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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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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일주일에 걸친 추석이란 큰 명절이 지나고 이제 모든 것이 재빨리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동안 텅 비어 썰렁하였던 서울의 도심지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였고, 완전히 인적이 끊어졌던 캠퍼스와 교실에는 학생들로 다시 북적거린다. 그동안 문을 닫았던 학교 주변의 다방과 식당들도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꼭 한차례 전쟁이나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피난 갔던 사람들이 다시 살던 곳을 찾아와 파괴된 집과 살림사리를 복구하는 모습이다. 나는 낯익은 얼굴들과 귀에 익은 소음들을 다시 보고 듣게된 것이 마냥 기쁘다. 평화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추석은 우리 나라에서는 설날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이다. 명절이란 두말할 필요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시간이며, 집에서 놀고 쉬면서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복된 시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상 그렇고 실제에 있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명절이란 휴식을 즐기기 위하여서는 대단한 노력과 주의, 그리고 집중력이 필요하다. 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이런 저런 긴장과 스트레스에 빠지게 된다. 돈도 더 필요하고, 여기저기 신경 쓸 곳도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추석의 긴 휴식이 지나 만나게 된 사람들 대부분은 아주 지쳐있는 모습이며,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일을 하게 된데 대하여 오히려 기뻐하는 표정이다.

         천당과 지옥, 선과 악, 밤과 낮 등과 같이 정 반대되는 뜻이나 용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항상 붙어 다니는 짝을 이루는 말들이 그러하듯이, 명절은 전쟁이라는 말과는 선명하게 대조되고 구별되는 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명절과 전쟁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어린 나이에 무서운 전쟁을 경험하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자주 나도 모르는 사이 명절을 전쟁과 한데 묶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우선 전쟁시에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듯이 명절 때도 예외 없이 교통사고로 엄청난 숫자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거기다가 명절 때만 되면 으레 볼 수 있는 남쪽으로 향하는 길다란 차량들의 행렬은 6.25 전쟁 당시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피난민들의 행렬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걱정스런 표정들이고 무척 허둥대는 모습이다. 그뿐인가? 명절이 오면 정상적인 삶의 진행은 갑자기 중단된다. 학교, 은행, 공장, 시장, 가게,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고 사람들은 어디론지 떠나버린다. 도심지로부터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텅 빈 고층 건물들은 유령들의 집으로 변한다. 전쟁 이 일어나도 똑 같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나는 어려서부터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큰 명절이 다가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큰 명절에는 소위 추석빔이나 설빔과도 같이 평소에 입지 못하던 새 옷을 한 벌 얻어 입게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 새 옷이란 것이 불편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평상시 입는 헌 옷을 입어야만 밖에 나가 마음껏 나뒹굴고 험한 장난도 마음놓고 할 수 있었는데 새 옷을 입고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와 같이 놀아야만 하는 다른 집 아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새 옷을 입고 나가자마자 옷을 더럽히거나, 어느 한 곳을 찢겨 가지고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어머니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아야만  했다.

         거기다가 함께 놀 친구들도 없어져버렸다. 모두가 집안에 붙잡혀 있는지, 어디를 갔는지, 하여간 언제 어느 때고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친구들이 명절 때만 되면 모두 없어졌다. 항상 밖에 나가 놀기를 좋아하였던 나에게 하루라도 놀 친구가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견디어내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이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인생의 고독을 느꼈다. 어느 해인가 아마 설날 전날 저녁 때로 기억된다. 나는 놀이터에 나가 놀러 나오기로 약속한 친구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으나 결국 허사였다. 나는 그때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엉엉 소리내어 울었을 것이다.

