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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가서 세익스피어 연극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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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삼성의료원 의사인 동생 이관세 박사의 글을 옮겨온 것임)

         영국여행을 하기로 합의를 보자 임재훈이 한테서 구체적인 여행 일정과 함께 온 소식이 스트랫퍼드 어판 에이본의 쉐익스피어 극장에서 공연 예정인 “베니스의 상인” 관람권을 6장 예매했다는 것이었다. 여행 중 스트랫퍼드에 들러 그저 쉐익스피어 생가와 묻힌 교회 정도 둘러볼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이건 아닌 밤중의 홍두깨요, 마른 하늘의 날 벼락이었다. 

수십 년 간 영어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저 일상 회화에서 알아듣기 보다는 눈치껏 알아먹는 편이고 필요한 만큼만 외마디 영어로 말하는 정도이고, 영화를 볼 때도 자막이 없으면 네 글자 짜리 욕이나 확실히 들려오는 수준에 연극이라니---!!!

         연극도 연극 나름이지 쉐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이라니---!!! 내가 대충 알고 있는 쉐익스피어 희곡에 대한 지식만 동원해 봐도 이건 불가능한 미션이다; 우선 말이 정말 많다. 연극 이란게 말로 하는 것이지만 아마도 대본을 내가 글 읽는 속도로 읽어간다면 2시간 짜리 연극이 다섯 시간은 걸릴게다. 다시 말해서 총알같이 쏟아지는 배우의 대사를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쉐익스피어는 신조어를 만드는데 귀신이다. 영문학의 초창기 시절 이였으니까 당연하지만 적절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될 때는 단어를 만들어 넣었는데 누구 통계인지는 몰라도 13단어 당 새로운 단어 하나를 만들었단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고어(古語)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단어 그 자체를 갖고 노는 말장난은 얼마나 많으며 광대나 얼간이를 등장시켜 동문서답 등으로 웃기는 장면은 사전 찾아가며 글짜로 읽어도 해득 불가인데 무슨 재간으로 알아듣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웃을 수가 있단 말인가?

         연극적으로도  배경도 무대장치도 대사 한마디로 때우던 시대의 연극인데, 요즈음 유행처럼 의상이라도 현대식으로 입고 나온다면 내 같은 경우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연극 잘 봤다고 하고 나와야 할 판이다. 아무리 영어를 못 알아듣더라도 영화라면 화면의 그림이라도 즐길 수 있고 하다못해 뮤지컬 이면 가끔 음악의 신세를 지면서 시간을 때우겠지만 원어 연극, 그것도 쉐익스피어 라니 이건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시츄에이션 이렸다!

         비슷한 경험으로 10 여년 전 뉴욕에 사는 친구로 부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공연하는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에 초대 받은 적이 있었다. 개인 병원을 하던 시절이라 병원 문 닫기도 그렇고, 찾아오는 환자 문제, 경제적인 손실, 그리고 초청자가 혼자 사는 여자라서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그때도 가장 큰 문제는 작품 그 자체를 즐길 능력이 없다는 것 이었다. 내 딴에는 오페라 매니어를 자처하면서 한 가닥 한다고 으스대고는 있었지만 바그너의 오페라를 싫어하여 탄호이저 정도 이외에는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체면상 또는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80년도 바이로이트 판 반지 시리즈 레이저 디스크(무려 11장)를 거금 500 달러를 들여 사 놓고 딱 한번 보다가 선반위에 쳐 박은 걸로 인연을 끊은 상태였다.


          우리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아리아가 있기를 한가, 중창이면 중창, 합창하나 변변한 게 없다. 줄거리도 아무리 대사를 못 알아들어도 알아먹을 수 있는  만고불변의 진리; 사랑과 배신, 인간사의 상실과 고통 같은 게 아니라 인간의 구원 따위 등 거창한 주제 아니면 전혀 친밀하지 않은 북 유럽 신들의 이야기뿐이니 줄거리도 따라가기 불가능하다. 게다가 길기는 왜 그리도 긴지 한 막이 이태리 오페라 전 막 만큼이나 긴 것도 있고 4부작 모두 합쳐 나흘 동안 공연시간이 20시간이나 되니, 몸 비비꼬며 진저리치며 앉아있기 보다는 삼청교육대 봉체조 하는 게 낳겠다. 

그래도 결국은 가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또 준비를 하여 성공적으로 구경을 하고 돌아온 적도 있으렸다!

