔야 합니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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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국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미경 선생;

칭찬의 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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