         명절에 대한 이처럼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의 느낌과 경험은 세월이 많이 지나 내가 나이가 들어 미국에 유학을 가 미국 땅에서 아무런 준비나 경험 없이 처음으로 맞이한 크리스마스에 의하여 크게 증가되었음은 물론,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쓰라린 상처로 나의 마음 속에 남게 되었다. 거의 일주일이 넘게 나는 그 큰 대학의 기숙사에 마치 절해고도에 홀로 버려진 로빈손 크루소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먹을 것도 없었고, 어디 가서 무엇을 살 곳도 없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물론 없었다. 그 큰 대학의 캠퍼스 내에는 나 빼고는 단 한사람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때 내가 경험한 그 정적이란 참으로 무겁고 두려운 것이었다. 세상에 지옥이란 것이 있다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다. 나는 당시 고국에 아내와 세 아이를 남겨놓고 온 30대 후반의 어른이었지만 무섭고 외롭고 두렵기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였다. 아니, 참을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마음껏 엉엉 울었다. 지금 회고해보아도 그 당시 어떻게 내가 그 크리스마스를 죽지 않고 살아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찌되었던 간에 큰 명절이 다가와 길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즐겁고 흥겹다는 느낌이나 생각보다는 우선 쓸쓸하고 외롭다는 느낌이 앞서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겁부터 더럭 난다. 그렇기 때문에 명절이 다가오기가 무섭게 나는 닥쳐오는 전쟁에 대비라도 하듯이 대단한 준비와 각오로 명절을 맞이하기 위한 비상계획을 수립한다. 긴 명절 동안  연구실(사무실)에서 쓸 꼭 필요한 음식이나 필수품은 미리 사서 저장한다. 구급약이나 상비약도 체크하여 모자랄 것은 보충한다. 자동차의 기름도 미리 충분히 넣놓고, 써비스 센터에 가 미리 점검도 받아 놓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명절 기간동안에 심각한 질병이나 부상에 대비하는 일이다. 명절기간에도 병원이나 약국은 항상 열도록 되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와는  거리가 먼 말일 뿐이고 믿을 만한 의사나 간호사들이 남들이 모두 노는 때 일을 할 리가 없다.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잘못하여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인대가 늘어나는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하여 나는 각별히 조심한다. 그리고 또 나처럼 명절 때도 사무실에 나가 일하기를 좋아하는 고질병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점심을 사먹을 수 있는 식당 하나쯤은 미리 수소문하여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들여두는 일이다. 큰 명절에 나를 비롯하여 누가 죽기라도 하여 장례를 치러야만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크나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상과 같은 나의 주도면밀한 사전 준비와 대책에도 불구하고 명절은 번번이 나의 취약점을 공략하여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데 성공한다. 가난하고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 때문이다. 이들  앞에서 나의 견고한 방어선은 힘없이 무너진다.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나의 주변에는 이런 불운한 사람들이 항상 많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평상시 이런 불행한 사람들의 존재는 일상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 동화되어 눈에 잘 드러나지 않거나, 드러나더라도 나는 적당히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쉬면서 즐거워하는 명절이 오면,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자기 가족들과 자기 집 속으로 숨어버리고 나면,  이 불운하고 불행한 사람들은 - 가족이 없거나, 돌아가 쉴 곳이 없는 사람들 - 고아들, 거리에 나선 사람들,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 죄수들,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 - 이들의 존재는 무성한 잎이 다 떨어진 뒤 드러나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선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이들의 공격 앞에서 가슴만 아프지 속수무책이다. 이때마다 나는 평소에 잘 믿지 않는 전지전능하시며 한없이 자비스러우신 신의 존재를 믿고 싶어지며,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슬며시 눈을 감아버리거나 꽁무니를 빼어버린다.
      (2004. 9. 31)

추천210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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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일님의 댓글

최부일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명절을 보내면서 이 교수님의 수필을 다시 읽어 봅니다.

그렇게도 미국 유학 시절 크리스마스의 외로움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만나지 그랬어요. 외로움 때문에 신앙을 갖는다는것은 인간들의 하나의 방패가 될 지라도 고독한 한 영혼이 구원받는 기쁨이 있다면 더 바램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교수님 맞아요. 명절은 전쟁과 대조되는 구별되는 말임이 틀림없군요. 쓸쓸한 거리의 폐허와 불편함등 모든 사물이 잠시 정지되는 생활들이 무척이나 싫었습니다.
또 어떤 작품에 도취되어 볼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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