         우선 교보문고에 가서 같은 책으로 페이퍼-바운드 원서를 두 권 사고( 한권은 나, 한권은 마누라 용) 번역본을 두 종류를 샀다. 공부를 좀 하다 보니 필요성이 점점 증가하여 책 수가 늘어나다가 나중에는 청계천 고서적상에서 1966년에 나온 정음사 “셰익스피어 전집 III 희극편 1”과 백년 전 쯤에 발간 된 듯한 Greenwich House의 “The Globe illustrated Shakespeare” 란 2364 페이지 짜리 호화 양장본 전집 까지 구해 놓게 되었다. 연극을 녹화한 비디오를 찾았는데 없어서 알 파치노가 샤일록으로 나오는 영화 DVD를 구한 것이 고작이었다.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생략된 대사 가 많고( 반 까지는 아니지만 1/3 정도는---)알 파치노의 샤일록도  너무 오버 액션인 듯 하고 나중에 본 연극 배우와 비교하면 대사도 명확히 전달이 안 되더라 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다시 예전에 공부한 원서를 펴 본다. 첫 페이지부터 빨간 볼펜으로 적어 넣은 단어의 뜻부터 발음기호, 밑 줄까지 관사와 명사 빼고는 모두가 빨간 색 천지다. 내가 이렇게 까지 공부했었나 하는 기특한 생각도 들고,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지금은 무슨 의미인지 모를 단어와 문장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단어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해석을 해 보고, 그래도 문장의 뜻이 안 통하면 번역본을 참고하고, 번역이 아무래도 맘에 안 들때는 각주(脚註)가 있으면 각주를 참고해서 해석을 하다 보니 각주가 많은 원서를 자꾸 사들이게 되고, 이렇게 점점 전문 연구가처럼 되어갔으나 의욕은 사그러 들고 게으름은 늘어나던 중 머릿속에서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이 왔다. 

수 십년 전부터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 To be, or not to be:”를 모두 외워서 남 앞에서 좀 우쭐대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독백이 끝나고 다음 장면의 대사가 다음과 같다:

                Soft you now!
                         The fair Ophelia! Nymph, in thy orisons
                             Be all my sins remember’d.

 
         ‘요정같은, 예쁜 오필리아여, 네 기도속에서 내 모든죄가 살아나는구나‘ 정도로 해석하고 지내왔는데 항상 “soft”를 어디에 갖다 부칠지를 알 수가 없어서 대충 “너 보들보들하고 예쁜 오필리아”정도로 치부하면서 지내온 바다. 그런데 “상인”의 재판 장면에서 칼을 빼들고 안토니오의 가슴살 한 파운드를 도려내려는 샤일록에게 재판관 포오셔가 “ Soft! ”하는게 아닌가! 요건 보들보들은 커녕 딱딱 살벌한 상황이 아닌가? 

그래서 중학교 일학년 때 찾아본 이래 처음으로 “soft”란 단어를 사전(물론 큰 사전으로)에서 찾았다. 그랬더니 저 아래 한 30번째 쯤에 “hold, stay”이런게 있지 않은가! 수 십년 간의 찜찜함이 순간에 해결되었다; 게 섯거라! 예쁜 오필리아여---
아! 공부란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이때부터 공부에 신명이 나고 모든 새로 알게 되는 것이 완전히 경이와 기쁨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wife”란 명사만 있는 줄 알았더니 “wive”란 동사형이 있어서 아내로 맞다, 장가들이다 의 뜻 으로 쓰였고 마누라 얻기, 장가들기 정도의 뜻으로 “wiving”이 수시로 나온다. 항해중인 무역선을 담보로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샤일록이 “배란 것이 판자때기에 불과한 것이고 선원이래야 사람일 뿐 인데: there be land rats and water rats, water thieves and land thieves-I mean pirates-” 해석도 쉽고 뜻도 잘 통한다. 그런데 ‘pirates’에 각주를 보란 표시가 있다. 각주에는 우리가 당연히 아는 ‘파이어럿츠’로 발음하지 말고 ‘파이랫츠’로 발음하란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며 몇 번을 되풀이 하여 읽다 보니 무릎이 탁 쳐진다. ‘랜드 랫츠’, ‘워터 랫츠’ 와 운도 맞아 떨어지고 무식한 유태인 티도 나고 일석 이조 아니가! 재판정에서 샤일록이 구두바닥에 대고 칼을 갈자 안토니오의 친구 그라시아노가 소리친다; 네 구두바닥이 아니라 네 영혼에다 갈아라. 돌 같이 딱딱한 네 영혼 에다 갈면 더 날카롭게 갈아질 것이다 그런 뜻이지만 “ Not on thy sole, but on thy soul”이란 이 원어대사의 묘미를 맛 보시라.

         이렇게 마누라와 떨어져 지내는 주 중에 열심히 공부를 하고 나서는 금요일 오후에는 집에 간다. 토요일 새벽 6시쯤 둘이서 작은 배낭에다 빵과 과일과 커피 담은 보온병을 넣고 용왕산 이라고 하는 동네 동산에 오른다. 30분쯤 걷고 나서 한적한 곳에 있는 정자에 앉아 요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지난 주 내가 공부한 모든 것을 마누라에 전수한다. 한 줄씩 읽으면서 해석을 하고 중요한 포인트를 강조하는 식이다.

