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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국 저서소개

화살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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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국
댓글 2건 조회 117,576회 작성일 07-10-08 19:49

본문

icon_con.gif  헌 사

       내가 열 세살 때 45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시었으나 지금도 분명하게 우리 형제들의 사랑과 존경 속에 살아계신 아버지와, 혼자서 꿋꿋이 어떻게 살아야함은 물론 어떻게 죽어야하는 것까지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91세를 일기로 표표히 이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앞에 삼가 머리 숙여 이 책을 바칩니다.
 

icon_con.gif   감사의 말

         글을 씀에 있어서는 물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항상 모범을 보여주시고 지혜를 주신 피천득 스승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icon_con.gif  추천의 말
 
        이창국 선생은 수필가로서의 장점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엉뚱한 곳에서 이야기 거리를 발견하며, 아무것도아닌 것을 가지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들이 어느 개인의 사사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놀라고 즐거워하게 된다. 그의 수필은 우선 재미있고, 동시에 유익하며, 궁극적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글이 바로 좋은 글이요, 좋은 수필이다.

이창국 선생이 수필가로서 우리나라에서 보다 높은 평가와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게 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2004년 7월 14일  피 천 득 

  ✍ 서 문  

 

         나는 “삼” 또는 “셋”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하나는 너무 외롭고, 둘은 서로 너무 가깝고, 셋은 적당한 거리와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셋이라는 숫자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말이나 물건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거의 모두가 재미있고, 유익하고, 좋은 것들이다. “삼권분립”도 그렇고, 『삼국지』에 나오는 “삼고초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도 그렇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자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다정한 친구는 더도 덜도 말고 세 명이 가장 무난하고 이상적이다. 단짝도 좋지만 한번 사이가 벌어졌을 때 중재자가 없는 것이 문제다. 내가 등산이나 낚시를 갈 때 애용하는 콜만 버너의 버팀 발도 세 개다.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다. 세 번을 강조하는 말로써 어떤 일에서 처음 두 번의 결과가 시원치 않을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도할 때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나의 이 세 번째 수필집도 여기에 해당된다. 어떤 큰 성공을 기대하여서가 아니라 이번을 기점으로 나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 한 가지를 마무리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나는 이미 첫 번째 수필집 『다시 한번 강가에 서다』(1997)에 이어 두 번째 수필집 『그때는 아무도 호각을 불지 않았다』(2001)를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이번 세 번째 수필집 『화살과 노래』를 끝으로 이 일에서 손을 뗄 작정이다. 재미는 있지만 너무 힘이 든다. 시간이 가져온 심신의 쇠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이 셋으로 이 놀이는 끝내는 것이 좋을 것만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여 그것에 매달려 고생하고 고민하는 일도 즐거운 일이지만 만사에는 끝이 있어야 하는 법, 시작만 있고 끝이 없는 일 치고 그 내용이나 결과가 좋은 경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나의 수필은 거의 모두가 영자신문<코리아 타임즈>에 있는 “Ideas & Ideals"라는 나의 칼럼에 영문으로 발표한 것들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우리말로 옮겨놓은 것들이다. 일종의 번역이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고 일을 하다 보니 순서가 그렇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어 쓰기 공부로 시작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말 글쓰기로 발전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번역이라 하지만 어차피 나 한 사람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이 동원되어 쓰인 글이기에 순수한 의미에서 번역은 아니다. 글쓰기의 순서가 바뀌었을 뿐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없지만 아무래도 이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다른 수필가들의 글과는 그 전개방식이나 구성, 성격, 또 그 분위기와 스타일에 있어서 분명 어떤 차이가 있음을 느끼거나 알아채는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으며, 나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한마디로 나의 글은 영어 내지 영문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글이다. 일생 동안 영어와 영문학에 매달려온 사람이 쓴 우리글에 그 흔적이 나타나고 또 그 냄새가 배어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자연스런 결과이며, 오히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영향이 결과적으로 우리글과 나아가 우리문학의 발전에 좋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번 나의 수필집의 제목 『화살과 노래』만 해도 그렇다. 이것은 나의 창작이 아니고 미국 태생의 시인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가 쓴 동명의 시 제목이다. 이런 일은 문학의 세계에서는 흔하고 또 오래된 관행이며, 아주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죽은 롱펠로도 자기가 쓴 시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처럼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면 지하에서도 크게 기뻐할 것이다. 독자들은 수필집에 실려 있는 같은 제목의 수필을 읽어보면 어째서 필자가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이것을 제목으로 정하였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시의 내용이 나의 마지막 수필집의 서문을 쓰고 있는 나의 심경과 처지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이것을 선택하게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마음에 꼭 드는 제목이다. 영문학을 공부한 덕분이다. 내가 남긴 수필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후세 어느 누군가의 필요에 의하여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나는 크게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2004년 4월 20일       이 창 국 씀

