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 !! > LITERARY WORKS

본문 바로가기

  LITERARY WORKS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 !!

페이지 정보

본문

pen_write-s.png      

지난 몇 년간 나는 심신에 가해지는 꾸준하면서도 집요한 시간의 공격에 대항하여 소리 없는 격렬한 전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항복을 하고 말았다. 나의 마음속에서 벌어진 싸움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이제부터 노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금년 나이 64세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볼 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한번 싸워보지도 안은 채 그대로 순순히 손을 들 수는 없었다. 그간 나름대로 버티어볼 만큼 버티어보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노인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그간 깨어졌던 마음의 평화도 일단은 다시 찾게되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노년이란 것이 서서히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어느 순간 갑자기 들이닥친다. 나는 어느 날 거울 속에 나타난 나의 얼굴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왼 낯선 늙은 사람이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나였다. 처음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였다.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바로 어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 학교에 입학을  하기 위하여 집을 나섰던 그 아이란 말인가? 그가 언제 어느새 반백의 노인이 되었단 말인가? 나의 나이와 그간 나의 심신에 일어난 이런저런 변화와 증상들을 놓고 판단하여볼 때 어쩌면 당연한 변화였다. 그러나 나는 이런 엄연한 사실을 나는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싸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는 늙는다는 것이 저녁을 먹은 후 공원을 산책하는 정도의 쉬운 일로 생각하였다. 어차피 내려가는 길이니 어슬렁어슬렁 걸어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춘기만큼이나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한 신체적인, 심리적인 어려움과 문제들을 수반하였다. 처음 나는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이유 없이 슬프기도 하였고, 억울하고 분하기도 하였다. 내가 언제 어떻게 이 모양이 되었나를 생각하고는 남몰래 울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완전히 노인 된 것도 아니었다. 그 노인은 수없이 반복된 시행착오, 전진과 후퇴, 부정과 인정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찾아왔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가는 길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길이다.

     사춘기를 비롯하여 우리가 겪고 넘어가는 인생의 모든 단계가 그러하듯이 노년에 이른다는 것 또한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다. 우리는 누구나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노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주변의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이것에 대하여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들이 그랬듯이 차례가 오면 묵묵히 혼자서 이것을 맞이하고 대처하여야만 한다. 우리 주변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어리석거나,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행동을 한다거나, 심하다싶을 정도의 억지를 부리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갑자기 직면하게된 생소한 경험 앞에서 불안하고 초조하기 때문이다. 분명 노년과 유년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나이가 노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노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사람이 70세이던 90세가 넘었다 하더라도 나이만 가지고는 노인이라 할 수 없다. 물론 나이는 그 사람의 체력이나 의욕, 욕망을 현저하게 감퇴시키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이제 노인이 되었노라고 선언하였지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언에 불과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젊은 날의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해 있는 나이만 든 젊은이임을 부끄러운 말이지만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노인이 되기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다. 많은 노력과 수련이 필요하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노년을 장식해 보아도 노인이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인간본성에 역행하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려하지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를 거부한다. 항상 젊고 강하기를 바라며, 계속 어려운 일을 오래 오래 계속하고 싶어한다. 정지나 휴식을 거부한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그저 편히 쉬라는 말처럼 노인들을 섭섭하게 만들고 동시에 불쾌하게 만드는 말도 없다. 하산 길에 접어든 등산객들에게처럼 내려가는 길에는 어떤 영광도 스릴도 없다. 이래저래 노인들이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의기소침해 있거나, 속으로는 성이나 있는 사람들이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미워할 것까지야 없겠지마는, 그렇다고 사랑하거나 좋아할 이유도 없다. 노인 잘못 건드리면 큰코다친다.