         평소 남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던 아내도 이때만큼은 총명한 학생처럼 눈빛도 초롱초롱 하다. 두어 시간이면 내가 십여시간을 소비한 일주일치 공부가 끝난다. 이렇게 매 주말  거르지 않고 계속된 몇 달간 강의로 출발 전주 쯤 아내도 ‘베니스의 상인’을 한차례 완전히 뗄 수가 있었다. 출국 당일 세시간 전 쯤 공항에 도착하여 일찌감치 출국 수속을 마친 우리는 공항 구석 한갓진 곳에 앉아서 다시 1 페이지부터 최종 복습을 시작하였다. 비행기를 타고 나서도 영화도 안보고 잠도 한숨도 안 자면서 인천에서 히드로공항까지 11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시 한번 복습을 했다.

         호수지방과 에딘버러, 그리고 요크셔의 브론테네 황야를 여행하고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온 우리는 스트랫퍼드 어판 에이본을 찾았다. 쉐익스피어의 생가와 그의 무덤이 있고 반신상 밑의 명문(銘文)이 유명한 홀리 트리니티 교회를 둘러본 우리는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극장을 찾았다. 원형으로 생긴 극장 내부와 관중석 안으로 돌출한 무대가 예전에 남산에 있었던 드라마센터가 무엇을 모델로 하였는지 알겠다. 무대에는 역시  무대장치는 물론이고 막 마저도 없다. 빈 자리가 전혀 보이지 않게 가득찬 관중은 내 눈에는 모두 미국,영국 사람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동양인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관중석의 불이 꺼지고 역시나 현대 의상을 입은 친구 둘과 등장한 안토니오의 대사로 연극이 시작되었다. 아까부터 마음속으로 제발 대사가 좀 귀에 들어와다오 하고 기도하고 있던 나에게 한마디 한마디, 단어 하나 하나가 또록또록하게 명확히 들려온다. 뿐만 아니라 동시 통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의미도 좍좍 전달된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의문이 떠 오른다; 이게 내가 들어서 아는 건지 아니면 외우고 있는 걸 떠 올리는 건지 어느 쪽 인지 모르겠다. 대사도 연극배우들이라 그런지 정확하기도 하다. 여하간 웃을 때와 울 때( 울때는 전혀 없었지만)를 확실히 짚어가며 연극에 몰입했다. 극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4막 1장 법정장면,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예전부터 외우고 있었던 포오셔가 자비의 본질에 관해서 설파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모국어로 하는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The quality of mercy is not strain’d,
                It droppeth as the gentle rain from heaven
                Upon the place beneath: it is twice blest;
                It blesseth him that gives, and him that takes:
        

                ‘Tis the mightiest in the mightiest: it becomes
                the throned monarch better than his crown;
                His sceptre shows the force of temporal power,
                The attribute to awe and majesty,
                Wherein doth sit the dread and fear of kings;
          

                But mercy is above this sceptred sway;
                It is enthroned in the hearts of kings,
                It is an attribute to God himself;
                And earthly power doth then show likest God’s
                When mercy seasons justice.

  
           (자비의 본질은 강요되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그 밑의 땅위에 내리는 보슬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이중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주는 사람을 축복할 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축복합니다.

 

           그것은 전능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전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옥좌에 있는 왕에게 왕관보다 더 권위 있는 것입니다.
           왕이 갖고 있는 왕홀은 경외와 존엄을 보이는 현세 권력의 징표로서
           백성을 떨게 하고 두려워하게 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자비는 왕홀의 위력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왕들의 마음속에도 군림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속성 그 자체입니다.
           정의에 자비가 가미될 때 지상의 권력은 하느님의 그것과 같아 질 것입니다.)

         드디어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해피 엔딩으로 연극이 끝나자 출연 배우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와서 음악에 맞춰서 신명나게 한바탕 춤을 춘다. 이런 휘날레는 키타노 타케시의 사무라이 영화 ‘맹인검객 자토이치“에서 피가 낭자한 결말 후에 모든 캐스트와 스탶들이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인 후 한동안 유행하였던 바다. 

 

         무심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돌연 내 가슴속에 자부심이 터질 듯이 자라난다; 

지금 영국인, 미국인 모두 합쳐 이 모든 관중 중에서, 혹시라도 바로 지난 학기에 

'베니스의 상인‘을 강의한 영문학교수 형님정도만 빼고는, 내가 가장 쉐익스피어의 진수를 맛 본 사람이라는 확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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