화살과 노래

        

        지난 9월 7일 저녁, 나는 서울에 있는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된 한 화려한 파티에 초청되는 영광과 기쁨을 누렸다. 이 모임은 내가 한 때 근무하였던 창덕여자고등학교 제23회 졸업생들이 그들의 졸업 3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준비되었으며, 이 행사에 그들은 옛날 자기들을 가르친 은사들을 몇 명 초청하였는데 나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이제 갓 50대에 접어든 약 200여명의 나이든 제자들이 드넓은 홀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옛 스승들을 쉽게 알아보았지만 우리 선생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이들은 30년 전 교복을 입었던 10대의 소녀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 성장(盛裝)을 한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여인들이었다. 시간이 이들에게 가져온 그 엄청난 변화를 바라보면서 나는 나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이 수많은 여인들 사이에서 처음 얼마간 나는 약간 불안하고 어색함조차 느꼈다. 그러나 약 세시간 계속된 행사와 식사, 그리고 준비된 여흥이 끝났을 때쯤 되어서는 그간 서로 떨어져 살면서 생겨난 정서적인 거리와 시간이 가져온 간격은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졌고, 우리 늙은 교사들은 어느덧 옛날의 선생님으로, 젊은 이들은 모두 활기 넘치고, 수다스럽고, 극성스러운 장난꾸러기 여고생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행사 가 모두 끝난 뒤 나는 학생시절 내가 담임을 한 반에 속하였거나, 꼭 그렇지는 않았더라도 나를 특별히 좋아하였던 학생들, 아니, 아주머니들 십 여명에게 붙잡혀 호텔 커피숍으로 갔다. 우리들은 커피 잔을 앞에 놓고 그리움 속에 지난날을 회상하였다. 이들은 그 당시 있었던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그리고 때때로 가슴아프고 부끄러운 일들을 하나하나 회고하여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이들이 들려주는 에피소드나 사건들 가운데 한 두개는 나도 상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나에게 생생하게 들려주는 그 이야기나 사건들의 대부분은 완전히 나의 기억으로부터 소멸되어 재생이 불가능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들은 나를 난처하게 만들거나 내가 듣고 기분이 나빠할 그런 토픽들은 애써 그리고 현명하게 피하고, 내가 들어서 기쁘고 좋아할 그런 기분 좋은 이야기만 나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다 알면서도 이런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들을 한때 가르쳤다는 사실에 행복하였고 또한 자랑스럽게 느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하나 벌어졌다. 지금까지 한구석에 앉아 조용히 얼굴에 미소만 지으며 말 한마디 없이 계속되는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학생, 아니 여인 하나가 나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는 말과 함께 핸드백을 열더니 그 속에서 오래된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호기심에 가득 찬 다른 여인들의 시선이 순간 이 편지 위에 집중되었다. 봉투에 쓰여진 필체로 판단해 볼 때 그것은 내가 쓴 편지가 분명했다. 순간 나는 좀 어색하게 느꼈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영어교사로서 창덕여고에 3년 남짓 재직하는 동안 어느 학생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써보낸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교사로서 크게 잘못되었다던가 부끄러운 일은 한 적은 없다고 속으로 자부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저녁 이곳에서 확인한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의 현재의 기억력은 크게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크게 못 믿을 것이 아니고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30년 전이라면 나는 그 수많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그리고 다 큰 여학생들 사이에 포위된 나이 채 30이 되지 못한 총각 선생이었다. 나는 이 학생에게, 아니 이 학생말고도 다른 학생에게도, 이상한 내용이 담긴 편지를 써 보냈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이 공개되는 날에는 지금이라도 나를 크게 망신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여인은 이런 편지가 집에 몇 장 더 있다고까지 말하였다.