     노인들은 누구나 불평과 불만, 그리고 한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울타리 위에 모여 앉은 참새들처럼 나이가 자기들에게 가져온 불행과 불운에 대하여 합창한다. 아프지 않던 곳이 갑자기 아프고, 돈이 없어서 서럽다. 세상만사가 귀찮고 재미가 없다. 입맛이 없다. 한여름 나뭇잎들처럼 많았던 친구들도 가을 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하나 둘 떨어져나가고 없다. 자식들은 모두가 자기들만 안다. 전화기를 머리맡에 두고서도 안부전화 한 통 없다. 불효 막심하다. 알맞은 존경을 표시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살지만 사는 게 아니다. 이 모두가 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이성적으로 관찰해 보면 이와 같은 불평과 불만, 그리고 한탄을 나이 탓으로만 돌리는데는 문제가 있다. 물론 노년이 일반적으로 어떤 개인의 불행의 원인이 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음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겉잡을 수 없는 욕망에 시달리기는 노인들보다는 젊은이들의 경우가 더 강력하고 가혹하다. 고통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아니고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본다면 노인들이란 이런저런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복된 사람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고 그 사람의 성격 내지 성품이다. 그 사람이 분별력이 있고 성품이 원만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별 부담 없이 그의 노년의 생활을 영위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젊음도 그 사람에게는 노년이나 다름없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대개의 경우 늙어서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젊어서도 그렇다.

     건강 다음으로 노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돈일 것이다. 늙어서는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노인들이 많다. 돈이 있으면 노년의 어려움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돈 많은 노인이 돈 없는 노인의 경우에서보다 유리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노후무전”(老後無錢)처럼 딱한 일은 없으며, 노년의 약점을 보충하여주는데 있어서 돈 이상의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의 위안이요, 보상일 뿐이다. 노년을 덜 어렵게 만드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람의 성품이지 재산이 아니다. 그 사람이 원만한 성격의 사람이라면 가난하다 하더라도 노년이 그에게 있어서 크게 고통스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그 사람의 성격이 잘못된 사람이라면 재산의 다소에 관계없이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채 항상 불만과 불안 속에서 살 것이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당대 그리스의 최고 시인이요 극작가인 소포클레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생님은 아직도 여자와 성행위를 할 수 있습니까?” 이 엉뚱한 질문에 대하여 당시 그가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할 길은 없지만 소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젊은이, 참 좋은 질문 하나 하였네. 나는 이 나이에 와서야 비로소 그 집요한 성욕이라는 미치광이 주인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얻게되어 무척이나 기쁘다네.” 멋진 말이다. 마음에 든다. 결국 마음먹을 따름이다. 잃었다고 생각하면 잃은 것이지만 얻었다고 생각하면 얻은 것이다. 진실로 진정한 노인이란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종류의 광적인 감정과 욕망의 폭군들 - 정욕, 애욕, 시기심, 질투심, 경쟁심, 명예욕, 식욕 - 이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다.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얻게된 사람들이다.

     나는 이제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노인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이런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는 나는 나이만 많이 먹은 젊은이로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젊은이가 노인처럼 행동하는 것도 문제이듯이, 노인이 젊은이 흉내를 내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어쩌면 이제부터 나에게 가하여질 부당한 대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일이 있어도 행복한 노인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몸에 좋다는 쓴 약 먹듯이 꿀꺽 꿀꺽 삼켜버릴 것이다. 패전한 군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넓지 않다.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만 한다. 성내거나 보채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청춘이 짧듯이 노년도 짧다. 잘못하다가는 진정한 노인 노릇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이 세상 하직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신 바짝 차려야만 하겠다. 한시바삐 진정한 노인이 되고 싶다.
      (2004년 12월 15일) 

추천209

댓글목록

profile_image

최부일님의 댓글

최부일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64세에 빨리 노인이 되고싶은 심정을 그렸는데
지금으로부터 3년전이었다면 너무 서두르지 않았는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대로 세월만 보내야만하는 안타까움이 때때로 나를 서글프게 하는데...
이교수님은 누가 뭐라 해도 보람차고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 하는 황혼길이 아름다워만 보입니다.

노년을 덜 어렵게 만드는 것도 결국은 그 사랑의 성품이지 재산이 아니라는 말 너무 감동이었어요.
더 열심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을 친구가 되어 주세요.

profile_image

이창국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부일 씨;

또 한편 읽고 한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부일 씨 밖에는 없다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최부일 씨, 멋진 분입니다.
그분의 앞날에 항상 하느님의 가호가 함께하여 줄 것을 기도하고 또 믿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설문조사

결과보기

새로운 홈-페이지에 대한 평가 !!??


사이트 정보

LEEWELL.COM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123-45
02-123-4567
[email protected]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인배
오늘
227
어제
1,333
최대
5,833
전체
2,724,403
Copyright © '2006 LEEWELL.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IN-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