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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ERAR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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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와서 나에게는 남의 손목을 훔쳐보는 나쁜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거나 전철을 탓을 때 누군가 나의 앞에 서 있거나 옆자리에 앉게되면 나의 시선은 어느새 그 사람의 왼쪽 손목에 가 있다.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차고있는 시계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시계의 상표다. 그 사람의 손목이 윗저고리 깃으로 완전히 가려졌을 때는 나도 이 시도를 포기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움직임과 함께 순간적으로나마 그 사람이 착용하고 있는 시계의 일부분이라도 드러나는 순간 나의 시선은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시계로 이동한다.
  
     이와 같은 약간 이상한, 정상이 아닌, 좀 심하게 말해서 병적인 욕망과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한달 전, 나 스스로 일생일대 처음 거금을 주고 고급 손목시계를 하나 구입하고 나서부터다. 물론 지금까지 시계가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니다. 언제나 나의 손목에는 어떤 종류의 시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남의 시계에 대하여서는 물론 내가 차고있는 시계에 대하여 관심이나 흥미를 가져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비싼 시계를 하나 사서 착용하고 나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시계라고 다 같은 시계가 아니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시계는 시간만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내가 이번에 구입한 손목시계는 시계에 대하여 좀 알고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브랜드 이름이 잘 알려진 소위 명품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망설임과 아내의 동의를 얻어내기까지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오래 전부터 시계의 본고장 스위스로부터 이 브랜드의 시계를 한국에 수입하여 판매하여온 친구의 진지한 권고가 있었다. 나의 주머니 사정은 물론 나의 실용성 위주의 생활태도를 잘 알고있으면서도 이 친구는 만날 때마다 다음과 같이 좋은 시계의 필요성을 넌지시 강조하였다, “시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시계 하나쯤은 가질 필요가 있지.” 마침내 지난 달 초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친구의 말대로 이 친구가 추천하는 시계를 하나 사고 말았다.

     이 시계의 구입과 더불어 나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지금까지 없었던 또는 몰랐던 명품시계에 대한 새로운 흥미와 관심이다. 나는 손목시계라는 것이 비록 크지는 않으나 복잡하면서도 그처럼 잘 만들어진 완벽한 기계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으며, 주로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렇게 부드럽고 촉감이 좋을 수 없고,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한없이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물건이란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지낸 셈이었다. 그뿐인가.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엄청난 가격의 시계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으며 (그런 것들에 비하면 내가 산 시계는 싼 것에 속한다), 시계의 시장이 전세계에 걸쳐 그처럼 다양하고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이런 시계에 대한 사람들의 열렬한 애정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는 이런 이름난 시계를 가진 사람들이, 그런 시계를 갖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름난 비싼 시계의 구입과 함께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영문 시사 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 월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정기구독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잡지들을 받아 페이지를 넘기는 즐거움이 이번 시계의 구입과 더불어 배가되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아마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전에는 나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진과 글들이 이제는 나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명품시계의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광고 말이다. 이런 것들이 이들 잡지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전에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으나 한번도 눈 여겨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이것들이 제일 먼저 나의 눈에 들어 올 뿐만 아니라 큰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자세히 드려다 본다. 그리고 천천히 감상도 한다. 내가 산 바로 그 시계가 등장하였을 때는 다시 한번 나의 시계를 쓰다듬어 보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지난  주에는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쓰러질 뻔하였다. 거기에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가운데 한 사람이 내가 차고있는 바로 그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빙긋이 웃고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번에 새로 산 비싼 시계를 차고 있으면 기분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힘이 생기고,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나를 비웃거나 경멸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을 어찌하랴. 나의 새 시계는 전에 내가 차던 것들에 비하면 단연 더 두껍고, 무겁고, 크다. 시계 줄도 가죽이 아니고 수갑을 연상시키는 묵직한 쇠로 된 고리 줄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것이 좀 무겁고 투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는 곧 익숙해 졌으며, 이제 와서는 그것이 손목에 없으면 오히려 허전하고 불안하기조차 하다. 며칠 전 일이다. 나는 그날 도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하여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호등에 막혀 잠시 정지한 사이 나의 왼쪽 손목에 감겨있는 시계를 보고 가슴이 철렁함을 느꼈다. 그것은 새로 산 그 듬직한 시계가 아니라 시계 줄이 인조가죽으로 된 예전에 찼던 그 얄팍하고 가벼운 싸구려 시계였다. 사실 이 시계는 지난 오륙 년 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킴 없이 충실하게 나에게 시간을 알려준 고마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나는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기어이 새 시계로 바꾸어 차고 출근을 하였다. 새 시계를 차지 않고는 그날 하루의 일을 할 내 마음의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출할 때마다 새로 산 고가의 귀중한 시계를 착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계는 주로 예의와 형식을 요구하는 그런 장소나 행사에 갈 때 주로 나를 동행한다. 술 마시러 나가거나, 운동, 낚시, 등산을 갈 때는 손목에서 풀어 정중하게 집에 잘 모셔둔다. 혹시라도 훼손되거나 도난을 맞을 염려 때문이다.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장소나 행사에 참석할 때는 서랍 속에 선물로 받은 여러 개의 시계들 가운데서 아직도 배터리가 다되지 않아 제대로 시간을 맞추고 있는 놈을 하나 골라 차고 나간다. 나의 명품시계는 넥타이 와이셔츠와 더불어 상대방은 물론 나 자신에 대한 예절, 존경심, 마음의 준비성 등을 나타내는 하나의 부적처럼 되어버렸다.