          나는 봉투 속에서 접혀있는 편지를 그 자리에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그 봉투를 가지고온 여인에게 돌려주고 뭐라고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모면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꺼내었으니 또 읽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내가 읽지 않으면 이제는 이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이 아줌마들이 그대로 지나칠 일도 아니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면서 30년 전 교실에서 학생들 앞에서 영어 교과서 읽듯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편지의 시작은 그런 대로 교사가 여학생 제자에게 보낸 편지치고는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써, 세상을 밝게 보고, 앞을 보고 살되 너무 멀리 보지는 말라는 나 특유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고도 다행스럽게도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영시 한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선 크게 안심이 되었다. 만년필로 꼬박꼬박 쓰여있는 이 영시는 그 밑에 나의 번역문도 붙어있었다. 나는 내가 글씨를 잘 쓴다는 사실을 이때 새삼스럽게 확인하였다. 나는 아이구 살았다라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자신 있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 The Arrow and The Song >>
             H. W. Longfellow (1807-1882)

 

I shot an arrow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so swiftly it flew, the sight
Could not follow it in its flight. 
            
I breathed a song into the air,
It fell to earth, I knew not where
For who has sight so keen and strong,
That it can follow the flight of song ? 
       
Long, long afterward it an oak
I found the arrow, still unbroke
And the song, from beginning to end,
I found again in the heart of a friend. 

  
화살과 노래
                            H. W. 롱펠로  
    

 

나는 허공으로 화살 하나를 쏘았네,
그 화살 어느 곳에 떨어졌지만
나는 그 곳이 어딘지는 알지 못했네,
너무나 빨리 나는 그 화살
나의 시선으로 따라갈 수 없었기에.

 

나는 허공에 노래를 하나 불렀네,
그 노래 어느 곳에 떨어졌지만
나는 그곳에 어딘지는 알지 못했네,
누가 시력이 제아무리 좋다고 하나
노래가 날아가는 것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먼 먼 훗날 나는 찾았다네
참나무에 부러지지 않는 채
박혀 있는 나의 화살을
한 친구의 가슴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의 노래도.          

   

          시의 낭독이 계속되는 동안 여인들은 마치 교실에 앉은 학생들처럼 조용히 나의 낭독을 경청하였고 다 끝나자 일제히 박수를 쳤다. 박수는 쳤지만 그 편지의 내용이 그들이 기대하였던 것에 못 미쳐서인지 약간 실망한 분위기였다. 내가 어떤 계기로 이 시를 이처럼 정성스럽게 적어 번역까지 붙여 이 학생에게 보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그때 이 학생에 관심을 갖고 많은 격려를 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였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자기는 이 편지를 결혼을 하고 나서도 잘 간수하여 왔다고 말하였다. 이런 편지를 가져와 여러 사람들 앞에 불쑥 내놓아 순간적이나마 나의 간을 조이게 만들었던 여인은 편지를 도로 달라고 하더니 정성스레 접어 봉투 속에 밀어 넣고는 핸드백을 열고는 그것을 다시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그 여인은 자기가 꿈 많은 그리고 고민 많던 외로운 여고생이었을 때, 부모 이외의 다른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관심이 필요하였을 때,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었고 이와 같은 격려의 편지를, 그것도 한 두 장이 아니고 여러 장 써 보내준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한다고 거듭 말하였다. 우리는 다시 한번 모두 마음껏 웃고 헤어졌다.

 
         밤늦게 차를 몰아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핸들을 잡은 채로 다시 한번 그 화살과 노래를 읊조려 보았다. 그리고 그 편지를 그토록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그 졸업생을 생각해보았다. 이제야 차츰 희미한 안개가 걷히듯이 천천히 망각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그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얼굴이 떠올라 조금 전 그 중년 여인의 얼굴과 포개져 살아났다. 맞다. 그 여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은 키도 몸집도 아주 작아 교실에 앉을 때나 줄 서기에는 언제나 제일 앞이었다. 항상 수줍어했고, 남의 앞에 나서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여러 면에 있어서 다른 학생들의 훨씬 뒤에 처지는 학생이었다. 나는 내가 한때 교사로서 어떤 학생에게 그렇게 편지를 손수 써서 보내줄 만큼 부지런했고 정열적이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에 나타난 시인처럼 나도 그러고 보니 한때는 나의 학생들에게 좋은 노래도 불러주었고, 그리고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래는 한 나의 옛 학생의 마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며, 나는 그것을 오늘 밤 다시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행복한 기분은 곧 그때 내가 쏘았을 화살을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사라지고 대신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확실히 나는 그때 오늘 밤 내가 확인한 바와 같이 학생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노래만 부른 것은 아니었다. 그 상처받기 쉬운 학생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기에 충분한 많은 말의 화살도 쏘았음에 틀림없었다. 내가 그때 무심히 그리고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행한 불친절하였고 무책임한, 때에 따라서는 건방지고 오만한 언행은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 부러지지 않은 채로 참나무에 꽃혀 있는 화살과과도 같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오늘 밤 노래는 하나는 다시 찾아내었다. 그러나 화살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화살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밤  늦게 마신 커피 때문이기도 하였겠지만 그 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이나 업치락 뒤치락 하였다.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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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1875781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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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준님의 댓글

변희준 작성일

이선생님,

저는 별 이유도 없는데 셋이라는 수를 좋아합니다.
전철역에서 1, 3, 5. . . 등의 숮자가 쓰여 있는 출입구 중 3자가 쓰인 출입구로 드나들기를 좋아합니다. 10, 12, 14 . . . 중에서는 12가 쓰인 출입구를 이용하고요. 12는 3의 배수이고 12라는 수를 이루고 있는 digit 1과 digit 2의 합이 3이기 때문에 12를 좋아하는 것같습니다. 큰 전철역에서 33이 쓰인 출입구가 발견되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3이라는 digit이 두개가 겹쳐있으니까요.

선생님의 책 <화살과 노래>를 다 읽고 머리말을 읽으며 선생님도 삼을 좋아하신다는 걸 알고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엉뚱한 데 끌어다 붙이는 걸 보고 매우 당치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필집 세권을 냈으니 그만 하시겠다고요? 글은 자꾸 쌓여갈 터인데 책을 안 내고 어쩌시려고요? 선생님은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분입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눈웃음을 치며 이야기를 계속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글로 옮기는 일이 힘은 들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그 일을 안 하고는 못배길 분일걸요. 그동안도 많이 써 놓으셨겠지요? 선생님이 말로 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글로 쓴 이야기는 아주 귀합니다. 계속 발표하여 저같은 사람 많이 읽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만 손 떼겠다고 쓰신 게 마음에 걸리나요? 다음에 하나 더 쓰시면 "3+1'을 쓰신 게 되죠. 제 계산법이 좀 얍삽한가요? 그 다음엔 '3+2'가 되고요. 거기다 하나 더 쓰면, '3+3'이 돼요. 선생님과 제가 좋아하는 3자는 항상 들어있어요. 욕심 부려봅시다. 거기에다 또 세권이 나오면 3+3+3 혹은 3x3이 되어요. 온통 3천지입니다.

제 생각은 선생님이 계속 쓰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글을 그렇게 탄탄하게 쓰는 사람 없어요. 이제 여가시간 많으시겠다-시야와 사고가 학교라는 틀을 벗어났겠다- 그러니 '이 놀이'를 끝낼 게 아니라 더욱 신나는 '놀이'로 독자를 즐겁게 해 주시기를 감히 당부합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빕니다.

변희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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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국님의 댓글의 댓글

이창국 작성일

변희준 선배님께;

보내주신 이메일 편지 잘 받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글을 읽으시고 이처럼 칭찬과 격려를 해 주시는 수고조차 해 주시니 기쁘고 황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선배님도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신다는 말로 시작해서 수필집 세권으로 끝낼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더 내라는 충고는 나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보고 하시는 말씀같아서 기분 좋으면서도 섬뜩하였습니다.

언제 어데서 만나뵈어도 항상 잔잔한 호수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주시는 선배님, 편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재삼 황송합니다. 항상 평안 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저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과천에서 후배 이창국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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