     이왕 바보 같은 이야기 꺼낸 김에 망신당할 각오하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여야만 하겠다. 나는 이 명품시계를 차고부터는 내가 과거에 차고 다녔던 것과 같은 이름 없는 시계를 찬 사람들에 대하여 우월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러분, 너무 흥분들 하지 마시고 나의 변명에 잠시만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우선 나의 이 우월감이란 것은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흔하고, 현실적이고, 또 유용한 물건에 대한 무시나 소홀함, 또는 경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감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 가운데서 진정으로 훌륭하고 좋은 것, 잘 만들어진 것,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상, 그리고 애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일생 처음으로 파리 루부르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 리자〉 앞에 섰을 때, 바티칸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조각품 〈피에타〉를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 느낀 그런 느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도 이런 진품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까지는 화집에 나와있는 이들의 사진만으로도 별다른 불만 없이 이들을 즐겼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에게 이런 명품을 사도록 권유한 친구가 옆에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행운이다. 이 친구의 은근하고 끈질긴 충고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이 친구에 대한 나의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나의 시계 구매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나는 이 명품시계가 가져다주는 찬란한 신세계를 영영 까맣게 모른 채 살고 있을 것이다. 돈만 있다고 명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품의 세계에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진위를 구별하기에 힘든 가짜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불하고 손에 넣은 명품이 나중에 가짜로 판명 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가지고 있는 명품이 과연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항상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가짜인지 잘 알면서도 진품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가짜 명품의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어떤 종교를 믿게된 사람이 자기의 신앙을 혼자 간직하기에는 그 기쁨과 축복이 너무나 크고 넘친 나머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남에게 전파하려고 하듯이, 나도 지금 나의 친한 직장 동료 한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구입한 것과 같은 시계를 같은 조건으로 하나 구입하도록 열심히 구어 삶고 있는 중인데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친구도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나 장만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만 같은데도 계속 버티고 있다. 내가 “사람이 좋은 시계 하나쯤은 있어야지,”라고 말문을 열면, 이 친구 곧바로 자기가 차고있는 손목시계를 힘차게 나의 코밑에다 흔들어대면서 말한다, “이 시계가 어때서. 시계란 시간만 잘 맞으면 되는 것 아닌가? 무엇 때문에 그 큰돈을 쓸데없이 낭비한단 말인가? 거기다가, 집에 가면 이런 시계가 열 개는 더 있는걸. 아마 내 일생동안 시계는 사지 않아도 될거야.” 이런 말을 하는 친구를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정확하게 바로 한달 전 내가 이 명품시계를  구입하기 전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친구가 모르고 있는 이 새로운 세계를 내가 말로 설명할 수도, 보여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05년 1월) 

추천207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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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일님의 댓글

최부일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먼저 고가(명품)의 시계를 구입한 것 축하합니다.

명품시계로 인하여 잠시나마 이교수님의 마음의 여유와 생활의 변화가 있었던 것 동감합니다.
병적인 욕심과 호기심이라 했는데 너무 솔직하고 꾸밈없는 감점표현이 좋았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꼭 팔목에서 벗겨 즐겨 감상할께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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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국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최부일 씨,

내가 산 시계는 명품이긴 하나 고가는 아닙니다. 어쨋던 누가 무어라 해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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